“히틀러의 흉악한 악행을 비판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잔인함이, 경악스러움이 세상에 이어지고 있을까.

폴란드에는 유대인 학살의 대표적인 장소인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가 있다. 이는 독일식 발음이고, 폴란드어로 발음하면 오시비엥침(Oświęcim)이다. “히틀러의 흉악한 악행을 비판하기 전에, 비슷한 일들이 현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가이드의 말이었다. 나도 범죄 일부일 수 있다는 것. 의심해야 한다. 변화를 말해야 한다.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하자마자 쌀쌀한 공기가 느껴졌다.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하자마자 쌀쌀한 공기가 느껴졌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누가 만들었을까?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장에서 살아간다.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제품을 만든다. 삶의 목적은 생존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수가 줄고 있다. 조금만 지나면 역사의 증인은 사라질지 모른다. 나는 목격자가 됐다. 이 목격은 현실과 닿을 때 의미 있다. 항상 질문해야 한다.

 

아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현재를 바라봐야한다. 현재도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비극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는 주목하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는 무지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사람들도 무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나쳤을 것이다.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반성하게 됐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의 폴란드어 발음은 오시비엥침(Oświęcim)이다.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의 폴란드어 발음은 오시비엥침(Oświęcim)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비극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 두렵다. 24살의 아우슈비츠는 그래서 값지다. 시선이 아직 세상을 향해 있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 수용소에 들어가면 방이 보인다. 그 방 안에서 수용자들이 좁은 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3m도 안 되는 크기에 세 명 이상이 구겨져 잠을 잤다. 겨울에는 칼바람 때문에 끝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동사했다.

 

또 다른 방에 들어간다. 신발이 쌓여있다. 다른 한 편에는 한 무더기의 가발이 보인다. 모두 수용소가 수용자들에게서 빼앗은 것들이다. 나치는 학살 과정에서도 낭비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수용자들의 물건을 남김없이 빼앗아 팔아버렸다. 그 극악무도함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신발과 가발로 남았다. 그 잔인함은 이 무더기만큼이나 경악스러웠다. 몰랐던 사실이다.

수용소 내부의 감시탑은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수용소 내부의 감시탑은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잔인함이, 경악스러움이 세상에 이어지고 있을까. 세상 어딘가에서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는 내가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학살은 어느 시점에 비로소 역사가 되는가. 세상은 어느 시점에 인권 유린의 현장을 목격하는가. 분명한 것은 역사와 목격이 모두에게 닿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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