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선수조차 없는 최약체 팀이 만든 기적 '리바운드'
축구를 통한 홈리스들의 자립 '드림'
브랜드의 모든 미래를 건 강력한 한 방 '에어'

[문화뉴스 함예진 인턴기자] 스포츠는 누군가에겐 기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종종 어떤 스포츠 경기는 경기 전후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포츠 실화 이야기 3편을 소개한다.

 

리바운드

사진='리바운드' 포스터/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사진='리바운드' 포스터/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줄거리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 양현은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신임 코치로 발탁된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의 첫 경기부터 몰수패라는 치욕의 결과를 낳고 학교는 농구부 해체까지 논의한다. 해체 위기에 놓인 농구부를 살리기 위해 양현은 MVP까지 올랐던 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선수들을 모은다. 2012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최약체 팀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전국 고교농구대회에 출전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부산중앙고 농구부

'리바운드'는 2012년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중고농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프로선수 생활을 하던 강양현 코치는 2007년 모교인 부산중앙고로 돌아와 신임 코치가 된다. 추승균, 강병현 등 유명 농구 선수를 배출했던 과거와 달리, 2007년 부산중앙고 농구부는 당장의 운영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선수 한명 한명을 모아 훈련을 시작한 강양현 코치는 2012년, 6명의 선수들(천기범, 배규혁, 정강호, 홍순규, 허재윤, 정진욱)과 함께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중고농구대회에 출전한다. 어렵게 나간 전국대회는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미 부족한 인원이었지만 예선에서 정진욱 선수가 부상을 입어 결국 5명이 교체선수 없이 앞으로의 모든 경기를 치러야 했다. 

사진='리바운드' 스틸/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사진='리바운드' 스틸/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그러나 이때부터 부산중앙고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5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선수들이 잇따라 5연승을 하고 결승까지 진출한 것이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올라온 부산중앙고가 대면한 마지막 상대는 강력한 우승 후보 용산고였다. 안타깝게도 용산고와의 결승전에서 2명이 5반칙으로 퇴장당해 3명만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연이어 5개의 경기를 교체선수 없이 치러왔던 터라 남은 선수들 역시 많이 지쳐있었다. 결국 부산중앙고 농구부는 63-89로 결승전을 마무리했지만, 최종 준우승을 차지하며 8일간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드림

사진='드림' 포스터/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드림' 포스터/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줄거리

전직 축구 선수 홍대는 계획도 의지도 없던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을 맡게 된다. 뜯어진 운동화와 슬리퍼, 늘어진 반팔 티셔츠가 운동복 전부인 선수들과 진정성 없는 현실파 PD 소민까지, 부족한 것투성인 상황에 월드컵 준비는 막막하기만 하다. 쏘울리스 감독, 열정리스 PD 그리고 홈리스 오합지졸 선수가 모여 홈리스 풋볼 월드컵이라는 생애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지는 꿈에 도전한다.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

영화 '드림'은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에 도전한 빅이슈코리아 축구단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홈리스 월드컵은 2003년부터 시작된 국제 행사로, 축구를 통해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홈리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매년 개최된다.

2010년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받은 한국은 노숙인 자활 지원 잡지 '빅이슈코리아'에서 축구단을 모집해 최초로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출전 준비 기간 동안 한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은 많은 역경을 겪어야 했다. 참가비를 낼 수 없어 참가가 무산될 뻔했으나 여러 기관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준비 막바지에 선수 8명 중 한 명이 부상을 당하고, 다른 한 명은 여권이 발급되지 않아 부족한 인원으로 경기를 나가는 등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사진='드림' 스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드림' 스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종 결과 한국팀은 결국 1승 10패로 최종 43위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무리했으나 경기 실적과는 별개로 한국 대표팀이 그 해 최우수신인팀상을 받게 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최우수신인팀상의 경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축구를 통한 자립의 의지를 보인 팀에게 수여되는 상이기에 홈리스 월드컵에서 의미가 큰 상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만든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잊히지 않는 기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에어

사진='에어' 포스터/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사진='에어' 포스터/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줄거리

1984년, 업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이키는 브랜드의 간판이 되어 줄 새로운 모델을 찾는다. 나이키의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는 NBA의 떠오르는 루키 마이클 조던이 업계 꼴찌 나이키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NBA 루키 마이클 조던을 눈여겨보는 회사는 나이키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업계 1, 2위의 컨버스와 아디다스가 그와의 계약을 노리고 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질 수 없었던 나이키 팀은 마이클 조던에게 나이키의 미래를 비롯한 모든 것을 걸게 된다.

나이키와 마이클 조던의 '에어 조던'

영화 '에어'는 나이키 브랜드 '에어 조던'의 탄생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1980년대, 나이키는 오늘의 명성과는 정반대로 스포츠 신발 업계에서 그다지 빛을 발하고 있지 못했다. 당시 업계는 1, 2위인 아디다스와 컨버스가 주름을 잡고 있었다. 이에 나이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바꿔줄 새로운 모델을 물색한다. 사실 나이키가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모델은 마이클 조던이 아니었다. 당시 나이키는 하킴 올라주원을 포함한 NBA 드래프트 신인 3명을 모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나이키 마케팅 경영진 소니 바카로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명의 선수에게 브랜드 모델을 맡기기보단 당시 떠오르는 NBA 루키 마이클 조던 한 명을 모델로 세워 모든 마케팅 비용을 그에게 쏟는 방법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떠오르는 신인인 마이클 조던을 원하는 회사는 나이키뿐만이 아니었고 이미 아디다스를 비롯한 다른 회사들 역시 그에게 연락을 취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마이클 조던 역시 나이키 신발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 다른 브랜드 신발을 착용하고 있던 터라 모델 계약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사진='에어' 스틸/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사진='에어' 스틸/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하지만 소니 바카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소니 바카로는 주로 코치, 매니저 그리고 가족 등 마이클 조던의 주변 사람을 설득해 마이클 조던에게 접근했다. 이때 마이클 조던의 어머니가 나이키와의 계약에 일등 공신이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어렵게 마이클 조던을 만난 나이키는 1984년, 마침내 마이클 조던과 2.5백만 달러의 5년 계약을 성사하며 '에어 조던'을 출시했고 판매 첫해에만 백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만들어냈다. '에어 조던'은 오늘날까지 약 40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나이키의 브랜드 입지를 바꾸는 등 성공 신화를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