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리지 못하는 차별이었다.

반인종차별은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구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마인 강이 있다. 야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밤이 찾아오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나는 그곳에서 자주 인종차별을 당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나의 인종을 조롱하는 경우도 있었고, 언어 자체로 보면 문제 소지가 없어 보이지만 은연중에 차별적인 언어를 들은 적도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차별이었다.

추운 날씨에 친구들과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 마켓에 방문했을 때였다. 벌벌 떨면서 독일식 끓인 와인인 글뤼바인(Glühwein)을 사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내가 있던 자리에 다른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곳은 내 자리라고 말하자 그 남자는 “우리는 독일에 있고, 네것 내것이 구분되지 않는다”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나는 상황 파악이 안 됐다.

그게 인종차별적인 표현이라는 건 친구 중 한 명이 굳은 표정으로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 남자는 나의 외모만을 보고 독일에 대해 설교하듯 말했고, 그 순간 나는 이방인 취급을 당한 것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화가 난 듯 보였던 친구는 노골적인 것보다 이렇게 은연중에 가해지는 인종차별이 더 나쁘다고 했다. 차별을 바로 인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인 한 분과 인종차별 경험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는데, 한 번도 본인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당한 인종차별도 크나큰 상처가 됐지만, 고국에 돌아가서도 서툰 한국어 때문에 한국인 대우를 받지 못할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나도 여러 가지 특징으로 상대를 단정한 적이 있었을 거다.

반인종차별은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구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양성은 곧 창의성으로 연결되고, 새로운 생각은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다양한 개체와 어울릴 수 있는 생명체가 더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더 나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가 재능을 가진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고, 이는 기술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흔히들 인종차별이 사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것은 다르다. 인종차별은 무지에서 온다. 불편한 시선이 언어에 녹아든다.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그룹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한 오류다.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다. 그만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 자신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다.

 

참고

*Merkel, Janet. (2017). Richard Florida: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10.1007/978-3-658-10438-2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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