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튀르키예, 유라시아의 투르크(Turkic) 세계로 안내합니다

[문화뉴스] 칭기즈칸의 손자인 바투 칸이 세운 금장 칸국 (또는 킵차크 칸국, 金帳汗國, Золотая Орда)에 뿌리를 둔 카잔 칸국의 후예의 나라 타타르스탄공화국에는 카잔타타르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여러 곳의 박물관이있다. 이번 편에서는 카잔 크레믈 건너편에 위치한 타타르스탄공화국국립박물관과 바투 칸에 대한 기록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 카잔에 위치한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 카잔에 위치한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칭기즈칸의 손자이며 금장칸국의 시조 바투 칸(Батый, Сайн хаан)

금장칸국을 세운 바투 칸은 백장 칸국(Белая Орда, 白帳汗國 또는 킵차크 칸국 Золотая Орда), 청장 칸국(淸帳汗國, Синяя Орда)의 시조다. 물론 백장 칸국의 경우 바투 칸의 형이자 주치 칸의 맞아들인 오르다 칸(Орда-Эджен)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백장 칸국 자체가 킵차크 칸국 의 속한 칸국이었기 때문에 동일한 뿌리로 본다.

바투 칸의 아버지는 칭기스칸의 차남 주치 칸으로 주치 칸으로부터 사인 칸(Сайн хаан) 즉, ‘자비롭고 현명한 칸’이라 불리며 권력을 계승 받았다. 바투 칸은 서방 원정으로도 유라시아사, 유라시아국제관계, 투르크학, 투르크 국제관계 학문에서의 여러 부문에서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1221년부터 1223년 동안 칭기즈칸의 서방 원정에 참여한 바투 칸은 1235년부터 오늘날 타타르스탄공화국 (따따르스탄공화국, Республика Татарстан)을 포함한 중부 유라시아 지역인 킵차크 칸국을 다스렸고, 이후 1236년부터 1241년까지 몽골군의 제2차 유럽 원정을 총 지휘했다. 아버지 주치가 다스렸던 주치 울루스를 계승한 바투는 칭기즈칸의 손자들과 권력과 혈통 다툼으로 갈등이 거론되자 1237년 금장 칸국(또는 킵차크 칸국)을 세우고 몽골과는 독자적인 지배 형태의 길을 걸었다.

금장 칸국(또는 킵차크 칸국)의 시조 바투 칸, 타타르스탄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금장 칸국(또는 킵차크 칸국)의 시조 바투 칸, 타타르스탄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키예프 루스와 헝가리 모히까지 밀고 들어간 바투 칸의 서방 원정

1235년 이미 크림 반도를 정복했던 바투는 귀위크 칸(Гуюк), 부리 칸(Бури 또는 부리 카가타야 внук Чагатая), 몽케 칸(Мункэ), 카잔 오구르(Кадан), 바이다르(Байдар) 등과 같은 자신의 친족들과 수부타이(Субэдэй), 부루다이(Бурундай)를 포함한 여러 장군을 모아 서방으로 진출했다. 1237년 11월, 現 러시아 서부의 블라디미르 수즈달 공국(Великое княжество Владимирское)를 시작으로 랴잔(Рязань)을 포위하여 도시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트린다. 이후 모스크바를 불태운 바투는 1238년 다시 한번 블라디미르 수즈달 공국을 포위하여 도시의 영광스러웠던 흔적조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를 불질러버렸다. 이외에도 로스토브, 야로슬로브, 노보고로드 등 현재 러시아 중남부 지역을 완전히 함락 시킨 후 크림 반도 및 그 지역 일대를 점령하여 대부분의 공국과 소도시를 바투 칸의 몽골 제국의 가신 국가로 만들어버린다.

주치 울루스 (금장 칸국)의 지배 영토,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도서관 (촬영: 강경민)
주치 울루스 (금장 칸국)의 지배 영토,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도서관 (촬영: 강경민)

이후 세 그룹으로 군대를 분류하여 서방 원정을 떠난 바투 칸은 폴란드를 침공하고 카르파티아(Карпаты 또는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 산맥을 넘어 헝가리를 눈앞에 둔 다뉴브로 들어갔다. 카르파티아산맥은 폴란드 남부부터 루마니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남서부까지 연결된 산맥으로 동유럽과 서유럽을 가로지르는 중심 선과 같은 곳으로 바투 칸의 시대에서는 서방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맥이기도 하다.  당시 다뉴브 지역에는 불가리가제국,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 바벤베르크 군대가 있었는데, 불가리아 제국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바투 칸의 군대는 1241년 4월 11일, 헝가리 모히 평원 전투에서 승리하여 다뉴브 지역내 서유럽 동맹국에게 패배를 남기고 헝가리 땅에 다루가치를 임명 및 카간의 이름이 세계진 동전을 주조했다.  

주조된 거울과 장신구,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주조된 거울과 장신구,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1438년 카잔 칸국의 등장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바투 칸의 후손 카잔 칸국

바투 칸의 금장칸국(또는 킵차크 칸국)의 건설과 서방 원정 이후 200년 뒤인 1438년 카잔 칸국이 등장한다. 카잔 칸국은 1552년까지 카잔을 중심으로 번성하였으나 러시아인 노예 사냥과 무역을 주로 했던 카잔 칸국의 특성상 러시아인 노예 숫자가 타타르인의 숫자를 넘어가는 1530년부터 카잔 칸국은 점차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34년과 1535년 모스크바 공국을 침략한 카잔 칸국에 대해 러시아 공국의 이반 4세가 카잔 칸국을 침공하여 1552년 10월 2일 카잔 칸국이 함락 및 멸망하여 루스 짜르국에 편입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카잔 칸국 영토,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카잔 칸국 영토,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러시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자 古유물 저장고인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에는 현재 91만개 이상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타타르스탄 지역의 고대와 중세 지역 역사의 복잡했던 역사적 기록물과 유물들만 27만개 이상, 12세기 이후의 등장한 타타르민족의 민족정체성을 나타내는 컬렉션은 약 23만개 이상을 보유 중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였던 것은 복잡할 수 있는 징기스칸의 등장, 주치 울루스, 이를 계승한 바투 칸의 금장칸국(또는 킵차크 칸국), 주치의 큰아들 오르다의 백장 칸국, 청장 칸국, 카잔 칸국, 몽골의 투르크화, 타타르민족의 러시아화, 소비예트 연방에 귀속된 타타르스탄공화국와 오늘날의 타타르스의 역사를 유물 뿐만 아니라 지도, 고고학 발굴기록지, 발굴지에 관한 사진 자료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 그리고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가지고 연구하던 고고학자에 관한 소개가 함께 되어있어 다방면으로 당시의 모습을 이해하며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유라시아와 투르크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대단히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굑튀르크 카간국 지도,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굑튀르크 카간국 지도,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정보] 타타르스탄국립박물관

러시아어: Национальный музей Республики Татарстан

영어: National Museum of the Republic Tatarstan

홈페이지: https://tatmuseum.ru/

13세기에 기록된 아랍어 문법서,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13세기에 기록된 아랍어 문법서, 타타르스탄공화국 국립박물관 (촬영: 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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