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국립극단이 6월 2일부터 14일까지 츠쿠다 노리히코 작, 류주연 연출의 '허물'을 소극장판 무대에 올린다.

2005년 도쿄 '문학좌 아틀리에'에서 초연한 '허물'은 일본의 대표적인 연극상인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을 수상하고 일본 각지에서 공연되며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선 지난해 한일연극교류협의회와 국립극단이 공동주최한 '제6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기발한 상상력 속에서도 빛나는 서정성이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허물'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어느 날 몸의 허물을 벗으며 점점 젊어진다는 작가의 재치 있는 발상으로 전개된다. 80대에서 20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아버지의 삶을 마주하면서 아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성숙한다.

작가는 '허물' 집필 당시에 대해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이 본인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동갑인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바람으로 작품을 쓰게 됐다"고 한 바 있다. 허물을 벗을수록 젊어진다는 발상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이 빚어낸 상상의 결과물이다. 젊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만화적인 설정은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한 시선과 연극적 장치로 무장하여 흥미롭게 펼쳐진다.

작품 속 40대 아들 다쿠야는 80대부터 20대까지의 아버지를 만나는데, 무려 6명의 배우가 '아버지'로 무대에 등장한다. 현재를 살지만, 치매에 걸려 인지능력을 상실한 80대 아버지(임홍식 분), 다정다감했던 60대 아버지(정태화 분), 건강은 나빴지만 가장 열심히 살던 50대 아버지(조영선 분)는 다쿠야에게 비교적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여자를 좋아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추구하던 40대 아버지(신안진 분), 앞날에 대한 꿈으로 활기가 넘치는 30대 아버지(반인환 분),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기 전의 천진한 20대 아버지(조재원 분)는 그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결코 만날 수 없는 아버지의 오랜 과거다.

▲ ⓒ 국립극단
각 세대의 아버지들은 좌절을 맛본 아들에게 자신의 삶과 체험을 숨김없이 들려준다.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아버지의 모습들을 끊임없이 마주하면서 아들 다쿠야는 아버지가 아닌 개인으로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삶을 자연스레 투영한다.

결국 '허물'은 과거 아버지들과의 만남을 통해 결혼, 이혼, 외도, 사랑, 가족 등 '인간'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꿰뚫는다. 관객들은 허물을 벗으며 진정한 자아에 가까워지는 주인공들에 공감하고, 아버지의 먼 과거와 나의 먼 미래가 만나는 영원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 츠쿠다 노리히코는 만화적인 비약과 웃음, 그로테스크한 과장을 부조리한 이야기 속에 섞어 놓았다. 그는 믿어온 것(일상과 안정)을 잃어버린 순간에 인물들의 표면이 붕괴하고 본심이 드러난다며, 그들의 허물을 벗겨버린 다음 관계성을 주시하는 것이 연극의 재미라고 말한다.

류주연 연출은 6명의 아버지를 개성 있게 살리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의 일생으로서 보편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만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삶을 찾아가는데, 이 변화에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존재에 대해 환기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일본희곡 특유의 경쾌하고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작품은 류주연 연출에 의해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다가도 때로는 섬세하고 진지한 무대가 기대된다.

한편 '젊은연출가전'은 새로운 연극언어와 주제의식을 담은 젊은 예술인들의 고민이 담긴 무대다. 2012년 성기웅 연출의 '다정도 병인 양 하여'와 최진아 연출의 '본다', 2013년 김재엽 연출의 '알리바이 연대기' 등 매해 참신한 소재와 새로운 연극적 시도로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2015년부터는 공동제작이었던 '젊은연출가전'을 극단 자체제작으로 확장하여 더욱 폭넓게 지원하며, 신선함을 넘어 연극적 완성도를 높이는 중견 연출가로의 성장을 함께하고자 한다. 2015년 '젊은연출가전'은 지난 4월 '소년 B가 사는 집'에 이어 '허물'로 이어진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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