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전시장의 예술품 같았다.

이 사건의 쟁점은 미국 스파이 방지법(the Espionage Act)이다.

 

2023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뒤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은 예술의 이해 가능성이다. 내가 시도했던 영화들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설명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상징적이었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집중되지 않는 때도 있었다. 마치 전시장의 예술품 같았다. 생각해보게 됐다.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또는 어렵다면 그건 예술로서 가치가 있는가?

이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햇살이 있을 때는 따뜻하다가도 비만 내리면 쌀쌀해지는 베를린이었다.
이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햇살이 있을 때는 따뜻하다가도 비만 내리면 쌀쌀해지는 베를린이었다.

영화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가 있다. 티나 새터(Tina Satter) 감독의 리얼리티(Reality)다. 한 주택에서 영화가 전개된다. 한 여성의 집에 두 FBI 요원이 찾아온다. 여성의 범죄를 알고 있는 듯 질문을 이어가는데, 긴장감이 점점 고조된다. 대화의 내용 자체는 위협적인 것들이 없지만, 여성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불안을 더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음성녹음은 현장에서 FBI 요원에 의해 실제로 녹음된 것이다. 리얼리티 위너(Reality Winner)라는 인물은 기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입건되었다. 위너는 2024년 11월까지 보호관찰 대상이다. 그 문건에는 러시아 정부가 201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표 소프트웨어를 파악하려한 과정의 세부사항이 담겨있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토론이 진행됐다.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토론이 진행됐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 사건을 알아야 한다. 이 사건의 쟁점은 미국 스파이 방지법(the Espionage Act)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기술 관련 기밀을 적국에 넘긴 사람과 대중이 알아야 할 정보를 언론사에 넘긴 사람이 동일하게 처벌받을 수 있다. 위너는 본인이 이 법을 어겼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스파이 방지법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나에게는 이번 영화제가 첫 예술영화 경험이다. 이전에는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을 통해 상업영화를 감상했다. 해석이 어려운 작품은 관객들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 하나의 관점 조차도 가지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모호한 작품에 대한 관점을 가지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세상에 모호한 것들은 영화 말고도 너무나 많다. 영화의 메시지가 명확하길 바라는 것은 최소한 영화만이라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인 것 같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영화를 본 건 처음이다. 하루에 영화를 두세 편씩 보기도 쉽지는 않았다.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에 갔을 때는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날카로워진 상태였으면 좋겠다.

 

참고

Arkin, W. M. (2021, February 13). Reality Winner, imprisoned for leaking classified report, calls her case a Trump ‘retribution’ effort. NBC News. Retrieved from https://www.nbcnews.com/politics/donald-trump/reality-winner-imprisoned-leaking-classified-report-calls-case-trump-i-rcna46683

 

문화뉴스 / 최경헌 기자 khchoi9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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