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조디 커윅의 작품들. 두 작품 제목 모두 ‘무제’로, 2023년작이다. /  https://www.artsy.net/artist/jordan-kerwick
사진 = 조디 커윅의 작품들. 두 작품 제목 모두 ‘무제’로, 2023년작이다. / https://www.artsy.net/artist/jordan-kerwick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오혜재]  예술계의 ‘아싸’, MZ 세대의 ‘인싸’가 되다

2022년 9월, 국내 대표적인 미술품 경매행사인 케이옥션(K-Auction)의 경매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열렸다. 60억 원 규모의, 전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 100점이 선보인 행사였다. 출품작 중에는 호주 출신의 화가 조디 커윅(Jordy Kerwick)의 작품 <무제>도 포함되었는데, 그 추정가가 9,500만원-2억5,000만원에 달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커윅은 2022년 가장 많은 문의와 입찰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가축과 포식 동물, 괴기스러운 생명체, 책더미 및 화병 등의 정물을 소재로, 고대 도상학과 미술사적 요소를 독특하게 조합시키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커윅은 전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개인/공공 컬렉션에 그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예술적 역량 외에도,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비주류 예술, 날것의 미학

‘독학 예술’은 비주류 예술을 총칭하는 개념인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에서 세분화된 영역이다. 비주류 예술에 대한 인식은 1920년대 초, 유럽의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질환자들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는 심령주의(spiritualism)와 영매술, 상징주의(symbolism)와 표현주의(expressionism), 프로이트(S. Freud)의 무의식과 초현실주의(surrealism), 원시주의(primitivism)와 아동화 등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미국과 유럽에서 태동한 다양한 사회/문화예술 기조와 어우러지면서 그 개념이 서서히 정립되어 갔다. 1945년,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인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주류 사회 및 예술계 밖에 존재하는 창작자들의 예술을 ‘날 것의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 브뤼’(Art Brut)라고 칭했다.

이후 1972년 영국의 예술학자 로저 카디널(Roger Cardinal)이 아르 브뤼의 영문 번역어로서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라는 용어를 고안했고, 이는 비주류 예술이 보다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개념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르 브뤼 개념에서의 예술가는 광인, 죄수, 장애인이지만, 아웃사이더 아트는 정식 예술교육을 받지 않은 모든 창작자들을 예술가로 본다. 이후 아웃사이더 아트는 민속 예술(Folk Art), 독학 예술(Self-taught Art), 예지 예술(Visionary Art) 또는 직관 예술(Intuitive Art), 나이브 아트(Naïve Art), 프리미티브 아트(Primitive Art), 버내큘러 아트(Vernacular Art) 등 다양한 예술 영역들로 세분화됐다. 이들 영역 중에서 독학 예술은 가장 개방적이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상업 갤러리 등 주류 예술계와도 적극적으로 교류·협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튜이트(Intuit)는 1991년 시카고에 설립된, 아웃사이더 아트의 전시/연구/홍보를 담당하는 유일한 단체다. 인튜이트는 아웃사이더 아트를 “주류 예술계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비전을 토대로 동기를 부여받는 예술가들의 작품”이라 정의하면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의 특징으로 다음의 4가지를 꼽는다.

첫째,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예술가다. 즉, 미술 학교에 다니지 않았거나 학계 내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다. 이들 중 다수는 뮤지엄의 작품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작품은 주류 미술 밖에서 창조된다.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는 자신의 경험, 관심,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순전히 그들 자신을 위해 창작활동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주변 환경과 소통하며 예술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둘째, 아웃사이더 아트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반드시 관객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라고 하면 예술품을 팔려는 의도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는 기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작품을 팔려는 의도로 작품을 창작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지 않는다.

  

셋째,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은 주류 예술가들과는 다른 이유로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려는 동기를 갖는 경우가 많다.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는 자신의 삶의 경험과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면서 스스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 많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이 예지 예술가(visionary artist)로 알려져 있고, 몇몇은 신이나 다른 영적 또는 지적인 근원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예술을 창조한다. 이들은 강한 내적 비전을 갖고 있으며, 예술작품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낀다. 충동, 집착 또는 종교적 영감이 종종 이들을 예술로 이끌어낸다.

  

넷째, 많은 주류 예술가들과 달리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은 비전통적이고,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기존 용도에서 변경된 재료 및 오브제를 작품에 활용한다. 특히 미술용품을 활용할 수 없는 경우에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이며, 집, 마당, 동네 등 주변 환경의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비주류 예술 100년, 한국은 어디쯤 왔는가 

최근 몇년 간 소위 ‘아웃사이더 아트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국제 경매, 갤러리, 박람회에서 아웃사이더 아트가 소개되었고, 점점 더 많은 전문 컬렉션이 탄생했다. 2023년 1월, 뉴욕 크리스티(Christie’s)에서 열린 아웃사이더/버내큘러 아트 판매액이 42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에 달했으며, 대표적인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빌 트레일러(Bill Traylor)의 작품도 새로운 경매 기록을 세웠다.

  

1920년대 초 유럽의 정신의학에서 시작해,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비주류 예술은 개념화와 세분화, 확대와 정착의 과정을 거쳤다. 이들 대륙 곳곳에는 다양한 비주류 예술 전용 뮤지엄 및 갤러리가 운영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인튜이트의 경우, 시카고 출신의 대표적인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인 헨리 다거(Henry Darger)의 컬렉션을 비롯해 1,300여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매년 아웃사이더 아트 및 독학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작업을 수행한 예술가, 전문가, 또는 지지자에게 ‘비전상’(Visionary Award)을 수여한다. 뉴욕에서는 1993년부터 매년 아웃사이더 아트 페어(Outsider Art Pair)를 개최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1989년부터 전 세계 유일의 비주류 예술 잡지인 『로우 비전』(Raw Vision)을 발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해외 예술계에서는 비주류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소통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비주류 예술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을까. 필자는 저서 『독학 예술가의 관점 있는 서가: 아웃사이더 아트를 읽다』(2022)를 통해 국내 비주류 예술의 현주소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크게 3가지의 시사점을 도출해낸 바 있다. 아웃사이더 아트 자료가 양적·질적으로 부족하고, 소위 ‘진화된 개념’으로서의 비주류 예술에 대한 접근과 분석이 부족하며, 국내 아웃사이더 아트 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지원하는 ‘구심점’이 부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다양한 비주류 예술 영역을 다루는 자료들을 찾기 어려우며, 아시아 최초의 아르 브뤼 및 아웃사이더 아트 전문 뮤지엄인 벗이미술관을 제외하고는 비주류 예술 활동들이 장애인 등 ‘특수계층’을 위한 것으로만 국한되어 있다.

  

한국에서 독학 예술가로 활동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솔직한 심정으로 “해외가 더 쉬워요”라고 말하고 싶다. 국내 예술계에서 그만큼 비주류 예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영국의 공신력 있는 아트 페어 프리즈(Frieze)와 협업할 만큼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한국이지만, 비주류 예술에 있어서는 국제사회의 조류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의 말처럼, 비주류 예술 100년의 역사를 토대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웃사이더 아트에 대해 한국의 예술계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사진 = 독학예술가 오혜재
사진 = 독학예술가 오혜재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 오혜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도 작품을 선보이면서, 국내외 다양한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20년 싱가포르 아시아예술협회(AAA) 주최 <코로나19 국제 자선 그림 공모전>에서 아티스트 부문 금상을 수상했고, 2021년 이탈리아 현대작가센터(COCA) 주최 <제3회 COCA 국제 공모전> 1차 선정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에는 <제3회 갤러리한옥 불화·민화 공모전> 특선 수상, 독일 기후예술컬렉션(CAC) 선정 작가, 홍콩 <아웃사이더 아트 VR 전시회> 2등상 수상을 달성했다.

직장인이자 저술가이기도 한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서로는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와 『독학 예술가의 관점 있는 서가: 아웃사이더 아트를 읽다』(2022)가 있으며, 예술 비평문과 칼럼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다년간의 국제 업무 경험과 석사 전공을 토대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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