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니스트]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1위 자리를 인텔에 뺏기자 K-반도체가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 399억 500만 달러(약 53조 5,000억 원)에 머물러 486억 6,400만 달러(약 65조 2,000억 원)인 인텔에 이어 2위로 내려앉았다. 2021년 탈환했던 반도체 산업 왕좌를 2년 만에 다시 넘겨준 셈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반도체 매출은 전년 대비 37.5% 감소했으며 시장 점유율은 7.5%를 기록했다. 인텔 역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6.7% 줄었지만, 시장 점유율을 9.1%로 높이며 2년 만에 순위를 다시 뒤집었다. 사실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 생산)’시장의 60% 가까이 점유한 대만의 TSMC까지 포함하면 3위로 평가받아야 한다. SK하이닉스도 2022년 4위에서 지난해 6위로 두 계단 떨어졌다.

이렇듯 K-반도체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에 치중하면서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대응해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거나 경쟁자들이 따라오기 힘든 초격차를 만들어나가는 경쟁사들과 달리 메모리반도체 1위에만 안주해온 결과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재난까지는 아니겠지만 글로벌 1위 자리를 뺏긴 K-반도체의 현실은 가슴이 아프다. 실제로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매출 규모는 5,330억 2,5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1.1% 줄어들었는데 그중에서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37% 줄면서 감소 폭이 매우 컸다. 이를 품목별로 보면 D램 매출은 38.5% 감소한 484억 달러, 낸드플래시 매출은 37.5% 줄어든 362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비메모리 매출은 전년 대비 3% 감소하는 데 그쳐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반도체 강자의 명성에 취해 안일하거나 방심한다면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업계를 주도했던 일본이 급변하는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몰락했던 전철을 밟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과 대만의 공세를 피하려고 무리하게 기업 인수합병(M & A)을 밀어붙여 외려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메모리반도체에선 1위지만 미래 시스템반도체 설계에선 존재감이 없고, 배터리도 미래 기술 기준에서 보면 중국에 밀린다는 얘기다. 식어가는 성장동력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 순위에서도 애플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삼성은 그동안 애플에 스마트폰 매출과 영업이익에서는 뒤처져도 출하량에서는 2010년 갤럭시폰 출시 이후 세계 정상을 지켜 왔으나, 13년 만에 출하량에서도 선두를 내준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DC 자료를 보면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애플이 2022년 18.8%보다 1.3%포인트 오른 20.1%인데, 삼성은 2022년 21.7%보다 2.3%포인트 떨어진 19.4%에 그쳤다.

삼성 갤럭시폰은 현재 600달러 이상의 고가 단말을 의미하는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에 밀리고, 중저가 보급형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에 쫓기는 ‘넛 크래커(Nut-Cracker │ 선진국에 비교해 기술과 품질 경쟁에서, 후발 개발도상국에 비교해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애플은 점유율 71%를 차지했으며 삼성전자는 17%로 2위였다. 화웨이(5%), 샤오미(2%), 오포(1%) 등 중국 기업이 뒤를 이었다. 애플은 2022년 점유율 75%를 기록한 데 반해 지난해에는 약 4%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판매되는 프리미엄폰 10대 중 7대가 아이폰이다. 아이폰의 평균 판매 단가는 갤럭시폰에 비교해 3배 이상 더 비싸다.

무엇보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부진이 치명적이다. 샤오미, 오포 등이 애국심 마케팅에 편승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삼성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0%대로 존재감을 아예 잃었다. 보급형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의 추격에 고전하고 있다. 초저가폰 브랜드인 중국 트랜션은 지난해 아프리카와 남미, 중동 시장 등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세계 5위로 올라섰다. 화웨이의 부활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간 화웨이는 미국의 통제로 5G 칩을 구매할 수 없게 된 뒤 3년 가까이 5G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놓지 못했다. 미국 제재를 뚫고 지난해 9월 3년 만에 5G폰 신제품을 출시한 화웨이는 2022년 3,000만 대까지 감소한 출하량을 올해 1억 대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화웨이는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위청동(余承东)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10일 연례 컨퍼런스에서 “매우 선도적이고 혁신적이며 파괴적인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두뇌의 전문인력 육성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미국의 AI 개발 업체 AIPRM은 한국이 지난해 수준으로 AI 투자를 이어갈 경우 미국이 2040년에 도달할 기술력을 따라잡는 데 447년이 걸릴 거라는 분석(미국 AI 개발업체)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생존을 위해 인재·기술·투자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과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준엄한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한국이 지난 5년 AI에 투자한 예산이 미국의 3%에도 못 미치고, AI 기술 특성상 갈수록 격차가 커지는 점이 근거다. 지난해 AI 시장 확대에 힘입어 세계 랭킹 5위에 오른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DA)처럼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의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대학 등에 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Incentive) 지원과 정원 확대를 통해 뛰어난 인재를 키우는 노력도 결단코 빼놓을 수 없다.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의 세 배에 달하고 부가가치도 높은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서둘러 획기적인 AI 육성 계획을 세우고 민관이 원팀이 돼 조속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월 15일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 캠퍼스에서 대통령 주재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열어 ‘세계 최대·최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 판교·수원 등 경기 남부에 집적된 반도체 기업과 기관을 한 데 아우르는 개념이다.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탄탄한 공급망을 뒷받침하고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 ’등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 허브로 키워야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정부는 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적기에 공급하고 과감한 규제 혁파와 세제·금융 지원으로 생태계 구축에 속도전을 펼쳐야 한다. 삼성은 1990년대 디지털 전환, 2000년대 모바일 전환 등 산업 전환기에 기회를 찾아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다. 회사 안팎의 위기와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을 삼성이 돌파할 수 있도록 오로지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식어가는 성장동력 서둘러 되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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