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1.25
캐스팅: 박정복, 정일우
장소: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좌석: 3열 우측

"서로 다른 죄에 메인 두 사람의 뜨거운 입맞춤"

거미는 거미줄을 치고 자신을 찾아오는 이를 기다린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처럼. 사랑, 그 순수한 열망을 가만히 불태우는 거미의 모습은 미련하고도 진득하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거미'와 '표범'이라는 상징을 통해 사랑의 원초적인 형상을 조명한다. 상대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어 모든 것을 쏟아내는 표범과 상대를 가만히 지켜보며 천천히 감싸 안는 거미는 세상의 정반대에 놓인 듯 극명히 다르다. 지독히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석의 양극처럼. 햇빛 한 줄기가 겨우 들어오는 갑갑한 지옥, 그 안에 갇힌 거미의 표범 이야기가 잔잔히 극장 안을 채운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빚어낸 낭만 뒤의 씁쓸한 엔딩크레딧
사진 = 강시언 / [리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빚어낸 낭만 뒤의 씁쓸한 엔딩크레딧

 

신념을 가진 죄로 감옥에 갇힌 발렌틴과 사랑을 한 죄로 감옥에 갇힌 몰리나는 좁디좁은 감옥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지극히 차가운, 지극히 뜨거운 심장을 가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둘밖에 없는 지루한 감방 안, 몰리나는 자신이 좋아하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고 발렌틴은 어느새 그 이야기에 매료된다. 어느새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게 된 두 사람은 동료 이상의 감정으로 서로를 대하게 되는데... 지독히 잔인한 동상이몽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기는 하나, 단순히 두 인물 사이의 사랑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갈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해와 온정, 죄책감, 불안, 희망... 삶 속에서 모든 인간이 겪는 그 모든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진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낸다. 같은 거미줄 안에 놓인 이들의 엇갈린 운명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조차 긴장감을 자아내며 극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주는 몰입감은 그 무엇보다 강렬했다.

발렌틴과 몰리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작품의 시선은 꽤 관망적이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기보다는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으로 한 걸음 물러선 곳에서 조명한다. 이런 극의 태도는 이 둘이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다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인류애적 이끌림이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멜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멀고도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천천히 서로에게 매료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먹먹한 잔상을 남긴다.

다혈질적인 혁명의 화상, 발렌틴 역을 연기한 박정복 배우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때로는 타오르듯 열정적인, 때로는 지독히 냉철한 모습으로 급변하는 온도 차까지 훌륭히 소화하며 발렌틴, 그 자체가 된 듯한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온갖 감정이 혼재하는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었으며 목소리, 액션, 섬세한 소품 활용 등 모든 면에서 깊은 감명을 주었다. 상대역인 정일우 배우의 나긋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깊은 감정 연기 역시 좋았다. 공연 초반인데도 두 배우가 뛰어난 합을 보여주어 앞으로 이어질 공연에서 얼마나 더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줄지 크게 기대가 된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빚어낸 낭만 뒤의 씁쓸한 엔딩크레딧
사진 = 강시언 / [리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빚어낸 낭만 뒤의 씁쓸한 엔딩크레딧

 

감옥 안을 표현한 무대 디자인은 발렌틴과 몰리나, 두 사람에 대한 특징적 묘사가 잘 이루어져 있다. 각종 소품 등으로 인물의 공간을 꾸며 둘의 성격과 상황 등을 유추할 수 있도록 영리하게 설계되었다. 무대와 소품을 보며 인물의 성격, 행동의 기원 등을 추측하는 것 또한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된다. 무대가 암전되는 타이밍 또한 적절하여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전체적으로 무대 공간의 퀄리티가 매우 높게 느껴졌다. 다만 극장의 입장 구조는 매우 좁고 이동이 불편하므로 거동이 불편한 관객의 경우 충분한 주의를 요한다. 

한 인간에게 끌리는 다른 한 인간에 관한 멜로 드라마. 나는 이 연극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이끌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이들 역시 그럴 뿐이다. 이들의 사랑이, 이들의 키스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창문 틈새로 스미는 봄바람처럼 간질간질한 그 감정을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기에. 이들이 느끼는 낭만이 이 세상 어디에선가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하기를,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한편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예그린씨어터에서 3월 31일까지 공연된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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