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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문화뉴스 전민서 인턴기자] “너 자신을 폄하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모든 게 다른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을까. 

자신을 여자라고 믿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 몰리나 역에는 배우 정일우, 전박찬, 이율, 냉정한 반정부주의 정치범 발렌틴 역에는 차선우, 최석진, 박정복이 캐스팅됐다.

연극은 각각 동성애, 반정부주의라는 죄목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빌라 데보토 감옥이라는 폐쇄 공간 속에 갇힌 몰리나와 발렌틴의 대화로 시작된다. 몰리나 발렌틴에게 ‘표범 여인’ 영화의 줄거리를 들려주지만 발렌틴은 사사건건 이야기에 태클을 걸며 몰리나를 방해한다. 

두 사람은 성격, 가치관 등에서 모두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몰리나가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가깝다면 발렌틴은 무채색이다. 그건 좁은 방을 함께 쓰면서도 완전히 다른 인테리어로 꾸며진 무대 위 두 사람의 공간과 의상에서부터 표가 난다. 

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몰리나는 어두운 감옥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는 듯 하늘거리는 겉옷에 티팟과 슬리퍼 등을 갖추고 있지만, 구석 한켠에 책장을 둔 발렌틴은 깁지도 못한 헤진 옷, 맨발 차림에다 투쟁의 흔적으로 다리를 절기까지 한다.

몰리나와 발렌틴은 좀처럼 가까워질 것 같지 않다. 감옥 밖에서 독재에 저항하며 인생을 투쟁에 써왔던 발렌틴에게 몰리나는 신념 하나 없이 헛된 꿈을 꾸는 한심한 이상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런 발렌틴의 뒤편에서 몰리나는 감형을 거래로 교도소장과 내통하며 발렌틴과 그가 속한 반정부 조직의 정보에 대해 캐내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때 보이스오버 형태로 교도소장과 대화하는 몰리나와 감옥에 홀로 남아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등 아무것도 모른 채 몰리나를 기다리는 발렌틴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발렌틴이 한심하다고 여겼던 몰리나가 생각처럼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그러나 ‘표범 여인’의 영화가 두 사람을 합일에 이르게 만든 걸까. 두 사람은 계속해서 영화에대해 이야기한다. 약이 든 밥을 먹고 배탈이 났을 때도, 두 사람이 말싸움을 한 직후에도 줄곧. 

그 과정 속에 몰리나와 발렌틴은 살아온 흔적과 배려, 때로는 어디에도 터놓은 적 속마음을 나누며 서서히 가까워진다. 마침내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토록 바라왔던 ‘안정감’을 느낀다. 

전박찬의 몰리나는 아주 섬세하다. 배탈에 몸을 웅크리고 앓을 때나 발렌틴에게 이전까지 드러낸 적 없던 욕망을 이야기할 때, 전박찬은 마치 역할 그 자체가 된 양 몰리나의 서러움이 느껴져 절절 끓는 데가 있다. 

최석진의 곧 흩어질 듯하다 타오르는 강렬한 연기도 그렇다. 최석진은 막시즘을 위해 투쟁하다 감옥에 갇힌 정치사상범과 부유한 집안의 여식을 마음에 품은 데 대한 갈등 사이에 머물러 있는 발렌틴을 완벽히 연기해 극을 긴장감 있게 만들다가도 그의 다사다난했던 삶의 궤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사진=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장면 / 문화뉴스DB

내심 행복을 바랐던 둘의 미래는 결국 비극에 치닫는다. 감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진행되는 사건들은 무대 바깥의 목소리만으로 연출해 상황은 더 안타깝다. 성소수자와 정치범이라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분으로 마침내 서로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 둘이 마주한 결과는 어쩌면 작품이 줄곧 이야기해 온 인간애보다 더 큰 현실이 있음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공연의 끝에서 영화 속 ‘표범여인’의 의미가 비교적 직관적인 데 반해, ‘거미여인’은 어째서 ‘거미여인’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그물에 걸린 먹잇감에 서서히 독을 주입해 사냥하는 모습이 꼭 발렌틴을 꾀어 사랑에까지 이르게 한 몰리나를 상징하는 것일까. 

원작의 극문학적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머리로 온전히 그 뜻을 이해하기에는 많은 사유를 거쳐야 하나, 틈 없이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극의 마지막에 도달해 있다. 말다툼을 일삼던 두 사람이 결국 같은 꿈을 꾸게 된다는 것 또한 극을 보는 재미다. 

극 중 상황의 마무리를 알렸던 암전 연출처럼 눈을 감고 몰리나와 발렌틴을 생각한다. 

문화뉴스 / 전민서 기자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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