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챗GPT 출시로 불과 1년여 만에 인공지능(AI) 대중화 시대를 연 미국의 ‘오픈AI’가 이번에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을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챗 GPT를 만드는 ‘오픈AI’의 ‘샘 올트먼(Samuel Harris Altman)’ 최고경영자(CEO)는 AI용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겠다며 생산공장 건설을 위해 최대 7조 달러(약 9,300조 원)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고 한다. 놀랍게도 한국 GDP(국내총생산)의 무려 4배에 달하는 규모다. 반도체 주도권을 둘러싼 빅테크(Big-tech) 기업 간의 ‘칩워(Chip war│반도체 전쟁)’에서 반도체 강국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AI) 혁신을 주도하는 ‘오픈AI’가 천문학적인 투자를 통해 직접 반도체 개발까지 나서게 된다면 반도체 산업의 판도는 단번에 뒤집힐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전체 매출액이 5,270억 달러(700조 원) 수준이라는 걸 고려하면, ‘오픈AI’의 목표 펀딩액(7조 달러)은 시장 전체 매출액의 무려 13.28배가 넘는 규모여서 기존 반도체 시장을 완전히 뒤바꿀 천문학적인 숫자다. 올트먼 CEO는 아랍에미리트(UAE)의 AI 기업이자 ‘오픈AI’ 투자사이기도 한 G42의 타흐눈 빈 자예드 회장 겸 UAE 국가안보 고문을 만난 것으로 볼 때, 업계는 오픈AI가 중동 오일머니를 확보해 AI를 훈련·운용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의 생산 시설을 수년 안에 10여 곳을 건설한 뒤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반도체가 현재도 격차가 큰 TSMC를 아예 따라가기조차 요원해질 만큼 더 큰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70년 가까운 반도체 역사에서 반도체 산업은 잠시만 한눈팔아도 주도권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는 분야라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에서 여러번 목도된바 있다. 1956년에 윌리엄 쇼클리(William B. Shockley)는 마운틴뷰에 벡맨 코울터의 부서로 쇼클리 세미컨덕터 래버러토리를 신설하였다. 1961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가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를 상용화한 이후 디지털 이머징 소자를 개발하는 등 반도체 생산의 중심지가 된 미국 실리콘밸리는 1970년대까지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미국 기업이 주도하던 반도체 시장에 제조 기술력을 앞세워 치고 올라간 것은 일본 기업이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움츠러들자, 정부의 지원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소니,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이 1980년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다. 그렇게 되자 미국은 환율 조정과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주춤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장악했고, 대만의 TSMC는 시스템반도체 일인자로 등극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발표하며 빠른 속도로 급성장하자 미국 주도하에 2022년 7월 화웨이를 제재하고, 반도체 개발과 생산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한국(메모리 분야), 미국(원천 기술), 대만(비메모리 분야), 일본(장비 공급) 등 4개국이 각각 자국의 전문성이 강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 동맹 국가간 안정적으로 반도체의 생산과 공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른바 ‘칩4 동맹’을 구축한 것만 보아도 승자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 반도체 산업의 무섭고 냉정한 정글의 특징을 보여준다.

반도체는 국가안보를 위한 중요한 자산이면서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기술이다. ‘오픈AI’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인 반도체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은 AI 개발 속도를 하드웨어(반도체)가 제 때에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현상 탓이 크다. 게다가 AI 연산에 주로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엔비디아(NVIDIA)’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는 데 따른 피로감도 한몫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렀듯 ‘오픈AI’가 반도체 제작을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챗GPT는 데이터 연산을 초고속으로 수행하는 반도체를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픈AI’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AI 개발에 나서면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AI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다음으로 현재 주로 AI용 반도체로 사용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게임 그래픽을 위해 개발돼 AI용 반도체로는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오픈AI가 생성AI에 쓰일 반도체를 맞춤형으로 직접 제조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AI 소프트웨어 진영이 AI 하드웨어까지 직접 넘보고 나서는 ‘반도체 지각변동’은 무한경쟁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으로 새로운 ‘칩워(chip war)’의 상징과도 같다.

AI 시대에 반도체 패권 전쟁은 가공할 만큼 큰 규모와 빛의 속도로 무섭게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설계 최강국인 미국은 상무부를 중심으로 지난 1월 16일(현지 시각)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근거해 50억 달러(약 6조 6,000억 원)를 투자해 ‘국립 반도체 기술진흥센터(Natcast │ 냇캐스트)’를 설립하고,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시놉시스의 최고보안책임자(CSO) 디어드레 핸포드를 소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대만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TSMC의 신공장 건설을 국가 존망이 달린 프로젝트로 보고 총통부터 각 부처 장관과 지자체장이 똘똘 뭉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도 지난 1월 8일 교도통신 등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일본 구마모토에 신설하는 파운드리 생산공장 건설 작업을 이미 지난해 말까지 모두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통신은 TSMC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TSMC는 반도체 장비 반입 및 생산라인 구축 작업을 시작했다”며 “2월 24일 준공식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라고 보도했다. 또한 2조엔(약 18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하며 TSMC를 유치해 구마모토현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성 중이며, 오사카 등 지역에 제3공장 신설을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올트먼 CEO의 계획이 현실화하면 누가 오픈AI의 핵심 파트너가 되느냐에 따라 반도체 업계의 판도가 크게 달라진다. 반도체에 기반이 없는 ‘오픈AI’가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업이 필수다. ‘오픈AI’가 대만의 TSMC에 운영을 맡긴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올트 먼CEO가 최근 한국을 찾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1월 25일 저녁 늦게 한국을 찾았으며 26일 오전 반도체 생산라인 등을 둘러보기 위해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했다. 삼성전자의 경계현 사장 및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잇따라 만났다.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모든 게 녹녹지 않다. 기업 판도도 바뀌고 있다. AI 반도체의 8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는 기업 가치가 급증하면서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442조 원)의 5배가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난 1월 28일 반도체업계와 존페디리서치 등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전 세계 PC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87%를 점유했다. AMD(10%), 인텔(3%)을 압도적으로 제쳤다.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58%로 늘린 대만의 TSMC는 지난해 매출이 삼성전자·인텔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반도체 영업이익은 81억달러(약 10조 9,000억 원)로 삼성의 4배가 넘는다.

하지만 여지는 남아 있고 기회는 살아있다. 올트먼 CEO가 지난 25~26일 전격 방한해 한국 기업들과 만난 것은 이같은 현실을 깨려는 ‘탈(脫)엔비디아’ 행보의 일환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사정에 밝은 한 업계 인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 High Bandwidth Memory) 조달 논의가 주로 테이블 위에 올랐다”고 전했다. AI를 구동하려면 GPU와 함께 HBM이 반드시 필요한데,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90% 이상 점유하고 있다. ‘오픈AI’가 GPU 직접 개발에 나설 경우 그 위탁 생산을 삼성전자가 맡는 방안까지 논의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의 삼성전자는 메모리 생산능력은 물론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픈AI’ 입장에서는 삼성과 칩(Chip) 설계부터 손을 잡으면 최근 ‘생성형 AI)’로 급격하게 뜬 HBM까지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오픈AI’에게 삼성전자는 최적의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어쩌면 AI 서버 구축에 쓰이는 HBM 등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요 회복이 더뎠던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시장 규모도 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우위를 확보하려면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이 필수다. 어쩌면 반도체 70년사에서 가장 큰 시장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 놓치면 절대로 안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의 선전을 기대한다. ‘오픈AI’의 반도체 시장 진출이 현실화하면 AI 반도체 생태계에 국내 기업이 반드시 참여해야만 하고 반드시 획득해야만 한다. 정부도 이를 위해 국가 진운의 명운을 걸고 총력을 경주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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