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에 전시된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열선에 일그러진 기둥 시계의 모습 / 사진 = 윤창원 칼럼니스트 제공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윤창원] 11시 2분에 영원히 멈추어진 시계가 있다. 그것은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한 곳에 전시된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열선에 일그러진 기둥 시계이다.

11시 2분은 1945년 8월 9일, 일본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끼에 원폭이 투하된 시각이다.

나가사키항은 우리나라 목표항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될까? 오사카나 요코하마, 고베 항 보다는 작고...나가사키는 개항의 역사가 400년이 넘는 곳으로 15세기 일본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를 받아들인 곳이다. 이곳의 통치자 다이묘는 천주교로 개종을 하면서 항구를 개방했고, 이 항구를 통해 조총과 기독교등 서양 문물을 들어 왔다.

그래서 지금도 나가사키에는 네덜란드 마을과 하우스 텐보스 같은 이국적인 거리와 건물이 많다. 해안을 바라보고 있는 정갈한 주택지에 서면 고요함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도 있다.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일본 여성의 애절함을 그린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도 이 해안을 배경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곳의 여름은 지독히 덥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온도계는 섭씨 37도를 쉽게 올라 간다. 망망한 동해에서 떠오른 해가 아소산을 향해 가면서 나가사키를 내려 비칠때면 가끔 다니는 차를 빼놓고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없어 적막하기 까지 하다.

세계 2차 대전 중 미군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데 이어 다시 1945년 8월 북 큐슈 지역에 있는 고쿠라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곳의 상공은 우천으로 인해 구름이 두껍게 끼어 있다. 시계를 확보 하지 못한 미군의 B-29 폭격기는 구름 한점없이 맑은 인근 도시 나가사키로 항로를 돌린다. 투하 목표는 무기창고인 미쓰비시 공장. 하지만 폭탄은 우라카미 성당 위로 떨어진다.

우라카미성당은 16세게 후반부터 천주교 포교지로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으로, 1587년 천주교 금지령의 박해로부터 1873년 천주교 해금의 날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1914년 우라카미 성당을 완성하고, 1925년에는 두 개의 첨탑을 완성하게 되는데 탑의 높이는 26미터로 동양에서 최고를 자랑하던 곳이다. 그러나, 너무 맑은 하늘 때문에 재앙이 성당을 덮쳤다.

원폭은 히로시마에서 약 7만 명이 사망, 13만 명이 부상, 완전히 연소·파괴된 가옥 6만 2000호, 반소 또는 반파가옥 1만 호, 이재민 10만 명을 냈고, 나가사키에서는 사망 2만 명, 부상 5만 명, 완전연소 또는 파괴가옥 2만 호, 반소 또는 반파가옥 2만 5000호, 이재민 10만 명을 냈다.

우리는 이 인류사의 대 재앙을 단순히 일본이 전쟁을 저지른 원죄의 댓가로 쉽게 생각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속에 묻혀져 있는 것은 원폭 희생자 중 10만명 이상이 일본군으로 편입되거나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한일합병은 이들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인으로 묻어 버린 것이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은 끝이 났다. 

겐바쿠추신코엔(原爆中心公園)은 당시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바로 그 자리를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먼저 원폭 자료관에 들어갔다. 피폭으로 무너진 우라카미 성당의 남쪽 벽 일부가 조형되어 있다. 참상을 미리 예견이라고 했듯 성모 마리아의 처연힌 모습이 연기에 그을어 있다.

누가 지상에서 가장 슬픔을 담은 모습이 로마 바티칸 성당 안에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 죽은 아들의 시체를 안고 슬픔에 잠겨있는 마리아 상이라 해서 본적이 있는데, 이곳에 한번 오시길 바란다. 

죽음들과 함께 쏟아져 내려온 돌무더기를 발아래로 두분의 마리아가 차마 보지 못해 고개를 돌려 버린 모습을 말이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일본 최초로 천주교를 받아 들인 도시이다.

관내에는 처참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열선에 엿 가락처럼 일그러진 게이호 중학교의 저수탱크, 또 학생의 것이었는지 새카맣게 타 버린 도시락과 음료수 병과 같은 것이 열에 녹아 줄줄이 붙어 있는 유리병, 열에 타버린 옷가지, 그리고 기둥시계는 11시 2분에 멈추어져 있다.

약간 어둑한 자료관에서 평화 공원쪽으로 나왔다. 내리 쬐는 햇볕으로 눈이 떠지지가 않는다. 자료관 우측으로 돌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내려가면서 평화 공원은 시작 되는데, 핵 무기를 반대하는 각 국가의 많은 도시에서 보내온 동상이 공원을 장식하고 있다.

원폭이 투하된 곳은 시로야마 초등학교, 진세이 중학교나 나가사끼 대학 등 학교가 밀집된 지역이어서 이때 희생된 사람의 대부분은 군인이 아니라 어린이들과 여성, 노인 등 민간인들이었다.

원혼을 위로하는 색색의 종이학이 비석이나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동상에 걸려 있다. 한 마리의 종이학이 한 영혼을 위로 한다는 믿음으로 어린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접었단다.

공원 앞쪽에는 분수가 물을 뿜고 있다. 당시 원자폭탄에 의한 폭발, 열선, 폭풍, 방사능에 피흘리는 이들은 애타게 물을 찿으며 다시 죽어갔다 한다. 그때도 역시 8월의 뜨거운 여름이었으니 불덩이를 뒤집어 쓴 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공원의 분수는 그 목타는 영혼들을 위해 24시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분수의 머릿글에는 당시 한 소녀의 일기가 적혀 있다.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어요. 연못에는 온갖 쓰레기와 기름이 엉켜 있어요. 그러나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 오염된 물을 마셨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고통으로 몸부림쳐 죽어갔다.

전쟁을 반대하지만, 특히 원폭 같은 무차별적이고 비이성적인 무기는 더욱더 반대한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대상은 당사자인 군인으로 한정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 여성들의 고통은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20세기 전쟁은 이러한 교전의 기본 조차도 무시됐으며, 인류가 과거 1900년 동안 한 전쟁을 모두 합한 희생보다 많은 1000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의 전쟁으로 발생했다.

과학문명은 대량 살상 무기의 발달, 특히 핵무기의 등장으로 전 인류의 운명이 몇몇 미치광이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주고 있다. 우리는 21세기의 문턱을 넘었다. 희망의 뉴 밀레이엄은 달력 몇 장으로 지나갔다.

일본, 미국 등 강대국들의 군비 경쟁과 우주 계획이 확산 되고 있다. 희망의 단어인 군비 축소와 핵무장 해체는 거대담론의 소수로 자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평화 운동은 결국 투쟁이 될 수 밖에 없다. 전쟁을 필요로 하는 세력은 엄연히 존재하며 세계의 시민과 평화세력은 여기에 결연히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분수의 머릿글이 되어버린 일기를 썻던 피폭된 소녀, 10여 년 전 눈 부신 햇빛에 눈을 감고 포즈를 취해 주었던 히로시마의 그 소녀, 모두 같은 또래의 꿈많은 아이들이다. 나가사끼 평화 공원의 비문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목이 메었는지 모른다.

여기 너희들 같은 어린 숨결들이 어리어 있다. 

사진 = 윤창원 칼럼니스트 제공

글 = 윤창원

윤창원은 인도 쓰나미 국제구호활동을 시작으로 미얀마, 아이티,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일본의 자연재해 구호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네팔, 독일, 코스타리카를 비롯 60여개국를 다녀왔다.

서울디지털대 교수로 재직하며 세계 곳곳의 흔적을 통해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사슬임을 배우고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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