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드라마 '징비록'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27명의 왕이 거쳐 간 조선왕조 500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많은 창작물의 주요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조선 시대 사료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세종, 정조 등과 함께 최근 여러 작품에서 다뤄지고 있는 조선 왕이 있었으니 바로 광해군이다. 연산군과 더불어 유이하게 폐위된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광해군이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던 건, 192, 30년대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출신인 신채호부터였다. 신채호는 광해군 치세 실권당인 대북과 핵심인물인 정인홍을 높게 평가했다.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으며, 국사 국정 교과서에선 광해군을 폭군 대신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쳐 외교에 능한 왕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또한, 임진왜란 전후 복구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세제 개편을 보여 조선 근대화의 발판을 다졌다고 후술했다. 광해군을 향한 재평가는, 그를 주인공을 내세운 최근 작품인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 '화정',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대립군'까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 그려진 광해군과 실제 역사에서 기록된 광해군은 얼마나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 차이가 날까? 그래서 준비해보았다. 광해군이 등장한 최근 3개 작품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가려내고자 한다.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의 광해군 : 백성 먼저 생각해 '대동법' 주장한 성군, 정말일까?

'광해'는 장르가 '가상 역사극'이다. 그렇기에 극 중처럼 왕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물과 바꿔치기 되는 일은 없었다. 이런 설정이 들어갔던 건, 광해군의 이야기가 담긴 승정원일기가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점에 착안했던 것일 뿐이다.

극 중에서 '광해군'이 된 '하선'은 모든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로지 굶주린 조선의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등 그야말로 백성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성군으로 묘사되었고, 이 영화를 접한 많은 사람이 실제 광해군도 그럴 것이라고 여겼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외교 정책만 일치할 뿐 광해군의 실제 내정은 상반된다.

극 중에서 전국에 전면 시행하라고 주장했던 대동법, 광해군 즉위년에 경기지역에서만 시행하도록 시행했으나 광해군 본인은 "성공한 선례가 없는 데 성공할까?"라는 의구심을 내비쳤다. 경기권 지역 밖 시행에 대해선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다. 오히려 대동법은 인조 대에 시행착오를 거쳐 효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 MBC 드라마 '화정'

'화정'의 광해군 : 동생을 아끼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왕, 정말일까?

MBC에서 방영한 사극 드라마 '화정'의 실제 주인공은 선조의 막내딸이자 유일한 적녀인 정명공주였지만, 시대상으론 광해군 초기부터 인조 말기까지 다루고 있어, 광해군이 자연스럽게 '화정'에서도 등장하게 되었다.

'화정'에서 등장하는 광해군은 정사를 볼 때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왕이지만, 자신의 여동생인 정명공주에게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혈육에게는 한없이 따뜻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광해군 또한 실제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실제 광해군은 폐위될 때까지 견제의 압박에 시달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자신의 동생인 영창대군과 능양군을 죽이고, 계모인 인목대비를 서인으로 강등해 경운궁에 폐위시켰다. 또한, 아버지 선조와 마찬가지로 즉위 시절부터 왕위계승에 대한 불안감이 광해군에게 큰 영향을 끼쳐 붕당 정치에서 중심을 잡는 데 실패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했다.

▲ 영화 '대립군'

'대립군'의 광해군 : 백성과 함께 성장했던 성군의 자질, 정말일까?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전란 속에서 왕세자 자리를 임시로 물려받아 선조 대신 분조 활동을 펼쳤던 광해군 이야기를 담고 있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극 중에서 광해군은 남의 군역을 대신 짊어지는 '대립군'이라는 하층민 계급과 동고동락하게 된다.

애초에 왕의 자질이 부족했고 두려움에 겁먹었던 유약한 광해군은 '대립군'과 손잡고 험난한 산맥을 넘어가듯이 역경을 함께 극복해나간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란 속에서, 광해군은 자기 백성들의 손을 맞잡으며 비로소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왕이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대립군'이 작은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광해군을 극적으로 묘사한 부분은 있으나, 임진왜란 때 광해군의 분조 활동은 정사에서도 드러난 일이다. 유일하게 왕실의 일원으로서, 광해군은 책임감을 느끼고 전란으로 뒤숭숭한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며, 땅에 떨어진 왕실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하나의 예술창작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창작자의 의도와 표현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그것도 실존 인물을 다룬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대중 대부분은 창작자의 허구가 가미된 역사적 인물을 진짜라고 받아들이고, 이는 곧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역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를 소재로 다루는 창작자들은, 좀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고증을 통해 접근했으면 하는 바이다.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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