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박열' 최희서 "나와 '후미코'의 닮은 점, 그리고 다른 점" ①에서 이어집니다.

'박열'을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씬을 꼽는다면?
└ 사형 선고받기 직전에 후미코가 박열에게 하는 고백도 기억에 남지만, 박열과 후미코가 중간에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이석'의 입을 통해 박열이 "서로 몸에 떨어졌지만 당신과 함께 동거함을 느낀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씬이 기억에 남았다. 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박열이 후미코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열과 반대로 후미코는 "동거하자", "동거서약서 쓰자", "나를 동지로 생각해달라" 등 좋아한다는 표현을 많이 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그동안 확인받지 못했다. 옥살이하던 도중 이석을 통해 예상치 못한 박열의 고백을 듣고, 후미코에게서 볼 수 없었던 그의 연약함과 외로움, 박열을 향한 생각 등이 드러나면서 후미코가 무너지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 씬을 찍을 때 '후미코가 한 번 무너져야 해야 할 것 같다'고 의도했고, 준비과정에서도 신경 썼다. 촬영할 때도 권율 선배님이 잘 전달해줘서 그 씬이 생각한 만큼 잘 나왔다.

▲ 영화 '박열' 스틸컷

이준익 감독 작품에 연달아 두 편 출연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기회다. 감독님과 처음 만났던 '동주'에 캐스팅 된 과정을 알려달라.
└ 당시 지하철에서 연극 대본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신연식 감독님이 그 모습을 우연히 보셨다. 신 감독님이 당시 "쟤는 절실하구나" 하고 느끼셨다고 하셨다. 그 후, 나에게 명함을 주셨고 "다음에 하는 작품이 있으면 함께 해보자"고 긍정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준익 감독님의 '동주'에서 '쿠미' 역할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동주'에서 맡은 '쿠미' 이름을 본인이 직접 지었다고 들었다.
└ 이준익 감독님께서 이미 나를 어느 정도 염두를 두셨다. 그래서 첫 미팅에서 몇 마디 나눠보신 후 그게 감독님으로부터 신뢰를 받았는지, 나에게 성을 한번 지어보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일본 배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앞서 '박열'에서 단순히 배우가 아닌, 초석을 함께 다졌으면, 애초에 캐스팅도 정해진 것 아니었는지?
└ 그건 아니었다. 감독님과 '박열'의 시놉시스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후미코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때 한 귀로 그냥 흘렸으면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날 사서 읽어봤고, 자서전 자체가 감명 깊게 읽어서 감독님께 좋다고 연락했다. 감독님이 "회의하는 데 놀러와"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이걸 도와드리다가 혹시 캐스팅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후미코가 아닌 극 중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로만 생각했다. 후미코라는 역할이 주연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먼저 어필하진 않았다. 나중에 감독님이 "너를 염두해 두긴 했지만, 캐스팅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씀하셨다.

캐스팅은 언제 결정되었나?
└ 10월 중순이다. 이제훈 씨보단 한 달 먼저 결정되었다.

이준익 감독과 두 작품을 함께한 입장에서, 당신이 바라본 이준익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 감독님이 그렇지 않다고 하시지만, '완벽한 리더형'이다. 특별히 이끌지 않아도 사람들이 따르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다. 그 분의 카리스마가 힘이나 권력이 아닌, 그 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철학, 열정에서 나온다. 사람들 또한 감독님의 아우라를 느끼고 있으며, 실제로 이준익 감독님 주변에는 실력이 뛰어나며 열심히 일하는 스태프분들과 성실하신 배우분들이 계신다.

▲ 영화 '박열' 스틸컷 

그리고 감독님이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기 일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계신다. 만약 현장에서 짜증 내거나 화를 내셨다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떠났겠지만, 감독님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신다.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하려고 하며, 배우가 어려움을 느끼면 "난 널 믿으니까, 네가 하는 대로 따라갈게" 식으로 신뢰의 메시지를 먼저 주신다.

촬영 중에 감독님이 특별히 지시한 건 있었는지?
└ 없었다. 하지만 후미코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알고 싶었고, 같이 만들어 가는 입장에서 사무실에 매일 출근해 번역도 하면서 후미코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음 이준익 감독 작품에도 계속 볼 수 있는 건가? (웃음)
└ 감독님이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일본인 배역은 무조건 내가 하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웃음) 이준익 감독님 작품이라면 어떤 배역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감독님이 우스갯소리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박열'이 끝나고 백수가 되면 스크립터도 해달라"고 하셨다. (웃음)

 

이쯤되면 '이준익 감독 라인'인 것 같다.
└ 맞다, 나는 이준익 감독 라인이다. 감독님은 나를 연출부라고 생각하신다. (웃음) 평상시엔 트레이닝복으로 만났다가, 시사회에서 블랙원피스를 입고 등장하니 감독님께서 "이제 배우 같네!"라고 말씀하셨다. (웃음)

평상시에는 어떤 모습이었기에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건가? (웃음)
└ 감독님이 평상시에 나를 '반 배우 반 연출부'로 보셨다. 그러다 한껏 꾸며서 나오니까 "오늘은 배우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앞으로 자주 이러고 다닐게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웃음)

감독님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상대배우인 이제훈에 대해서 물어보겠다. 연기 호흡은 어땠나?
└ 상대방을 잘 배려해주는 배우다. 이 말인즉슨, 본인 스스로 준비가 잘되어 있고, 본인 연기에 대한 정확한 신념이 있기에 상대방까지 존중해줄 수 있다. 프로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제훈 씨는 평소에도 진중하고 연기를 향한 태도가 진지하다. 현장에서 '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은 연기를 직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명으로 하는구나'고 느껴지며, 저렇게 하니까 지금 위치까지 올라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제훈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노잼'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하던데
└ 진지한 모습이 나는 좋아 보였다. 사람들이 제훈 씨를 '노잼'이라 할 때마다 괜히 내가 속상하더라. 훌륭한 배우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다. (웃음)

나 또한 걸그룹 특유의 상큼함을 소화하지 못한다. 발랄한 것까진 가능하지만, 발랄 상큼까지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배역으로도 그건 못할 것 같다. (웃음)

대중들은 '동주'나 '박열'에서 보고 당신을 신인으로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10여년 가까이 연기 생활을 해왔다. 그동안 대중들에게 주목받지 않았던 점에 크게 힘들거나 한 적은 없는지?
└ 무명시절은 언제나 힘들다. 그때는 매우 힘들었는데, 나 스스로 어떤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다. 각종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연극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연극도 극단에 속하지 않으면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돈을 모아 대관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의상을 샀다. 거의 빚을 지면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기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행보다는, 인정받지 못해도 연기 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했다. 어떻게 버텼냐면 힘든 일은 다른 힘든 일로 버텼다. 연기 생활이 힘들었다면 연기를 더 많이 해서 잊어버렸던 것 같다. 때로는 방에서 혼자 연기한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한 뒤, 스스로 모니터링하거나 지인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나중에 보니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은 잘 없었다. 이런 면에서 선배들이 나를 좋게 봐주셨다.

 

배우를 하게 된 계기는?
└ 어렸을 때부터 연기하고 싶었기에, 대학교에 입학하는 날 바로 교내 연극동아리인 '연희극회'에 들어가 포스터 붙이고 다니면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그만큼 연기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박열'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옥자'에서도 출연하는 걸 봤다.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긴가민가해서 엔딩크레딧까지 확인했다. 
└ '옥자'에 출연한 사실을 알아봐 줘서 고맙다. 그런데 나는 아직 '옥자'를 보지도 못했다. 봉준호 감독님께는 4K로 꼭 보겠다고 전하면서, 각자 영화가 잘되자고 응원했다.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 '여배우'보다는 '배우'로 남고 싶다. 이것 또한 후미코의 영향인데, 굳이 여배우로 규정되어야 하나 싶었다. 연기자로서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고, 차기작을 비롯해 앞으로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syrano@mhns.co.kr 사진=최희서ⓒ문화뉴스 MHN 이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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