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최근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박열'의 주역 최희서를 보면, 지난해 연말 극장가를 휩쓸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러 부문을 쓸어갔던 '라라랜드'의 히로인 '미아'가 떠오른다. 매번 여러 오디션에 번번이 탈락했지만,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한 자신의 꿈을 언제나 잃지 않고 살아갔다. 그런 점에서, 최희서는 '꿈을 이룬 미아'였다.

최희서가 출연한 '박열'은 지난 6월 28일에 개봉한 이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으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7월 3일 일일 박스오피스에선 무려 11만 3,320명 관객을 기록했다. 이는 2, 3위인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와 '리얼'의 일일관객수를 합친 수의 2배 이상이었다.

또한, 29일에 개봉한 '옥자'에서 최희서는 '미자(안서현)'와 '조니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할)' 사이를 통역하는 '통역가'로 등장하면서 '박열'과는 새로운 모습을 선보여 관객들에게 제대로 눈도장 받기도 했다. '소위 말해' 두 영화를 통해 최희서는 포텐이 터졌다.

'박열'이 개봉하기 이전인 6월 중순에 만났던 최희서는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수차례의 시사회와 '박열'을 통한 수많은 매체로부터의 인터뷰,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즐기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다가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또한, 최희서와 1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건, "이 배우는 모든 이들에게 주목받아야 함이 마땅하다"는 점이다.

 

'박열'을 본 소감은 어떠했나?
└ '박열'의 초석단계부터 이준익 감독님이 회의에 종종 놀러 가 의견을 제시했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유독 남달랐다. 예전에는 오로지 내 연기만 봤지만, 이번에는 전체적인 흐름도 많이 보게 되었다. 영화 제작 초기부터 지켜봐 왔기 때문에 마냥 좋았다. (웃음)

이번엔 연출까지 참여한 것인데, 시사회를 여러 번 경험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던 건 없었는지?
└ 나의 연기가 부분적으로 아쉬움이 보였던 것 말고는 없었다.

먼저,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나키스트, 아나키즘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른다.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려달라.
└ 나 또한 처음에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듣고, 단순히 '무정부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아나키즘을 조금 더 크게 바라보자면, 절대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상대가 정부든 일왕이든 절대적인 권력 밑에서 지배받는 걸 저항하는 것이며,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평등주의가 밑바탕이다.

알고 보면 아나키즘은 현대적인 사상이고, 당시 공산주의와 헷갈리는 분들이 있는데 완전히 다르다. 이준익 감독님께서도 자칭 아나키스트라고 말씀하신다. (웃음) 말 자체가 어려울 뿐이지, 개념 자체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열'을 위해 가네코 후미코 평전을 읽었다고도 밝혔는데, 당신이 바라본 '후미코'는 어떤 여성이었는가?
└ 후미코와 다른 여성들의 차이점은, 강인함과 유년기에 핍박받았던 상처(빈민층·무적자의 여성으로 무시당했던 경험)로부터 피어난 그녀의 의지와 아나키스트 사상이다. 그래서 이 부분 때문에 후미코가 우리 주변에 볼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이나 역사적 인물과 달리 절망에서부터 본인이 직접 희망과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게 특별했다.

그렇다면, 후미코와 당신의 닮은 점이 있다면?
└ 어렸을 때 남자애들이 여자애들 놀리거나 할 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장난임에도 잘잘못을 따지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여장부 스타일의 성격이었다. 그래서 후미코의 기본 성격과는 크게 다르진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당하면 부당하고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 외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문학 여성이라는 점도 닮았다. 나 또한 문학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면에서 후미코를 이해할 수 있는 게 많아 행운이었다.

▲ 영화 '박열' 스틸컷

한편으로는 후미코의 20대를 보면서 자신의 20대와 비교되진 않았는가?
└ 후미코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남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절대권력으로부터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가 후미코의 삶의 가치매김이었다면,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정치나 사회 이슈에 크게 관심 없었고, 오로지 연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몰두했었다. 학교에 다닐 때 연극만 하고, 각종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후미코가 용감하고 더 조숙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의 후미코 연기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나 일본어였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 일본어 연기는 '동주'에서 처음 선보였고, 그때 김인우 선배님의 도움을 받았다. 그 후 '동주'에서 좋은 평을 받아서 일본어 연기는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이 어눌한 한국어로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평소에 친구가 하는 말을 따라 해본 적도 없는 나에겐 도전이었다. 일본에 살았을 때, 재일교포 친구들이 후미코처럼 한국어를 말했던 기억을 더듬어 한글을 히라가나로 고쳐 써가면서 어떤 발음이 안 되는 지 등을 확인까지 하면서 연습했다.

 

언어를 이렇게까지 분석할 정도면 상당히 학구파인 것 같다.
└ 그렇다. (웃음)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걸 좋아했고, 이번 작품에서 자서전이나 재판 기록 등 수많은 자료를 많이 읽어야 했는데, 만약 내가 책 읽는 걸 싫어했다면 못했을 것이다. 그런 걸 읽고 알아내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박열' 작업이 딱 맞았다.

들리는 바로는 어렸을 때 일본어를 살았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까먹기 마련인데 상당히 유창했다.
└ 어렸을 때 배웠으면, 비록 지금 까먹었더라도 다시 익히기 시작하면 금방 되돌아온다. 수영이나 스키를 배울 때와 같다. 스키도 1년에 한 번 탈까말까 하지만, 한 번 타면 몸이 다시 기억하지 않던가.

특히 어렸을 때 언어를 배우는 게 중요한데, 개인적으로 11살 이전에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자녀교육 할 때도 이용할 생각이다. (웃음) 나는 8살 때 가서 13살 때까지 일본에 살았는데, 굉장히 좋은 시기에 배웠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20년 가까이 영어를 배웠는데 영어가 현지인처럼 유창하지 않던데
└ 현지에 직접 살면서 체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효과가 없다.

 

최희서를 따라다니는 또다른 수식어가 '4개국어 하는 배우'다. 특히,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안다는 데 놀랐다. 나는 대학교에서 첫 수업 듣고 어렵다고 느껴져 바로 포기했다. (웃음)
└ 미국 대학교에 다닐 적에 제2외국어를 이탈리아어를 배웠는데, 그때 배웠던 게 재밌어서 한국에 와서도 학원 등을 다니며 배우고 있다.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게 부럽다.
└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걸 좋아하지만, 여기에 꽂히지 않았다면 잘 못 했을 것이다. 이 성향이 내 대학교 학점에도 드러났다. 과목별 흥미를 붙이느냐 여부에 따라 편차가 심했다. 극과 극이었다. (웃음)

이야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진 것 같다. 다시 작품 이야기로 넘어와서, 박열과 후미코가 함께 찍은 사진은 지금 보아도 상당히 충격적인데,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 처음 봤을 때, '이 사람들 뭐지?', '1920년대 사진이 이렇게 현대적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시대극이라고 하면 경건하고 여자는 조신한 이미진데, 이 사진은 그 틀을 아예 깼다. 한 편의 현대미술작가의 작품 같았고, 한 100년을 앞서 사는 분들 같았다. 요즘에야 아나키즘이나 남녀가 동지가 되고 동거한다는 데 개의치 않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특이했다. 박열과 후미코는 그 시대의 보헤미안이자, 힙스터였다.

▲ 영화 '박열' 스틸컷

사진을 영화로 재연하는 과정에서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 이 씬이 중요하긴 하지만, 상황 자체가 워낙 특별해 감정이나 메시지를 더 전달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물론, 박열의 계획 자체가 이 사진을 찍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후세에 알림과 동시에 일본 권력에 대항해 우리가 하고 싶은걸 다했다는 물증 전리품으로 남기려는 목적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미즈노'가 계획한 거냐고 물어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박열의 어머니에게도 보내는 사진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함께 찍는 사진이니까 실제로 즐겁게 찍었을 것이다. 자유분방했던 두 사람이 서로 의존했고, 마치 한 사람 같은 동지로 잘 보이도록 했다.

'박열'을 보면 사진 이외에도 재판 씬도 인상 깊었는데 짧은 시간에 준비하느라 힘들지 않았는지?
└ 일단 그 씬이 가장 최고조의 감정선이 필요했기에 그에 대한 많은 준비로 힘들기도 했지만, 일부러 준비하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판사가 "마지막 할 말 있는가?"라는 질문에 후미코가 박열에게, 그리고 재판장에게 하는 말은, 마치 사형선고를 앞두고 박열에게 사랑고백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대본 숙지만 하고, 감정선은 현장 흐름에 맡겼다.

그 순간 자체만으로 느끼고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나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임했다. 또한, 각 씬을 순차적으로 찍어왔기에 '투쟁 끝에 마지막 공판까지 왔다'고 되뇌었던 게 도움이 되었다.

[문화 人] '박열' 최희서 "나는 이준익 감독 라인이다" ②로 이어집니다.

syrano@mhns.co.kr 사진=최희서ⓒ문화뉴스 MHN 이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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