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역을 맡은 (왼쪽)이지하가 '델마' 역을 맡은 (오른쪽)김용림에게 유품을 전하고 있는 장면. ⓒ 문화뉴스 김관수 기자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작정한 듯한 딸이 야속하다. 세상사에 지쳤다는 딸에게 "우리 잘살고 있잖니"라며 포기하지 말아 달라 애원한다. 어떻게든 희망을 주자. 나는 엄마니까. 하지만 여전히 이유를 모르겠다. 엄마는 초조하다. 보편적인 남의 이야기로 자살하려는 딸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내 아가 제시, 나를 용서해다오. 니가 내껀 줄 알았어."

연극 '잘자요 엄마, 'Good night, Mother'는 두 시간 후 자살을 하겠다고 통보한 딸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딸의 선택을 돌이키려는 엄마의 사투를 그렸다. 나문희와 김용림이 엄마 '델마'역을 맡고, 염혜란과 이지하가 딸 '제시'역을 연기했다. 원작은 1982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레퍼토리 극장에서 초연된 뒤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평소 안방극장 속 엄마 '김용림'은 엄한 엄마, '나문희'는 소녀 같은 엄마다. 하지만 극 중 '델마'에게서는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딸의 자살을 앞둔 엄마는 절박함만 남았다. 다급한 엄마는 딸이 자살을 결심한 이유를 추궁한다. 하나둘 추려가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세상사를 보기 싫으면 신문을 끊자, 시골이 싫으면 다른 데로 이사를 가자…어르고 달래 설득한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만성적인 외로움에 시달린 딸의 대답은 한결같다. 장례식장을 찾을 사람들에게 전할 말까지 정해뒀다. "사람들이 물으면 '잘자요 엄마'하고 그냥 내 방에 들어갔다고 해. 지극히 내 개인적인 문제였다고." 딸은 엄마가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 '델마' 역의 (왼쪽)나문희가 '제시' 역의 (오른쪽)엄혜란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 문화뉴스 김관수 기자

결국은 이해의 문제다. 엄마는 과연 딸을 이해했을까. 델마는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의 방식, 바람대로 딸을 대했다. 엄마는 '책임'이라는 부모의 틀에서 딸을 놓아주지 않았고, 딸은 그런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제시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가장 가까운 존재로 인식 되는 모녀가 서로 이해하지 못했다는후회의 울음이 총성과 겹친다.

엄마와 자식 간의 이해와 소통을 다룬 '엄마가 뿔났다',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작품들이 스친다. 이들은 자식의 시선으로 엄마를 이해하는 구성이다. 자식은 엄마를 이해했다. '잘자요 엄마'는 반대로 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게 만든다.

"니가 내껀 줄 알았다"는 엄마의 마지막 대사는 '인간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진짜로 이해하고 있는가. 개인의 바람, 방식으로 이해를 강요하고 있는건 아닌지. '잘자요 엄마'는 여타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문화뉴스 전영현 기자 ntp@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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