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댄스의 역사 ④ - 비보잉

   
▲ 에임하이 6차예선 우승자 최승빈이 비보잉을 선보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미국서부에서 락핑, 팝핀이 등장했을 때 동부에서는 다른 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자메이카 출신의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가 음악을 틀면서 '곡 중간에 비트만 진행되는 부분 (break)'을 연장, 반복시키곤 하였는데, 그 비트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비보잉(브레이크 댄스)가 되었다. 'B-boy', 'B-girl'이란 명칭도 쿨 허크가 지었다. 

뉴욕 브롱크스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조그마한 유행으로 비보잉은 시작된다. 그후 80년대초 뉴욕의 게토문화와 그래피티를 주로 사진에 담던 사진가 마사 쿠퍼는 경찰서에 잡혀온 비보이 꼬마들을 만나게 되어 비보잉을 처음으로 접하게된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성장했기때문에 비보잉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마사 쿠퍼는 충격을 받고 비보이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한다. 이후 뉴욕발 유수의 언론에 노출되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된다

   
▲ 비보잉을 널리 알린 락 스테디 크루(Rock Steady Crew)

전문 브레이크 댄스팀 '뉴욕시티 브레이커즈'(New York City Breakers), '락 스테디 크루'(Rock Steady Crew)의 탄생으로 브레이크댄스, B-boy같은 용어가 보편화 되는 가운데 'Wildstyle'(1982), 'Breakin'(1984)등과 같은 브레이크 댄스 전문 영화까지 제작됨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그 인기의 범위를 넓혀갔다.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후부터는 종주국인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국제적인 문화로 성장했다.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대중들은 비보이들에게 흥미를 잃고, 비보잉을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비보이들은 브레이크댄스란 이름을 버리고 비보잉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소수의 비보이들이 작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면서 문화적 영역을 차차 확보해 나갔다. 이후 90년대 초반 유럽의 파워풀한 비보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비보잉은 세계적으로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 국내 비보이 문화를 널리 알리게 된 김수용의 '힙합'

우리나라 비보잉의 역사는 80년대 후반부터 이태원에 위치한 클럽 문라이트(Moonlight)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춤꾼들은 '문라이트'에 모여 비보잉를 흉내내고 연습했는데 당시 주 멤버 중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씨와 '현진영과 와와'의 리더 현진영씨도 있었다. 

이후 PC통신을 중심으로 동호인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98년 김수용이 그린 만화 '힙합'을 통해 비보이라는 이름이 대중들의 인식에 널리 퍼져나갔다. itv의 '댄스불패'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한민국에 실제 비보이씬이 전파를 타자, 많은 비보이 커뮤니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어 '댄스댄스대격돌'이라는 프로를 통해 비보이들의 배틀이 방영된다. 

이렇게 각 지역에서 자기들만의 문화처럼 즐기던 비보이들이 점차 대회를 통해 모이게 되면서 비보잉 스킬과 지식들이 교류된다. 이 당시 한국내에 비보이 문화를 널리 알리려 노력하고 외국댄서들과의 교류를 통해 조금이라도 지식을 알리려 노력했던 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피플크루, Expression, T.I.P, Skill on the groove, 고릴라 등이 1세대 비보잉 팀으로 활발히 활동하게 된다. 

게릴라처럼 흩어져 있던 비보이를 뭉치게 만든 것은 경연 대회였다. 특히 2001년 본래 스포츠 용품을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열린 '비보이 유닛'이 전환점이 되었다. 전국의 비보이가 두루 참가한 이 대회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던 '오보왕'이 우승하게 되면서 비보잉씬은 활짝 날개를 폈다. 

같은해, 비보이 월드컵 격인 배틀오브더이어 한국예선이 열렸고, 이 대회를 위해 T.I.P, Skill on the groove, 고릴라, 오보왕이 연합하여 비쥬얼 쇼크(Visual Shock)란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해 진출권을 따냈다. 독일에서 열린 결선에서 배틀은 3,4위 결정전에서 패배하여 4위에 머물렀으나, 베스트 퍼포먼스상을 받으면서 한국 비보이가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단장 이우성을 필두로 한 Expression이 배틀오브더이어 우승을 거머쥐면서 한국 비보이들은 전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문화뉴스 조현제 기자 jhj@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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