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쇼박스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살인자의 기억법' 설경구 "살인자 얼굴 위해 늙기로 결심했다" ① 에서 이어집니다.

※ 주의 : 기사의 일부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장면만 보면 '박하사탕' 오마주 같았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느낌이었나?
└ 당연히 '박하사탕' 생각이 났다. 그냥 터널만 지나가도 '박하사탕'이 생각난다.

귓속말로 태주에게 "나는 네가 살인자라는 걸 알아"라고 말했던 장면에서 소름돋았다. 그 장면에서 특별히 신경 쓴 건 있는지?
└ 겉모습 이외에 목소리도 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소설에서는 나이가 70대지만, 영화는 50대 후반이다. 하지만 요새 나이가 많다고 늙어 보이는 것은 아니기에, 내 마음속으론 중간지점인 60대로 타협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도 조금 늙어야 되지 않나 싶어서 약간 쉰 목소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극 중에서 병수는 살인자면서 동시에 은희에게 부성애를 느끼는 인물이지만, 원작에선 아예 남남 관계라서 극과 극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 원작 그대로 가지고 왔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대본에서 많은 부분이 나에게 연기하기 편한 설정으로 바뀌었다. 행위에 대한 자기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살인행위가 '청소'한다는 의미였다. 은희가 비록 친딸은 아니지만, 자기가 키운 딸이기에 딸처럼 생각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지고 어떻게든 은희를 살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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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기에 질문한다. 병수가 태주를 쫓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실인지 망상인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 병수의 병세가 더 악화된 것이라 생각한다. 태주를 죽이고 나서 경찰에게 연행되는 과정에서 두리번거리는 것이 태주를 찾는 것이다. 마지막 또한 태주의 환상이 보이면서 헷갈리기 시작하고, 경련이 일어나면서 '네 기억을 믿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다.

치매는 진행을 늦출 수 있어도 막을 수 없기에, 기억이 살아있을 때와 없어질 때 지분이 바뀌는데 자칫 은희에게도 해가 갈까 봐 끔찍하게 본다. 솔직히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데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섭다. 악순환될 것 같다.

그동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설경구의 이미지는 주로 강한 역할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선택하는 데 있어 전작의 강박이 있을 것 같은데
└ 작품을 선택받는 입장이기에 그런 역할이 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할 것이다. 누가 봐도 정말 고생할 것 같더라도 고민하지 않고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고민은 나중에 할 것이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

제작보고회 당시 오달수 씨가 "배우가 고통스럽고 많이 힘들게 연기해야 관객들이 재밌어하고 입체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며 했던 말이 크게 와닿았다. 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전에는 인물을 나 혹은 감독이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주변 인물들이 많이 만들어준다. 요즘에는 믿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항상 강한 인물에만 도전해왔던 건 아니었다. 한동안 일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작품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고민을 안 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대치를 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내가 더 고민할 거리가 많은 게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택할 것이다. 오히려 겁이 없어지는 것 같다. 물론 더 잘할 것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근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이후로 요즘 변화된 모습에 어떻게 느껴지는지?
└ '불한당' 때문에 나도 요즘 헷갈린다. (웃음) 칸을 다녀온 이후,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나는 별로 한 게 없는 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 둘 바 모르겠다. (웃음)

돌이켜보면 설경구라는 배우는 모든 걸 다 경험했는데, 지금까지 오면서 어떤 배우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가?
└ 울화가 많고, 롤러코스터 같은 배우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웃음) 솔직하게 모든 배우에게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복 받았다. 25년간 한 직업을 하기도 쉽지 않지 않은가. 그리고 흥행 여부를 떠나 매 새로운 작품마다 하는 게 엔돌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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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병수처럼 나이 50에 접어들면서 느끼는 게 있었는지?
└ 나이를 충분히 먹었음에도 계속 새로운 걸 찾게 된다. 예전에는 배역을 정할 때 단순하게 결정했다면, 이제는 고민하지 않고 만들어진 인물은 100% 그렇게 보이더라. 반면에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배역은 내가 끊임없이 한 것에 비해 안 나올 수도 있어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도 생겼다. 그 때문인지 '살인자의 기억법' 때부터 얼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작인 '불한당'이나 이번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나 계속 강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 서 얼굴의 변화를 주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 얼굴에 계속 관심을 두다 보니 자꾸 눈이 가게 되고, 그 연장선일 수도 있다. 사실 센 캐릭터에서 얼굴 만들기가 쉬운 게 있고 재밌어서 자꾸만 눈이 간다. 저도 모르게 관심이 가다 보니까 재미없는 얼굴이면 끌리지 않더라.

배우로서 의욕이 샘솟는 것인가?
└ 인물을 찾는 재미가 생겼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오래간만에 본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 '쟤는 힘들게 살겠구나' 혹은 '잘 사나 보나' 등 대충 알 때가 있다.

얼굴 이야기가 나오니 이런 질문을 해본다. 본인 얼굴은 살아온 인생에 어울리는가?
└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아직까진 나이에 비해 괜찮은 것 같다. (웃음) 감사하게도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기회를 줘서 그런 것 같다.

만약에 다른 건 늙더라도, 눈은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예전에 TV에서 봤는데 80이 넘으신 어르신인데 발명하시는 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눈이 호기심이 가득한 청년 눈이어서 크게 감명받았다. 그 이후로 눈이 안 늙고 싶다고 느꼈다. 세월이 지나 그분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눈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

현재 4, 50대 남성배우들의 연기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나도 꽤 그렇게 살았다. (웃음) 그러다가 만난 게 '살인자의 기억법'이었고, 이 작품을 하다 보니까 인물의 얼굴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불한당'도 이에 연장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밌어서 내가 인물을 생각할 때 어떤 얼굴을 갖고 살까 생각하고 시작하다 보니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그 고민은 아마 모든 배우가 하게 될 것이다.

올해 개봉했던 작품들이 흥행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특별히 흥행 욕심은 없는지?
└ 욕심까지는 아니고, 그저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바람이 있다면, 손익분기점만 넘겼으면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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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끌리는 역할은 있는지?
└ 일단 다음에 들어갈 작품이 끌린다. 이번 추석이 지나고 이수진 감독님과 하게 될 새 작품이 어떻게 나오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현 시점에서 이루고 싶은 건 있는지?
└ 특별한 타이틀을 바라는 건 아니다. 나보다 앞서 선배님들도 먼저 느꼈을 텐데, 역할에 대한 욕심은 끝도 없다. 그것이 배우이기도 하다. 끝없이 새로움을 찾고 싶다.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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