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방인' 프로필 사진 ⓒ 극단 산울림, 보통현상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문화 人] "뫼르소는 항변하지 않았기에 저항했던 인간"…연극 '이방인' 전박찬 ① 에서 이어집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유 방식에서 '이방인'을 이해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전 배우가 '이방인'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읽었던 책이 있다면?

└ 이 작품과 더불어 읽기 좋은 책이 있다. 카멜 다우드의 '뫼르소 살인사건'이다. '이방인'에는 뫼르소에 의해 죽임 당한 아랍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연극에서는 등장조차 안 한다. 하지만 작업 초반에 연출님은 이 책을 추천해주셨다.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의 입장에서 쓴 책이다. 작가도 아랍인이다. 

화자는 뫼르소에게 살해당했던 우리 형은 이름조차 없이, 재판장에서 한 번도 이름 언급되지 않은 채 죽어야 했는가, 의문을 가진다. 실제로 저자는 불어를 공부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뫼르소 정말 잘못했네', '까뮈 나쁘네'를 떠올린 게 아니라,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우리가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할 수 있게 해줘 좋았다.

무대에 서지 않을 땐 무엇을 하나? 요즘 빠진 취미가 있다면?

└ 헐겁게 산다. 공연을 맞물려하거나 새 작품을 바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게 일이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웃음). 

대개 연극배우를 가난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연봉이 1억이어도 가난하지 않을까. 연극배우이지만 사람이기에, 연극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돈을 번다. 나머지 여유 있는 시간에는, 남들보다 덜 빠듯한 내 시간들에 감사히 여기며 산다. 

쉬는 시간은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옛날에는 '굶어죽으면 어떡하지', '다음은 뭘 하지?'라는 고민들이 앞섰다. 그런데 이제는 '지금 시간이 있구나' 하면서 툭 놓고 산다. 여행하기도 하고 일상을 산다. 

초를 만들기도 하고 산책도 많이 한다. 요즘에는 '이방인' 준비로 시간이 많지 않지만, 이번 작품이 프랑스 작품이라 프랑스 영화를 보고 있다. 그게 요즘 빠진 취미다. 옛날에 봤던 영화들도 다시 보고 있다. 그런 평소 생활들이 쌓이고 쌓여서 무대에 서는 시간들이 있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연극 '이방인' 공연 사진 ⓒ 극단 산울림

왜 배우인가? 생계보장도 어려운 직업 '연극배우'를 왜 택했나?

└ 그런 고민은 없을 수 없다. 연극 하면서 돈을 많이 벌기는 쉽지 않다.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시간을 도둑질 당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보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런 고민에 빠져도 연극하는 이유는, 연극은 결국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돈을 조금 못 벌어도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있다. 

만약 나이가 들어 돈이 너무 없어서 마음조차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또 달라질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 학교에 출강했다. 가끔은 연극과 전혀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도 한다. 새벽에 나가서 한껏 땀 흘리며 일을 하면 상쾌함이 있다. 새벽에 일을 하면서 작품이나 역할에 대한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뀔 때가 있다. 보상을 받는 순간들 같다. 

사실 일하는 데에선 내가 누군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냥 '일하는' 사람이다. 배우로서 받는 러브콜보다 거기서 일하며 받는 러브콜이 더 많을 때도 있다는 점이 재밌긴 하다. 이런 순간들까지도 연극하는 삶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떤 기획자에게 '전박찬 배우는 쌀 떨어지면 연기한다'는 말이 있다고 전해 들었다. 맞다. 나도 쌀을 사야 하는 사람이다. 쌀 사서 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극장에 간다. 사람이기 때문에 쌀이 필요하고, 쌀을 사야하기 때문에 연극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날 참 잘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로 돈을 버는 일은 연극만 있는 게 아닌데?

└ 맞다. 어떤 연극을 할 때는 몇 달의 시간을 할애하지만, 단 몇 십만 원이라는 금전적 보상을 받기도 한다. 그 연극을 올리기 위해서는 배우들은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친구들과 술 먹다 했던 얘기가 있다. 재연 드라마 프로그램을 자주 보곤 하는데, 거기에 아는 배우들도 가끔 보인다. 친구들에게 '나도 방송 출연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는다', '돈을 벌어야 또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방송이든 다른 곳이든 출연해야 하는 상황에 온다면 출연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배우들도 생활인이다. 회사 다니는 분들이 하는 고민을 우리도 하고 있다. 물론 다른 고민을 중간에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다 똑같다.

 

 

 

극단 산울림과 처음 같이 작업하지 않나? 작업 해보니 어떤가?

└ 산울림극장에서 처음 공연 본 게 중학생 때였다. 워낙 역사가 있는 극장이라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왔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중요한 작품을 올리는 곳이자 워낙 사람들의 기대를 많이 받는 곳이다. 낯설다. 지금까지 해온 극장들과 다르다. 새로움이 있는 곳이다. 

'산울림'이라는 극장이 가진 힘이 있다. 까뮈의 작품들은 무대에 올리기 정말 어렵지만 산울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듯하다. 안락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극장이다. 그러나 역사가 있다. 이 무대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실제로 내가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부족한 뫼르소가 무대에 가더라도, 관객들은 극장에 대한 힘을 가지고 돌아가실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매력은?

└ 소설이 원작이니, 뫼르소의 서술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초반에는 뫼르소의 독백이 많은 연극으로 준비하려 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번 무대가 '읽어주는 소설'이 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함이 있었다. 그러나 작업 방향이 달라졌고, 이제는 뫼르소 뿐 아니라 다른 역할들이 등장한다. 극장이 본디 가지고 있는 매력도 있다. 아직 공연이 완성되지 않았기에(8월 인터뷰 당시)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뫼르소가 '혼자' '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

어떤 배우이고 싶은지? 혹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 어려운 질문이다. 지금의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하다. 우리 옆집 아주머니는 내가 아직 학생인 줄 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무대에 서서 관객들 만날 때는 '어떤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건방진 얘기일 수 있지만, 인간의 어떤 부분들을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뫼르소는 내가 무대서 만나기 원해왔던 인물이자 큰 도전이다.

'이방인' 이후 어느 무대에서 전 배우를 만날 수 있을까?

└ 12월에 두산아트센터서 만날 수 있다. 12월 한 달 동안 '망각의 방법'이라는 기획 공연이 진행된다. 故김동현과 그의 연극을 기억하고자 기획된 공연이다. 배삼식 작가님의 신작 '오후만 있던 일요일'과 극단 코끼리만보의 'Are you okay?'라는 공동창작 연극이 공연된다. 

나는 'Are you okay?'에 출연한다. 코끼리만보의 기존 공연을 재구성, 재창작 공연이다. 나는 그 공연을 위해 1년을 달려왔다고 말할 수 있다. 코끼리만보는 내 집이다. '이방인' 공연이 끝나면 바로 연습에 들어간다. '망각의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묶였지만, '기억의 시간'일 수도 있고, '잊는 시간'일 수도 있다.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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