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영(왼쪽)과 엄재용(오른쪽)이 바흐 '푸가의 기법' BMW 1080 중 '콘트라푼크투스' 5에 맞춰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어렵다고 말씀하시지만, 땀 흘리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해서 감동하고 있다."

바흐가 남긴 걸작 중 하나, '푸가(Fugue)'를 무용으로 느껴본다. 동시에 진행되는 선율들을 하나의 주제로 모방하고, 그것을 합쳐 만든 기악곡을 의미하는 푸가. 그중 바흐는 푸가 형식의 음악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자랑한다. 14세기에 시작되어 17세기에 꽃을 피운 푸가가 사실상 바흐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평이다.

2010년 '제7의 인간', 2012년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 등을 통해 주제의식이 분명한 작품을 선보인 안무가 정영두가 '푸가'를 통해 메시지 전달보다 '푸가'라는 형식의 음악을 바탕으로 음악과 움직임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오는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발표하는 이번 작품의 연습 시연과 기자간담회가 14일 오후에 LG아트센터 리허설룸에서 공개됐다.

이번 '푸가'의 특별한 지점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무용수들의 앙상블이다. 발레, 현대무용 등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작품 활동을 한 무용수들이 듀오는 기본이며 트리오, 퀸텟, 콰르텟, 나아가 전체 무용수가 모두 무대에 오르는 전체 앙상블까지 선보인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정영두 안무가를 비롯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서로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되는 김지영과 엄재용, '댄싱9'뿐 아니라 최근 뮤지컬 '팬텀'에도 출연한 발레리노 윤전일, 젊은 현대무용수인 국립현대무용단 출신 최용승, 정영두 안무가가 이끄는 두 댄스 씨어터의 김지혜, 하미라가 참석했다. 한편 출연이 예정된 최수진은 개인 사정상 하차했고,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한 도황주가 합류했으나 기자간담회엔 참석하지 않았다. "음악에 잘 어울리는 움직임에 고민 중"이라는 안무가들과 여섯 무용수의 질의응답을 살펴본다.
 

   
▲ 정영두 안무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번 공연을 하게 된 계기와 준비과정을 듣고 싶다.
ㄴ 정영두 : 지난봄부터 LG 아트센터와 함께 공연 준비를 하게 됐다. 그러다 푸가 음악을 하면 어떻겠냐고 LG 아트센터 쪽으로 제안받게 됐다. 들어보고 안무가가 아닌 사람이라도 좋은 음악일 것으로 생각해 같이 만들게 됐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함께 제작했다. 여러 작곡가가 푸가 형식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이 기회에 바흐만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했다. 현대무용과 발레의 사이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안무할 땐 장르를 설정하지 않았다. 음악이 우선으로 잘 보이고, 그 음악 위에서 몸이 잘 보이는 두 가지에 중점을 뒀다. 음악과 안무가 잘 어울려서 즐겁고, 편안하고, 품위 있어 보이도록 하고 있다.

'푸가' 음악을 듣고 하겠다고 결정적으로 생각한 계기는?
ㄴ 정영두 : 듣고 나서 어렵다거나 재미없다면 안 했을 것이다. 제가 중점을 두는 안무는 어떤 단단한 형식이 제 안무 화법으로 전환되는 것인가다. 그것이 공부할 거리라 판단되면 음악, 건축, 미술, 요리든 보게 된다. 푸가를 들으면서 매번 놀란 것은 단순한 형식이었다. 악보를 보고 분석하면 단순한 형식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 흥미로웠다. 안무가인 나는 이걸 어떻게 무대로 전환할 것인가로 생각하게 됐다. 음악 하는 동료분들에게 조언도 듣고 찾아보면서 푸가 형식의 위대한 점을 도전해보고 싶었다. 만약 바흐가 위에서 보고 있다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작업하고 싶었다.

현대무용가이기 때문에 발레가 어려웠을 것 같다. 발레리나 김지영과의 호흡이 있는데 어땠나?
ㄴ 김지혜 : 발레를 아예 안 배운 건 아니고 어렸을 때 했다. 현대무용을 더 오래 해서 현대적인 호흡이 제 모습에 어울리는데, 김지영 언니는 저보다 잘하신다. 호흡을 쓰는 것이 달라서 그 부분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여기에 현대무용과 발레가 몸이 쓰이는 중심 위치가 달라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 김지혜가 '푸가' 공연에서 발레 동작을 선보인 것에 대한 소감을 전하고 있다.

김지영 : 저는 지혜 씨가 선생님이다. 모든 안무를 저한테 알려줘서 어미새 같은 느낌이었다. 리허설을 할 때 없으면 불안했다. (웃음) 지혜 씨가 말했듯이 같이 할 때 호흡이 다른데, 서로 양보할 건 양보했다. 내가 지혜 씨를 못 따라가면 양보해주고, 지혜 씨가 저를 따라갈 때도 있었다. 중간의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움직임은 발레라고 현대무용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억압된 몸짓 안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발레는 아니다. 전혀 다른 장르라 말할 수 있다. 보기엔 안 힘들어 보여도 다리를 항상 바깥쪽으로 하다가 안쪽으로 쓰는 것이 힘들었다. 몸의 흐름도 항상 쓰는 방향이 있는데, 그걸 거꾸로 쓰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익숙해하는 과정 중이다.

정영두의 작품을 보면 메시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ㄴ 정영두 : 메시지가 없는 제 작업도 많긴 하다. (웃음) 이번 작업은 스스로 메시지가 없는 것을 메시지화 해보려 했다. 우리 환경에서 개인적인 고민이 있다면, 이념과 이슈가 넘쳐나는데 메시지가 때론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시간을 담아내는 시각적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푸가와 잘 어울린다고 봤다. '볼레로'부터 현악 4중주, 5중주, 6중주 등으로 준비를 하려 했는데, 푸가를 주셨다. 처음이지만 귀에 듣고는 익숙해졌다.

발레 무용수 3명, 현대무용수 4명을 캐스팅한 배경은?
ㄴ 정영두 : 클래식 적인 움직임 말고 새로운 움직임을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이거나 경험한 분들을 캐스팅했다. 두 분의 말씀처럼 발레와 현대무용 사이를 메꾸는 것이 힘들었다. 특정 분야 음악 위주가 아닌 음악과 잘 맞는 움직임을 만들고자 했다. 무용수들이 새로운 것을 해서 힘들 텐데, 본인들이 참아내고 이겨낸다면 어울리는 무대가 될 것이다. 가능성도 보였는데 발레 무용수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현대무용수들은 평소 주력으로 하는 자기중심적인 표현보다 일정한 규칙 안에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엄재용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발레무용수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는 말을 들었다.
ㄴ 엄재용 : 정영두 안무가 선생님이 새로운 것을 원하셨듯이, 저도 16년 동안 발레단에만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 저도 제안이 왔을 때 해보고 싶어 흔쾌히 하게 됐다. 발레단에 있을 때부터 현대무용도 좋아해서 기회가 있으면 꼭 해보고 싶었는데, 해보니 클래식 작품했을 때처럼 닫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즐거웠고 좋았다.

김지영 : 처음 선생님께 전화가 와서 같이 작업 좀 하자고 했을 때, 저는 정영두 선생님의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제 춤은 본 적 있으신가요"라고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해 몰랐다. 그런데도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의식이다. 제 춤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것을 계속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주변에선 선생님 안무가 흥미롭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하게 됐다.

여태까지 발레단 들어와서 생활하며 클래식 발레만 한 것은 아니다. 현대무용도 해봤지만, 저 혼자만 나오는 작업을 해봤지 여러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는데 물론 처음엔 힘든 점이 있었다.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계속 제 마음속에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서로 익숙해져 가는 것에 중점을 뒀고, 저도 동작에 익숙해져 가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듯 힘든 도전이었는데, 어떻게 안무를 하였나?
ㄴ 정영두 : 기본적으로 곡을 들었을 때, 무대 이미지를 떠오르는 것이 있다. 떠오르지 않더라도 곡의 구조를 찾아가 보면서 이 구조는 옮겨보면 춤으로 옮겨도 흥미롭겠다 하는 곡을 선택했다. 들으면 리듬이나 흐름이 생길 때가 있다. 직접 움직이면서 무용수들에게 알려줄 때도 있다. 초반에 안무 동작이 나갈 땐 무용수들이 힘들다고 말해도 변형을 하려 하지 않았다. 몸에 익었는데도 불편하다면 약간 수정했다. 여기에 즉흥 안무도 있다. 위치나 구성, 마무리 정도의 커다란 틀만 드리고 움직임을 무용수분들에게 준 것도 있다. 무대 뒤편엔 간단한 세트만 있다. 단순하게 무용수들이 잘 보이는 무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최용승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번 공연을 하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ㄴ 최용승 : 저도 발레를 전공하고 활동하는 무용수분들과 일하고 있어서인지 배울 것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은 며칠 전에도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머리로는 원하시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많은 연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강철수트를 입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동작에서 자연스럽지 않도록 반대로 연습하면서 그게 익숙해지길 원하신다. 익숙해졌지만, 그다음에 찾아온 것은 체력적 문제였다. 다리가 마비될 정도였다. 하지만 클래식 무용수분들과 여기 동료들과 같이 작업하게 되어 기쁘다.

윤전일 : 2년 동안 '댄싱9' 프로그램을 같이하면서 대중적인 춤과 작품 공연을 많이 했다.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 예술적인 것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서 하게 됐다. 와서 힘든 것은 사실 없다. 동작이 어렵지만, 댄서가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무대에서 잘 표현해야겠다는 욕심이 커졌다. 이런 작품도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집중해서 해야 할 것 같다. 더 좋은 공연을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하미라 : 정영두 선생님과 두 번째 작업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고 2인무도 3~4분 정도 되는데 동작이 한 300개 정도 된다. 하나하나 방향이 다르다. 피아노 건반에서 뛰놀듯이 하라고 하셔서 그런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저 자신한테 발산할 기회가 될 것 같다.

   
▲ 하미라(왼쪽)가 김지혜(오른쪽)와 듀오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댄싱9'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ㄴ 윤전일 : 일단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서 제 환경이 많이 달라진 건 맞다. 클래식뿐이 아니라 대중들이 좋아하는 공연을 많이 하게 됐다. 올해도 시즌3에 참여하게 됐는데, 틈틈이 제가 발레리노로 배워온 기본을 준비하고 있으니 벗어나진 않으려 한다. 하지만 발레하는 사람이 클래식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스트릿 친구들과 공연하려고 하고, 여러 가지를 많이 하려 한다. 이 작품도 발레 동작도 있지만, 현대무용 같은 동작도 있다. 내년엔 어느 한 단체에 클래식 발레를 하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일단 올해는 푸가를 끝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이것만 끝나면 인생이 필 것 같다. (웃음)
 

   
▲ 윤전일이 솔로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정영두 : 국립발레단 수석,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가 모여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그동안 한 번도 못 보셨을 텐데, 아마 발레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기대를 하실 것이고 그 기대에 걸맞은 장면이 나올 것이다. 윤전일 씨도 흔히 보신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여기에 새로 합류하실 도황주 씨까지 나오니 좋은 선물 드릴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 LG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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