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인생이란 오케스트라의 심벌즈 연주 같다. 박자를 세면서 기다려라. 반드시 '챙'하고 울릴 순간이 온다."

배우 손봉숙이 연극 '챙'에서 주인공 '이자림'을 연기하면서 뽑은 명대사다. 연극 '챙'은 지난해 한국 연극계의 거목 연출 임영웅과 극작가 이강백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고, 그 결과 올해 한 번 더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됐다. 지난 1일부터 20일까지 많은 관객의 박수를 받은 1인극의 주인공 손봉숙을 만났다. 먼저 영상을 통해 연극 '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지난해 2인극에서 올해 모노드라마로 바뀌게 된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명대사와 그 이유를 확인해보자. 그리고 글로 작품을 본 관객들이 궁금한 질문들을 살펴보자.



모노드라마만의 장점이 있다면?

ㄴ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상대 배역도 연극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여러 명이 나오면 관계가 없지만, 한두 명 나오면 상대 배우에게 어떻게 조화가 될지 생각하게 된다. 모노드라마는 그 과정을 없애고 나 혼자 할 수 있어서 간편하고, 인간과의 갈등이 없어서 정신적으로 편한 것도 있다. 예술은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엔 관객들이 출연하거나 심벌즈를 치는 부분이 나온다.
ㄴ 이강백 선생님 작품 중 가장 매력 있는 포인트다. 모노드라마가 사실 어렵다. 재미있는 모노드라마를 많이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아는 모노드라마는 잘못하면 지루할 수 있다. 다양한 장면으로 바뀌지 않고, 의상도 안 바뀌고 혼자 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노드라마는 서 있어도 풍길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극이 막 올라가기 전까지는 준비과정을 거쳐서 연출가, 배우, 스태프와 만들어 놓은 건데 가장 중요한 연극의 묘미는 현장예술이다. 그동안 연습해도 객석과 만나서 그 시간 공간에서 만나는 느낌이 그날의 연극이다.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기대감도 있다. 이 연극을 하면서 객석에서 직접 심벌즈를 관객한테 쳐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극 중에서 엄마가 그토록 반대하던 사위될 사람을 만나는 장면의 엄마 역할을 객석에 있는 남자가 한다. 호흡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순간에 관객들이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 매우 좋았다.
 

   
 

공연 시간은 80여 분밖에 되지 않지만, 음악을 듣는 시간을 빼면 거의 모든 부분은 대사다.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ㄴ 이강백 선생님의 대사가 관념적이진 않다. 그런 걸 쓰시는 분은 아니지만, 이 연극이 그렇다고 일상적이진 않았다. 일상적이면서도 가만히 들어보면 선생님만의 특징적인 어투가 있어서 다가가기가 힘들 때가 있다. 제가 좀 젊었을 땐 어떤 작가의 연극을 하다가 불편하면 조금씩 제 스타일대로 바꿔나갔었다. 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 배운 것이 내가 편한 대로 대사를 바꾸면 모든 연극에서 한 가지 연기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조금 입에 붙이기 힘들지만, 작가만의 특성을 연습할 때마다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강백 선생님의 대사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묘한 조사, 접속사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마음에 드는 게 많아서 이번엔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지 않다.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릴 법도 한데,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은 없고 담담하게 처리했다.
ㄴ 죽음 앞에선 그 누구도 진정할 수 없다. 밑바닥에서부터 나오는 원초적인 자연의 순리이고, 누구나 다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처음 이 작품을 대했을 때는 엄청나게 슬펐는데, 올해는 그 슬픔이 약간 빠져나왔다. 제삼자가 나에게 말을 했는데, 슬프지 않아도 중간중간 회상을 하면서 슬픈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슬픔을 객석에 강요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눈물이 약간 나올 정도로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처음부터 제가 끌고 가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눈물을 흘리면 이 연극은 비극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에 비극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와 이질적이긴 하지만 슬픔은 저 밑에 묻어뒀다. 마지막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애써주신 마음을 즐겁게 회상하면서 부인인 나도 그렇고, 어떤 한 분의 죽음으로 인생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해보니까 연극을 하면서 관객과의 만날 때,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어떤 연극을 하고 나면 그 연극에서 주제가 깊은 슬픔이든 분노던 애정이든 뭐가 되었든 간에, 그 역할을 하고 나서 내 인생에서 스스로 정신적인 치유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최근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슬퍼도 해봤고, 죽음에 초연해지려고 했지만 두려웠다. 하지만 이번 연극을 하면서 좀 더 자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리를 얻을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절정이 오는 순간을 기다려 희열을 맞이한다"는 대사를 본인 연극 무대에 비유한다면?
ㄴ 유명한 이야기 중에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이 있다. 연극 한 편을 할 때는 막이 올라가기 전, 막 뒤에서 오프닝 멘트 음악이 나갈 때 서는 느낌이 무섭다. 연륜이 쌓여도 지금도 무섭다. 객석과의 만나기 전에 모습이 가장 설레고 두렵다. 절정의 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면 앞에 뭐가 일어난 다음 결정적인 상황이 절정이라고 하지만, 나는 연극 연습하고 객석과 만나기 전이 절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한 번 '챙' 하고 기다리는 것이 근사한 것 같지만, 나한텐 그 절정이 근사한 클라이막스이기 보다는 두렵고 기대도 되어서 한바탕 무대에서 해야 하는 그걸 기다리는 것이 절정이라 희열은 느끼기 어려웠다.

본인의 연기 인생과 심벌즈를 비교하면 어떤 느낌인가?
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심벌즈라는 악기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객석에 앉아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 타악기가 여러 가지가 있고, 심벌즈가 딱 한 번에 치기 때문이었다. 심벌즈가 한 짝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쳤을 때 혼자 한 쪽 손으로 쳐서 나오는 소리와 한 짝을 치는 소리는 비교가 안 되는 굉장히 깊이 있는 울림을 치면서 느끼게 됐다. 심벌즈를 이번 연극을 하면서 처음 시향에 계신 분께 간단한 코치를 받았다.
 

   
 

예전에 극단 자유에서 연극을 하면서 총체연극이라 해서 배우들이 악기도 다루고, 우리 소리도 해야 했던 시절이어서 사물놀이 악기들을 많이 만져봤었다. 판소리를 배운답시고 왔다 갔다 해보고, 징, 장구, 꽹과리, 북을 다 쳐봤다. 심벌즈는 우리나라 악기가 아닌데, 두 개를 딱 부딪쳐 소리를 내니 우리 악기 중 징과 비슷했다. 울림을 내 몸으로 느낄 때, 그 울림에서 오는 느낌이 좋아서 심벌즈를 몇 번 쳐보면서 매력 있는 악기라 생각했다. '챙' 소리가 있어서 침묵이 있고, 침묵이 있어서 '챙' 소리가 있다. 심벌즈 같은 경우는 소리는 세지만 여운이 사라져 갈 때의 느낌이 있어 가장 매력 있다고 들었다. 나이를 먹고 점점 연륜이 쌓인다는 것이 사라져 가는 여운을 남기는 심벌즈처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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