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생동하는 몸의 세계를 꿰뚫는 투명하고 냉철한 현상학적 시선과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미지로 독특한 시 세계를 펼쳐온 이현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이 출간됐다.

'친애하는 사물들'(문학동네, 2012년) 이후 3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은 "몸을 위한, 몸에 의한, 몸의 것일 수밖에 없을 나날의 삶의 육체성이 어떻게 조직되고 통제되는가를 바닥까지 들여다보려는 몸의 헌정서"(이찬, 해설)다. 사물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날카롭고 지적인 통찰과 예민한 감성이 어우러진 가운데 논리정연하면서도 단정한 시편들이 신선한 공감을 일으키며,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양면적 속성과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위트와 유머 속에 슬픔이 깃든 삶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현승의 시에는 말 그대로 생활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시인에게 삶이란 "언제나 선택의 편에서 포기를 합리화하는 일"('허수아비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만을 기도('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하는 영혼들이 서로 권하고 축이고 또 이렇게 밥 한 끼 얻어먹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다단계')이다. 불행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삶('씽크홀')의 비애 속에서 시인은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늘 각성과 졸음이 동시에 육박해오는 '절박한 삶'('봉급생활자')을 살아가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생활인의 애환에 연민의 눈길과 "차가움에서 시작해 뜨거움으로 가는 악수"('저글링')를 건넨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피차 빤하고 짠하기만 하고 질문이 뭐였는지 답이 안 나오는 삶('코뿔소')처럼 무력하기만 한데, 세상은 또 어떠한가. 온통 모순덩어리이다. 시인은 죄 안 지은 자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고, 상처 많은 사람이 남의 고통에 더 아파('일생일대의 상상')하는 부조리한 세상의 단면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겉은 젖고 속은 타들어 가는 이곳에서 지금 살아 있다는 것보다 끔찍한 재앙은 없다는 절망을 내비치면서, 죄송의 말이 재앙보다 더 잔인하게 들리는 그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용서라는 말을 없애버리면 좋겠다('인정도 사정도 없이')는 시인의 말은 세상에 던지는 절규에 가깝다.

   
▲ 이현승 시인

이 세계에서 선망이란 언제나 현실의 반대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고 욕망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해 자라나는 손가락('일생일대의 상상')이다. 시인은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이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오줌의 색')에 이른다. 시인은 또 극빈의 번데기를 열고 나온 극악이라는 절망의 극점에 다다른 삶 속에서 순결을 경매하는 여대생이나 신체포기각서('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름 끼치는 현실에 끝없이 절망하면서도 희미하나마 희망의 불씨를 어떤 암시처럼('코뿔소') 간직한다. 내 손은 두 개뿐이지만 여러 개의 손을 잡고 있다('저글링')는 발언은 고통이 없는 것은 윤리적일 수 없다는 저 레비나스의 윤리학적 시선에 가닿는다.

세상 어디를 둘러본들 구원도 없고 심지어 절망도 없고 우리의 삶은 낙관 자체가 곧 절망('고도를 기다리며')이지만 그런데도 시인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는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은 이 불우한 시대에도 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천국의 아이들 2')는 것 아니겠는가. 세상이 절망의 그림자일 뿐일지라도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고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기에. 더 나은 삶을 향하여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이 비록 한심하게 보일지라도 시작하기엔 이미 늦었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에고이스트')기에.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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