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올해의 첫 영화로 '테이큰 3'을 보았었다. 리암 니슨의 팬인 엄마와의 신정 데이트이기도 했고, 복잡할 것 없이 시원하게 진행되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도 한 몫 했다.

시리즈물의 후속작들이 대개 그러하듯 테이큰 세번째 이야기는 처음 '테이큰'을 접했을 때만큼의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역시 '아버지의 저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처음 영화 '테이큰'을 접했을 때에는 전율이 느껴지는 정도의 통쾌함을 경험했었다. 납치당해 인신매매를 당할 위기에 놓인 딸을 구출해내는 아버지.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다이하드'의 주인공처럼 시련 따위를 겪지도 않는다. 전직 비밀요원이라는 설정으로 '아 그렇구나..' 싶어 넘어가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을만큼 아버지는 천하무적에 가깝다. 그렇게 딸 '킴'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내 딸을 해하려 하는 모든 이를 제거하여 결국 딸을 구출해내는 그의 모습은 듬직함과 감동스러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꼭 리암 니슨이 연기한 '브라이언 밀스'가 대단한 아버지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그러하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여론이나 부모들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 대화를 나누고있는 '브라이언 밀스'와 그의 딸 '킴'.

나의 아이를 해한 그녀가 법의 심판을 받고 솜방망이 죄값을 치르는 것보다 '내가 그녀를 벌하는 게 낫겠다' 마음 먹는 부모가 한둘일까.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외부의 누군가가 나의 아이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방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바로 부모 스스로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다. 외부의 무언가를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쩌면 그 이전에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은 외부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중대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부모'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애 초기에 엄마와 어떠한 애착과 관계를 형성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우리는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어쩌면 첫 이성과의 관계라 할 수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지는 중요성도 만만치 않다.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은 그의 저서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최초의 남성'이라고 설명한다. 그 남성에게서 받은 좋은 사랑의 경험이 충분히 쌓인다면 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남성의 사랑에 집착하고 목말라하지 않지만, 인생 전반기에 그 아버지로부터 밀도와 당도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평생 사랑을 갈구하며 '내 인생 돌리도'를 부르짖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랑을 충분히 받은 딸은 주체적이고 또한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해, 사랑에 있어서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건강하지만, 쉽게 말해 애정이 결핍되어버린 여성들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상대에게 쏟아붓거나 상대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며 결국 관계를 망쳐버리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이처럼 한 여자의 인생에 아버지는 어머니 못지 않은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심지어 '심리도식치료'에서는 우리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를 이와 연결해 설명하기도 한다. 심리도식 궁합(schema chemistry)이란 우리가 자신이 가진 핵심적인 문제를 자극하고 촉발하는 상대에게 쉽게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음을 말하는데,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여성이 이런 자신의 정서적 결핍을 충족시켜줄 대상을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반대의 대상, 즉 '정서적으로 냉담한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에게 좋지 않은 대상에게 무의식적으로 섹슈얼한 매력을 느껴 결국 내가 가진 문제가 악순환된다는 주장인데, 내가 성적 매력을 느끼는 대상의 특성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물론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왜 그들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자녀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표현하는 방식의 문제라 하겠다. 사랑을 받고 주는 것을 자연스레 학습하지 못한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에게 서툴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혹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아도 당연히 상대가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과하다. 이것은 부모 뿐 아니라 연인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표현에 서툴어도 스스로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충분히 의미를 부여하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온전한 자녀 혹은 연인이라면 좋겠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는 워낙에 그렇게 완전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그 불편했던 마음을 꺼내어 회자하고 사과하는 것이 미안하고 민망해, 애매하고 모호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식으로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려 한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부분은 결국 해소되기 어렵다.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완벽한 부모를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을 한 구석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인생을 살아가며 학생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혹은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처음 시작할 때 서툰 게 당연하듯, 부모 역시 처음으로 부모라는 대상이 된다.

리암니슨이 분한 '브라이언 밀스'도 본디 완벽한 아버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 비밀스럽고 위험한 일을 직업으로 삼았던 동안, 그는 가족을 등한시하며 챙기지 못했고, 그 결과로 사랑하는 아내, 킴의 엄마와 이혼했다. 아내와 딸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는 결국 표현하지 못했고 가족을 떠나 보내고 말았다. 테이큰 2편과 3편에서는 이런 아버지와 딸 킴의 관계가 조금 달리 변화된 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전에 비해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킴이 나이가 들며 성장했기에, 또한 일에서 은퇴하고 이혼한 이후로 가족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끔찍했던 시리즈1에서의 과정을 통해, 그가 나를 얼만큼 사랑하는지를 딸인 킴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결정적인 계기를 시작으로, 이들 간의 관계는 달라졌다. 여전히 그는 대학생 딸의 생일에 서프라이즈라며 커다란 판다 인형과 와인이라는 조화되지 않은 아이템을 들고 갑작스레 집을 방문하는 센스없는 아버지이지만, 그의 이런 행동이 모두 깊은 사랑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게 된 것이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든든한 존재가 되고픈 아버지들은 사소한 것을 놓치기 쉽다. 테이큰의 아버지는 딸을 잃을 뻔한 사건을 통해 그것을 깨달으며 달라졌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아버지는 그것을 몰라 어린 딸을 두고 떠났다. 설사 지구가 멸망해 나의 딸 그리고 그 자식들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땅이 된다한들 그게 중요할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가 커 가는 과정, 누군가를 사랑하고 하나의 어른이 되어가는 그 과정을 옆에서 함께 하고 '사랑한다'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이기적인 마인드라면 이 세상을 구원할 영웅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영웅 같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게 오로지 내 새끼 하나 살리는 데만 목숨을 거는 테이큰의 리암니슨에게 여전히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글] 아띠에터 미오 jy3308@mhns.co.kr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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