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2인극 페스티벌' 공식참가작 '진홍빛 소녀' 이지수 연출·배우 김형균, 신소현·한민규 작가 인터뷰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민규 작가, 이지수 연출, 배우 김형균, 신소현이 '2인극'을 의미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방관으로 인해 각종 범죄가 즐비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

한민규 작가가 지난달 열린 '제15회 2인극 페스티벌'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말한 작품의 시놉시스다. 15년 전 51명의 사상자를 낸 방화사건의 공범자였던 '혁'. 그는 자신의 죄는 밝혀지지 않은 채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교수로 평온히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15년 전 방화사건의 무기징역수 '은진'이 귀휴 중에 '혁'의 집에 찾아든다.

'은진'은 15년 전의 사건에 '혁'이 자백하지 않으면, 그의 아이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다. 그러나 '혁'은 기억이 남에도 불구하고, 죄를 말하지 않고 도리어 '은진'을 제압하려고 하나 도리어 자신이 다치고 만다. '혁'이 다시 깨어났을 때 그의 몸은 결박되었고, '은진'은 '혁'의 죄를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5년 전, 고아원에서 지냈던 끔찍한 악몽이 다시 펼쳐지게 된다.

소통의 출발을 2인극으로 느껴보자는 취지에 출발한 '2인극 페스티벌'에 의미와 적합한 연극 '진홍빛 소녀'가 3일부터 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3동에 있는 K액팅스튜디오에서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가운데, 이지수 연출과 '혁'을 연기한 김형균, '은진'을 맡은 신소현, 작품을 쓴 한민규 작가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이 주고 싶은 메시지를 들어본다.


▲ 이지수 연출의 작품 소개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알고 싶다.
ㄴ 한민규 : 처음엔 하나의 소재에서 착상됐다. 지난봄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교도소에서 귀휴한 모범수가 있었는데, 그 모범수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흉악범이다. 전과자다"라는 말이 들려오고 주민들은 굉장히 불안에 떨게 됐다. 시간이 지난 후 모범수는 목을 매달고 산에서 자살했다. 죽기 전, 모범수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충분히 도운 이후에 자결했다고 전해졌다.

이 이야기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진실과 그 외의 진실이 있고, 사람들이 몰아가면서 죄가 죄를 낳는 것 같았다. 그 착상이 첫 번째였다. 모범수라는 인상을 통해 어찌 되었던 이 사람이 노력해서 죄를 씻으려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는 씻겨지지 않는 죄가 있었고, 이 사람이 소중한 사람을 돕고 자결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크게 와 닿았다.

또한, 늘 교육적이고 선이라는 가면에 가려진 기관이 많다. 그 안에선 선의 가면보다 위험한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다. 첫 착상에 이 이야기를 넣게 됐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진실이 진실인지, 그 진실을 누가 만들었는지, 범죄자도 만약 여론에서 몰아가지만 않았으면 자살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나의 궁극적인 소재이기도 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YAF(영 아트 프론티어) 사업에 '누가 그들을 만들었나'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내기도 했다. 이 주제가 계속 나한테 꽂혀왔다.

작품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ㄴ 이지수 : 같은 팀이니까 작가가 쓰면 연출하기로 약속하기로 한 것이다. (웃음) '2인극 페스티벌'이 점차 위상을 크게 넓혀나가고 있다. 배우들 입장에선 매력적인데, 연출적인 측면에서 잘만들지 않으면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다. 2인극 페스티벌 집행위원회에선 연극의 기본이라는 측면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고, 현재 대학로의 상업극 경향을 보며 이런 의미에 동의하게 되어 참가신청을 했고 '진홍빛 소녀'로 참여하게 됐다.

작품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ㄴ 이지수 : '2인극 페스티벌'에선 무대나 음악 등 여러 2인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움을 준다. 문제는 하루에 두 팀이 나눠서 공연하고, 서로 리허설 진행도 당일 나눠서 하게 된다는 점이다. (편집자 주 : 이지수 연출은 이날 같이 공연을 하는 프로젝트 연의 '마지막 춤' 연출자와 상의를 하고 연습실에 도착했다) 결국 무대와 조명을 원하는 만큼 작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지할 것은 연극적 아이디어와 배우의 합을 만드는 연출력이다. 배우의 연기는 배우들에게 믿고 있다. 스태프들과 좋은 연극적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 김형균 배우의 배역 소개.

2인극의 매력은?

ㄴ 이지수 : 2인극의 가장 큰 매력은 갈등의 가장 큰 본질인 두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주변인이 아닌 갈등의 대상이 되는 두 사람이 무대 위에 등장해 버리는 갈등을 직접 나타내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2인극의 플롯 상 하나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것이 힘들다. 하다못해 세 사람이어도 경우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에선 정면도전인 것이다. 그런 점에 심판을 받는다는 느낌도 있다.

김형균 : 2인극의 매력은 '하이 리스크, 하이 밸류(높은 위험, 높은 가치)'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너지 소모가 크고, 많은 고민과 소수의 인원으로 무대를 채워야 한다. 그러면서 관객을 만나게 되는데,  이 요소들만 잘하면 어떤 연극보다 더 큰 보람을 느끼고 배움을 깊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2인극의 매력인 것 같다.

신소현 : 가장 큰 것은 배우가 그냥 무대에서 '대·소도구'가 되어서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맨몸으로 무대에 던져지는 느낌이다. 배우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가 많이 없으면 뽀록이 나는 것이 매력이다. 그래서 사람 냄새가 나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두 사람의 호흡으로만 열심히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재밌다. 둘이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을 이어나간다. 무대로 나가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배우로도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본인의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ㄴ 신소현 : '은진'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인물이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러 가서 청각장애인 분들을 만나면 스스로 벽을 쳐서 남들과 소통하지 않으려고 하는 예민한 반응을 본 경우가 있었다. 이처럼 '은진'은 도움을 다르게 본다거나, 타인이 호의를 베푸는 것을 반대로 왜곡해서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트라우마'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은진'은 트라우마 덩어리다. 이를 연기하는데 많이 힘들고, 노력하고 있다.

   
▲ 배우 신소현이 무기징역수 '은진'을 연기한다.

이 작품은 겉보기엔 사랑 이야기로만 보이지만, 결국은 누군가에 대한 방관을 말한다.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ㄴ 김형균 : 우리는 항상 수학적 절대기준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것은 상대적인 것 같다. 방관을 어디서 어디까지를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었다. "저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닌가?", "저건 아니지 않은가?"라는 고민은 항상 있다. 예를 들어, 마을버스를 타고 이 장소로 온다고 가정해보면, 우리는 공공 예절 중 버스 안에서 전화 통화도 조용히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연로하신 어르신이 귀가 안 들리실 수도 있지만, 사람도 많은데 통화를 굉장히 오래 하셨다. 듣는 분들이 불편하실 정도인데, 그걸 말씀드려야 하는가, 어르신인데 애매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다. 이처럼 애매한 지점이나 상황에서 방관의 기준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방관은 스스로가 좀 더 불편하거나, 스스로 느낌이 딱 왔을 때 그걸 배제하거나 묻어버리는 것 같다.

이지수 : 어제(10월 28일)도 우상전 선생님이 연습하는 걸 보시면서 "이 이야기에 뭘 많이 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겉으로 보면 한 여자가 복수하는 내용 같지만, 여러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어서 흥미롭고 연출로 잘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이 작품에 나오는 '보육원 남녀' 일종의 원장으로 인해 둘 다 고통받던 피해자다. 보육원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둘 다 과실이 생긴다. 한 사람은 과실을 모두 뒤집어쓰지만, 한 사람은 과실이 있어도 없었던 것처럼 살게 되며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교도소 복역을 마친 후 여자가 찾아왔을 때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했다. 피해 보상도 아니고, 자기가 고통받던 과거의 일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일까? 여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신의 고통을 진정 이해하길 바라는 것인지도 생각하게 됐다.

   
▲ 이지수 연출이 지난해 '2인극 페스티벌'에서 '잠수괴물'을 연출한 후 다시 한 번 2인극 연출을 한다.

최근 SNS상에 '밀양 여고생 사건'의 가해자 사진이 올라온 경우가 있었다. 신상 정보의 공개, 가해자들의 법적 처벌을 별도의 문제라 치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봤다.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있는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리겠다. 지난해 참사도 마찬가지다. 이걸 교묘하게 현대 사회에선 금전적 문제로 잘잘못을 가리려고 한다. 경제적으로 무엇인가 빼앗기면 내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그런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신소현 : 나는 방관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옛날엔 남 일엔 관심이 진짜 없었다. 그런데 지금 세월호 같은 큰일에 "내 일이 아니니 그만하라"부터 규명도 아직 되지 않았는데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식이 그렇게 죽으면 그렇게 반응할 수 있을까? 이제는 한 단계 나아가서 "누가 타래"부터 "못사니까 비행기가 아니라 배를 타지"라는 인간 이하의 발언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각박한 상황 속에 나는 모든 면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배우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발전하려고 한다. 다방면으로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우리가 사는 세상 "나 몰라라"하지 말고 해야 나쁜 일들이 자행되지 않을 것 같다.


▲ 신소현 배우의 배역 소개.

본인에게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ㄴ 김형균 : 겪어보지 않은 일인데, 겪어보고 싶진 않다. (웃음) 진짜 그런 상황이 왔으면, 내 성격상 되게 무서웠을 것이고 식은땀이 나서 많이 피했을 것 같다. 주인공이 어려운 과거로 살았고, 와이프도 있을 것이고, 아기도 있을 테니, 자기가 잘살고 있는 현실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욕심이 생길 것 같다.

2인극은 두 배우의 호흡이 중요하다. 상대 배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ㄴ 김형균 : 신소현 배우는 이번에 처음 만나는 배우다. 만나면서 굉장히 이야기도 잘 통했고, 호흡도 잘 맞았다. 이 작품의 특성상 각자가 구축해야 하는 것이 매우 많고, 고민할 것도 많다. 둘이 당연히 죽이 잘 맞아야 하는데, 개인 스스로가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 섣불리 서로 의존하면 같이 무너질 수 있는데, 아직까진 잘 이야기되고 잘 맞춰가고 있는 것 같다.

신소현 : 내가 약간 내성적인 부분이 많다. 낯가림이 심한데, 선배님이 먼저 다가와 주셨는데, 술이 도와줬다. (웃음) 허심탄회하게 술 마시면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다. 한두 달 정도 먼저 시작해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미팅하는 식으로 익히려 했는데, 남자 배우가 늦게 캐스팅되어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배님이 많이 노력해주셨다. 팀이 다 술을 좋아해서 다 같이 회식을 자주 한 것 같다. 그래서 많이 친해졌다. 호흡적인 면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연출님이 둘이 화내는 장면에서 너무 친해져서 화가 약해졌다고 우려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호흡을 잘 맞추고 있다.

이지수 : 아주 어린 분들이거나 워낙 고집이 센 분들이면 모르겠지만, 두 분은 작업하는 마인드 자체가 서로 소통하는 것을 베이스로 하므로 힘든 점은 없었다. 오히려 나와 배우들의 소통 문제가 있었다. (웃음)

   
▲ 김형균이 과거를 잊은 채 살아가는 '혁'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은?
ㄴ 김형균 : 그런 대사가 나온다. "내 시간은 멈춰있지만, 너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다. 둘 사이에 있던 하나의 기억을 두고 그 생각의 깊이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 그것이 현재, 과거, 미래에도 그럴 수 있겠지만 겪는 문제일 것 같다. 관객과 인간 김형균도 그렇지만, 나의 기억과 타인 기억의 무게감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시면서 보시면 좀 더 깊게 관극하실 수 있다.

이지수 : 여자는 드라마 내내 "내가 원하는 것이 뭐게?"라는 문제를 낸다. 정작 마지막에 여자는 내가 뭐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나간다. 남자는 혼자 남아 "지가 원하는 건 뭐야?"라고 말한다. 과연 그게 무엇이었을지, 남자와 여자 두 사람 중 남자의 시선을 우리의 입장이라 보고 따라갔으면 싶었다. 그게 가장 관건이다. 끝나는 시점에선 다양한 생각이 나올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입장을 보면서 끝까지 보고 싶은 것은 어떠한 과실에 대해 적어도 내가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거기에 대해 기피를 한다거나, 책임이 없다는 식의 발뺌은 곤란할 것 같았다.

신소현 : '혁'이 마지막에 계속 "미안해"라고 한다. "내가 잘못했다. 다 내 잘못"이라는 말을 계속한다. 그랬을 때, 그 마지막 "미안해"를 '은진'은 듣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뭘 까라고 말하는데, 나는 진심 어린 사과가 먼저라고 봤다. 그걸 듣지 못하고 나간다. 그랬을 때,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을 더 들여다보고, 마음에 우러나 사랑하는지, 화려하지 않아도 진심이 통하면 마음이 전달되는데 우리가 지나치는 건 아닌지, 마지막 "미안해"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혁'은 우리의 모습이다.

한민규 : 다 공들였는데, 첫 번째로 두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이 제일 크다. 결말보다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약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한 명의 시간은 흘러가고 한 명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은진'은 무기징역이 되고, 남자는 무죄로 판명되어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어떤 표현이 가장 효과적일지 생각을 많이 했다.

현재-과거-현재-과거로 진행하다가 마지막 장면엔 현재와 과거가 같은 시점으로 가게 하였다. 영화적으로 따지면, 플래시백(Flashback, 장면의 순간적 변화를 연속해 보여주는 형태)-인서트(Insert, 특정 동작이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삽입한 화면)-플래시백-인서트의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몽타주(Montage, 따로 촬영한 화면을 적절하게 편집해 하나의 새로운 장면을 보여주는 방법)로 가게 만드는 기법인데, 연극적으로는 삽화적 구조인 것 같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