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호성, 정운선, 이순재, 채국희, 지현준이 포토타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내놔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 배우 이순재

올해 마지막으로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연극은 미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아서 밀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선보인 '시련(The Crucible)'이다.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통해 1929년 발생한 미국 경제 대공황 시기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연극 '시련'은 그의 1953년 작품으로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1950년대 미국 현실을 비판하고자 1692년 '세일럼 마녀재판'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다. 매카시즘은 미국을 휩쓴 반공산주의 선풍으로, 이로 인해 억압을 받은 아서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과 개인의 이기심이 결합해 만드는 맹목적인 집단적 광기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파괴해 가는지를 묘사한다. 이런 내용은 이런저런 '시련'을 겪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전달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미 티켓 오픈 당일부터 전체 좌석의 과반수의 객석이 판매되면서 높은 관심을 받는 연극 '시련'은 지난 5월 '이영녀'를 표현주의적으로 해석해 좋은 평을 받은 박정희 연출에 의해 무대로 옮겨진다. 또한,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 중인 김윤철이 직접 번역을 했다.

오는 12월 2일부터 28일까지의 공연을 앞두고 19일 오전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시련'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제작발표회엔 김윤철 예술감독, 박정희 연출을 비롯해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원칙과 주장을 바꾸지 않고 무자비하게 사형을 선고하며 권력의 광기를 보여주는 '댄포스' 역의 배우 이순재, 이호성이 자리에 참석했다.

또한, 개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면서 세상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존 프락터' 역의 배우 지현준, 사랑하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마을을 혼란에 빠뜨리는 '아비게일'에 배우 정운선, 그리고 진실하고 신앙 가득하지만 차가운 모습을 보여주는 '엘리자베스 프락터' 역의 채국희 배우 역시 자리를 빛냈다. 왜 이 작품을 연말 기획작으로 선보이게 됐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김윤철 예술감독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련'을 기획한 배경과 작품 소개를 듣고 싶다.
ㄴ 김윤철 : 올해 국립극단은 해방 70주년을 맞이해 '해방과 구속'이라는 주제로 기획하고 있다. 해방된 지 70주년이 된 것을 우리가 자축하자는 의미도 있고, 우리가 또다시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경계하자는 의미로 기획의 주제를 삼게 됐다. 그 측면에서 '시련'은 한 인간이 정의를 위해 투쟁을 하다가 죽음의 공포로부터 위협당하고 결국은 진실로 그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해방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지난봄에 '3월의 눈'을 올릴 때, 이순재 선생님이 작품을 보러오셨다.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시련'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고, 특히 '댄포스' 역할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다 올해 공연을 결정하게 되어서 모시게 됐다. 또한, 박정희 선생님이 '이영녀'를 잘하셨고, 과거에 '시련'을 연출한 기억을 좋게 가지고 있어서 모시게 됐다. 나머지 주요 캐스팅도 순조롭게 됐다. 모든 등장인물이 가진 성격이 너무나 차별화되고 극과 극에서 충돌하기 때문에 연극성과 시의성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 본다.

올해는 아서 밀러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자 서거한 지 10주기가 되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해다. 영국과 미국과 같은 영어문화권에선 아서 밀러를 새롭게 조명하는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 영국에서도 '세일즈맨의 죽음', '시련',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등 작품들을 다시 조명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립극단이 선호하는 서사 중심, 현대 개념 등을 두루 충족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해하고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연출했나?
ㄴ 박정희 : '시련'을 이번에 두 번째로 연출하게 됐다. 내 해석을 정통적으로 했고, 좀 더 동시대 관객들의 정서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련'은 김윤철 예술감독님은 한 인간의 정의를 위해서 투쟁을 한다고 했지만, 나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본질을 찾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사소하게 여자에 통제되지 않는 욕망으로부터 출발한다. 거짓말이 사회에 만연되고, 그 거짓말이 모든 사람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준다. 공포에서 생겨나는 거짓말로 마녀사냥을 하는 것인데, 그 죽음 앞에 대면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과 죽음 앞에 서 있는 한 보통 남자가 죽음과 대면하면서 어떤 것을 선택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지에 중심을 뒀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코드는 통제되지 않은 욕망, 죽음 앞의 공포, 거기서 이뤄지는 선택이다.

   
▲ 박정희 연출이 연극 '시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극 '시련'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ㄴ 이순재 : 이전에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두 차례 출연했다. 또한, '시련'은 학생들과 워크숍을 하기 위해 접근해봤다. 두 작품 모두 아주 좋은 작품이라는 것을 새삼 발견했고, 아서 밀러 작품을 좋아하게 됐다. 함유한 정치적, 시대적 배경이 복잡하게 들어있고, 인물들의 성격이 명쾌하게 제시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제대로 연습해서, 제대로 된 공연을 하면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번에 국립극단에서 올리게 되어 기쁘게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댄포스'는 작품에서 나오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인물인 부지사다. 행정과 법률을 다루면서 동시에 종교적으로도 깊이가 있는 복합적 인물이면서 권위적 인물이다. 권위를 지키기 위해 눈앞의 부정을 눈감고 넘어가는 역할이다. 이 작품은 다 아시겠지만, 매카시 때문에 곤욕을 치른 아서 밀러가 패러디하고자 마녀사냥과 결부시켜 쓴 내용이다. 매카시즘은 사회적으로 영향을 많이 일으켰다. 특히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곤욕을 당했다. 찰리 채플린이 이 시대 스위스로 망명을 가서 다시는 미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이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내놔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고 명작은 명작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기꺼이 참여하게 됐다.

사실 1958년에 국립극단에서 수습생 비슷한 조건에서 출연한 적이 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또 다른 작품으로 출연했었다. 그게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이번에 이 작품을 참여하게 돼서 보람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잠깐 말씀드렸지만, 세종대와 가천대 학생들과 워크숍을 두 번 했다. 작품이 아주 좋고, 대사훈련 시키는 데 정말 좋은 텍스트라고 봤다. 과거 본 '시련'이 조금 미흡했던 것 같아 언제 기회가 나오면 이걸 해보자고 김윤철 감독과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참여하게 됐다. 상당히 힘이 드는 작품이다. 대사가 200여 마디가 되고 쉴 새 없이 격렬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 문제도 있는데, 든든한 이호성 씨가 있어서 생각대로 열심히 표현될 것 같다. 말년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작품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이호성 : 나의 '댄포스'는 이순재 선생님과 다를 테니 궁금해하실 것 같다. (웃음) 우리 작품의 무대는 굉장한 특수성이 있다. 무대 뒤에도 한 4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객석이 있다. 그래서 배우들이 어렵다. 보통 무대 앞 관객들 대상으로 각을 잡고, 대사를 치르고, 연기하는데 뒤에 40분이 또 있으니까 뒤에 있는 관객들에게도 연기를 줘야 하니 상당히 고난도의 연기를 펼쳐야 한다. 좋은 점은 이순재 선생님이 앞서 하시면 나는 따라가기만 한다. 이 자리를 빌어 이순재 선생님을 감히 존경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곧 올해 여든셋이 된다. 영국 같은 경우는 '경(Sir)'을 붙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뭘 하는지 모르겠다. (웃음)

   
▲ 배우 이호성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댄포스'를 연기한다.

객석을 무대 반대편에도 둔 이유는 무엇인가?
ㄴ 박정희 : 나에게도 도전의식을 주었던 무대다. 관객과 관객이 대치되는 상황이다. 마치 서로 거울을 보는듯한 콘셉트다. 무대 디자이너에게 '제의'의 공간을 해달라고 했고, 도가니 콘셉트로 하게 됐다. (편집자 주 : 무대 뒤편의 특별관람석은 시야 장애가 있어서 가격이 더 저렴하다.) 무대 디자이너의 의도는 연극을 보고, 감상하고, 즐기고,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하게 해주려고 한 것이었다. 현대 관객은 연극을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꾸민 것 같다.

각자 배역을 소개해달라.
ㄴ 지현준 : '존 프락터'는 농부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그 씨가 사라져야 쌀이 나오듯, 자기가 없어져야 많은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루 일군 만큼, 자기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람답다는 생각을 한다. 농부로 사는 마을에서 인정받는 한 중년의 남자가 어떤 여자의 욕정에 들어갔다가 그 순간에 스스로 발가벗겨지는 내용이다.

작품이 너무 유명하고 항상 꿈꾸던 작품인데, 이렇게 찾아와줘서 놀라웠고 잘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하다가 연출 선생님 말씀처럼 개인의 본질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소리를 낼 수 있건 아니건 내가 어떤 소리로 존재를 외쳐야 할지 궁금하다. 마지막 대사엔 '영혼의 소리를 내며'라는 지시가 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안소니 홉킨스가 "대사를 천 번 보면 배역의 영혼까지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아직 대본을 천 본 보지 못했다. 최대한 보려고 하고, 무작정 새로운 것을 연기하기보단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 일단 영혼을 담는 연기를 꼭 해보고 싶다.

정운선 : 악의 축이자 통제되지 않는 욕망 덩어리 '아비게일'을 맡아서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맹목적인 열정이 강렬하다고 봤다. 또한, 무모하고 무지하므로 저돌적이고 직진할 힘이 있다고 봤다. 어떤 인간이든 무엇을 하겠다는 욕망이 있다고 봤다. '아비게일'을 통해 내가 어렸을 땐 어땠고, 나에겐 어떤 욕망이 있는지, 무엇을 갖고 싶고, 쟁취하고 소유할지, 광기까지 낼 정도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주변에서 그런 사례가 뭐가 있는지 보고, 선생님들이나 선배님한테도 도움을 받는 중이다.

태어날 때부터 악의는 없다고 본다. 성악설이나 성선설이 있겠지만, '아비게일'은 도대체 이렇게 통제되지 못할 만큼 갖고 싶은가라는 생각을 찾다 보니 어떤 결핍을 발견했다. 그 결핍이 무엇인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있다. 기존엔 하지 못한 역할이어서, 오늘도 빨간 옷을 입고 입술에 빨간색 립스틱도 발라보며 다양한 접근을 해보려 한다. 영화도 많이 봤고,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보려 한다. 여배우라면 꼭 해보고 싶은 팜므파탈의 '아비게일'을 잘 해보겠다.

   
▲ (왼쪽부터) 정운선, 이순재, 지현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국희 : '아비게일'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존 프락터'의 아내다. '엘리자베스 프렉터'는 '아비게일'처럼 여배우라면 한 번쯤 맡아보고 싶은 캐릭터라고 이야기를 들었고, 꼭 해보고 싶다는 대사가 있어서 선택하게 됐다. '엘리자베스'는 내부에서 매우 큰 감정이 요동을 치지만, 겉으론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차갑고 이성적이지만 직접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다. 특히 무대가 원형이고 뒤에 객석도 있어서 그 에너지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연습하고 있다.

공연 전부터 예매율이 상당하다.
ㄴ 김윤철 : 현재 90% 정도 표가 판매됐다. 공연이 며칠 남았는데 100% 판매를 기록하는 최초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알고 있다. 연극적으로도 강력하고, 우리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연극학과에서 이 작품을 '졸업 작품'으로 공연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대학생들이 이 작품에 가진 경외감이 큰 것 같다. 그래서 현재 사석이라고 하는 자리까지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판매를 해야 하는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작품이 잘 만들어져서 국립극단이 연말에 국민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작품엔 어떤 시의성이 있나?
ㄴ 이순재 : 옛날이야기지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정치부터 종교까지 다 있다. 종교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생명의 존엄성이 있다"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 그걸 유지하고 복원하기 위해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오늘날 사회에서도 이런 정신이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 같다. 등장인물들을 보면 현실에도 가까이 있다. '패리스'는 물질주의적 목사인데, 그런 목사들은 이 세상에도 있다. 또한, 아서 밀러 자신이 당한 정치적 탄압, 오해, 편견으로 인권이 말살되는 이런 부분에 대해 강하게 인간 존엄을 주장하는 작품이라 봤다. 여기에도 큰 의미가 있다. 고전은 보통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작품성이 있다.

예를 들어,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1막 마지막에 "창밖의 달이 아파트 사이로 지나가고 있다"라는 대사가 있다. 그 대사를 1979년 공연했을 땐 의미를 잘 몰랐다. 지금 보니 뉴욕의 자연이 훼손되어 마천루가 등장하며 달이 건물 사이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시대를 초월해 작품의 사상이 언제든지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배우 이순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권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댄포스'를 맡았다.

김윤철 : 아서 밀러가 '세일즈맨의 죽음'을 발표하고 '뉴욕 타임즈'에 '평범한 사람과 비극'이라는 글을 낸 적이 있다. 비극은 서양 연극의 주요 형식이라서 아서 밀러가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인간이 완벽해질 가능성을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극 형식이라고 봤다. '존 프락터'의 아내는 감옥에 가고, 아이들은 길거리에 방황한다. 그리고 마녀사냥 재판에서 살아남는 길은 악마와 결탁했다고 고백하고 서류에 사인하는 것이라고 강요당한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 이름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서류를 찢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옛날 그리스 희극에선 비극의 주인공이 왕이거나 귀족이었다. 비극의 핵심은 주인공이 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서 밀러는 보통 성인도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존 프락터'도 자기 이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자기가 원하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신이 죽는 것은 영웅의 비극 원류 중 하나다. '존 프락터'가 그중 하나다.

시의성은 보편성과 함께 당대성을 겸해야 한다. 이 작품에 보면 물질주의를 의미하는 황금에 대한 욕망 때문에 목회를 이용하는 '패리스' 목사가 등장하는데, 확대하면 일부 한국의 대형교회를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권력이 집단 히스테리가 될 때, 우리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시의성을 충분히 발견할 것이다.

박정희 : 어쨌거나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내 연출스타일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메시지의 방향은 잡지 않는다. 어차피 그 방향은 던져져 있고, 구조가 그렇게 되기 때문에 그걸 강화할 필요는 없다. 거기서 생겨나는 역학관계에 좀 더 중점을 뒀다. 그래서 정치극이라고 표방하거나 표현하고 싶지 않다. 세일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 사회를 은유한다. 종교, 권력, 맹신,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 인간이 사법권을 짓밟을 때의 초점도 맞추긴 했다. 그리고 이것이 요즘 논란이 되는 좌파, 종북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에서 그런 것들이 왜 일어나는지도 맞췄다. 권력과 개인이 만날 때 생기는 문제에 초점을 뒀지만, 거대담론의 사회 메시지를 던지기엔 내가 너무 공허하게 느껴졌다.

   
▲ (왼쪽부터) 배우 이호성, 김윤철 예술감독, 박정희 연출, 배우 이순재, 정운선, 채국희, 지현준이 연극 '시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우리는 정치, 사회, 경제 체제 안에 있다. 그 체제 안에 우리가 부속물은 아닐 것이라 본다. 우리가 무언가를 욕망하고, 저항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이게 무조건 사회적 메시지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냈다. 과연 권력이란 시스템, 어떤 종교란 시스템에서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나는 개인의 정직함을 봤다.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직함과 존엄성이 있어야 일어나게 된다. 무작정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힘을 회복해야 하고, 아서 밀러의 '시련'은 그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본다.

단순히 매카시즘으로 희생당해서 사회를 비판한 것뿐 아니라 크게 보면 프로파간다처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정직과 만나고 존엄성을 찾아갈 때 하나의 힘이 된다고 보고 있다. '존 프락터'가 희생을 당하지만 그건 큰 힘이라 본다. 정신분석, 심리학을 이 작품의 분석 때문에 살펴보게 된다. '존 프락터'는 굉장히 내적 힘이 강한 사람이다.

김윤철 : 이 작품의 의미는 보는 관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정치적, 종교적으로 내포한 뜻을 읽거나, 정신분석학적이나 심리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건 모두 관객의 몫이다.

이호성 : 옆에 이순재 어르신이 계시지만, 나도 환갑을 넘은 지가 어느덧 2년 됐다. 이 나이를 먹도록 이 땅에 살아보니 지금은 '카오스'다. 가치관의 혼돈에 있다. 어떤 것이 정의, 불의, 선, 악인지 혼란스럽다. 양쪽에선 우리가 선이고 저기가 악이라고 한다. 선과 악을 과연 누가 구분 지을까? 결국, 그 힘을 가진 큰 집단이 선을 차지한다. 사실 우리 작품에 '패리스' 목사의 그런 대사가 다온다. "지금은 명확한 시기다. 지금은 엄중한 시기다. 악이 선한 가면을 쓰고 세상을 만취시키는 그런 어둠 속에 우리는 더는 살 수 없습니다"라며 자기가 선이라 이야기한다. 구조주의적으로 "우리는 이렇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관객분들이 와서 판단하면 좋겠다.

연령대가 다양한 배우들이 호흡을 한다.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ㄴ 박정희 : 이번 참여한 배우들은 처음 같이 작업한 배우들이 더 많다. 내가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배우 연기를 가장 먼저 앞세워서 하는 연출이긴 하다. 하지만 연극적 생각하는 것과 연출적 생각하는 언어가 특이해서 배우들이 혼란스러워한다. 가끔 화도 내고 하기도 하지만, 배우들이 참 사랑스럽다. 그래서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힘들 것 같다.

   
▲ 이순재(왼쪽)와 지현준(오른쪽)이 배우들에게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연극 '시련'에 출연한다.

그래도 이번에 지현준 배우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얼굴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니 부끄럽다. 인물 분석을 하는데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된다. '존 프락터'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깊고 넓다. 앞서 배우가 말했듯이 '영혼의 소리'를 생각했다는 말에 내가 부끄러워졌다. 영혼의 소리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배우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행운이다.

또한, 이순재 선생님 같은 경우도 연출을 여러 번 하셨지만, 연출에 대해 터치를 하지 않으신다. '신의 아그네스'를 할 당시에도 박정자, 손숙 선생님도 그런 연출에 대해 터치를 하지 않으신다. 진정한 프로인 것 같다. 연출에 대한 터치를 전혀 하지 않고 배우로 어떻게 역할을 좀 더 창출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다. 그래서 이순재 선생님 만난 것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다. 또한, 여기 계신 정운선, 채국희 배우, 이호성 선배님 다 좋은 경험이자 즐거운 만남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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