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바람풀의 페터 투리니 작 박정석 연출의 요셉과 마리아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페터 투리니(Peter Turrini)는 1944년 오스트리아의 쌍트-마가레텐에서 태어나 희곡, 시, 시나리오, 방송극, 소설, 연설문 등을 썼으며 1971년부터 20년에 걸쳐 여러 번 상과 훈장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쥐사냥 Rozznjogd> <돼지 도살> <끝내주는 날> <유아 살해> <두 명의 주인을 섬기는 하인 (Der Diener zweier Herren)> <알프스의 불빛(Aipengluhen)> 그 외 다수작을 발표 공연했다.특히 그의 처녀작 <쥐사냥 Rozznjogd(1971)>이 비인의 민중 극장(Volks theater)에서 공연되었을 때, 노골적인 언어와 공격적인 주제로 인해 비평가들의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관객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으며 '불편한 향토 작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의 치밀한 구성과 처음부터 숨 돌릴 틈 없이 관객을 몰아붙이는 긴장감, 강렬한 주제로 인해 그는 '실험적 언어의 천재적 마술사'라는 칭호를 받으며 현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연출가 박정석은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으로 극단 바람풀의 대표이자 상임 연출이다.

연출작으로는 <저승> <에코> <그 아이 유관순> <다홍치마> <로베르토 쥬코> <아니사 말리>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낙타의 꿈> <성인오락실 여자이야기> <염쟁이 유씨>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무대는 백화점의 지하 창고다. 크리스마스 장식나무와 함께 저장상품상자가 여기저기 쌓여있다. 상자 곽에 든 고급포도주병도 무대좌우 바닥에 쌓여있다. 무대 중앙에는 긴 안락의자와 탁자가 있다. 하수 쪽 배경 막 안쪽으로 내실이 있어 청소부 여인이 전용을 한다. 극장의 출입구가 등퇴장 로로 설정이 된다.

   
 

때는 성탄절 저녁이다. 백화점 청소부 여인이 창고청소를 하며 하루일과를 마무리하려 한다. 휴대전화 통화내용으로 보아 자녀가 있기는 한데, 어머니를 반기는 눈치가 아니고, 아버지는 없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홀로된 중년여인이 홀로 맞는 성탄절 저녁을 홀로 지하창고에서 보내니, 신세타령이 한숨처럼 터져 나오고, 바닥에 쌓인 포도주병에 손길이 가는 게 당연해 뵌다. 음주를 하다가 전기청소기로 소제를 하고, 다시 음주를 하고, 그러는 외롭고 쓸쓸한 여인의 모습에 관객의 가슴이 아련해 지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 백화점 경비원이 순찰차 창고로 들어선다. 나이가 들어 뵈는 남성으로 인상이 좋아 마치 정년퇴임한 초등학교 교장선생 같은 느낌이다. 청소부와 경비원, 마주친 두 사람, 처음에는 놀라고 거북스러워하고, 서먹서먹하게 대하지만, 두 사람 다 독신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서서히 상대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젊은 사람들처럼 불꽃이 번쩍이며 벼락같이 다가가는 게 아니라, 역시 노인답게, 은근 슬쩍 거북이보다도 느린 행동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노 경비원은 품에 지닌 책을 꺼내 보이면서 온화하고 정중하고 귀부인을 대하듯 청소부 여인에게 품위 있게 접근을 하고, 여인은 나이에 비해 건강한 몸매를 은근슬쩍 드러내며 남성에게 다가간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춤을 추자고 권유를 한다. 여인은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의 "당신은 오늘저녁 외롭지 않은가요?(Are you lonesome to night?)라는 노래를 틀어놓고, 바싹 다가선다. 남성은 춤을 춰 본적이 없다며 머뭇거리자, 여인은 발 움직임을 하나하나 가르쳐주며,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관객도 동화되어 함께 몸을 흔들기 시작하고, 1개월 남짓한 성탄전야를, 관극을 하면서 당일에 성탄절을 맞는 듯싶은 심정이 되어간다. 여인도 자신의 도발적이고 관능적이기도 한 과감한 행동에 스스로 놀라 멈칫거리기도 하지만, 도도히 흘러가는 사랑의 강물을 어찌 감히 막을 수 있으랴?

   
 

대단원에서 포도주와 음악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늪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간 두 사람은 함께 옷을 벗고 긴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아 이불을 서로 덮어주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신현종이 경비원 요셉, 전국향이 청소부 마리아 역을 맡아 극의 분위기를 고품격 고수준으로 상승시키고 관객을 성탄전야로 이끌어간다. 필자 같은 노년의 관객에게는 꺼져버린 듯 잊고 있던 사랑의 불꽃을 서서히 솟아오르도록 만드는, 박정석의 연출력과 신현종과 전국향 부부의 연기력이 감지되는, 기억에 길이 남을 한편의 명화 같은 연극이라 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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