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대학로 가든씨어터에서 극단 사하의 김상열 작, 송수영 연출의 <선달 배비장>을 관람했다.

배비장의 원전은 배비장 타령이다. 판소리 12마당 중 소실된 7마당 중 하나가 배비장전의 원전이다.

고종 때 신재효가 판소리 사설을 여섯 마당으로 정착시킬 때 빠져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배비장 타령은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소재가 된 근원설화는 기생과 이별 때 이빨을 빼준 소년의 이야기인 <발치설화>와, 기생을 멀리하다 어린 기생의 계교에 빠져 알몸으로 뒤주에 갇힌다는 경차관의 이야기인 <미궤설화> 2가지가 포함되었다.

절대 여색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부모님과 부인에게 큰소리치던 배 비장이라는 인물이 제주도로 부임하는 부사를 따라가서, 마침 애랑 이라 부르는 기생에게 홀려서 앞니까지 다 빼 주는 관리를 보고 비웃는다. 배 비장은 이것을 보고 자신이 여색에 빠지나 안 빠지나 방자와 내기를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성인군자인양 허세를 부리던 배 비장 입장에서는 이기기 힘든 내기였고, 거기에 더해 내기의 당사자인 방자가 처음부터 애랑과 짜고,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를 주도하면서 상관인 그를 골탕 먹인다는 내용이다.

배 비장이 위선을 떠는 모습이나, 그러한 위선을 떨다가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시대 관료들의 비리와 위선을 풍자한 작품이다. 특히 배 비장이 자신의 상관과 부하를 포함한 만인이 보는 가운데 알몸뚱이로 우주유영 허우적대는 마지막 장면과 그것을 변명하느라 또 허세를 떠는 그의 마지막 대사가 묘하게 호질(虎叱)과 비슷한 일면이 있다.

어느 판본에서는 후에 배비장이 이런 경험을 한 뒤에 정의현감이라는 관직에 오르면서 정사를 잘 다스렸다 전한다.

김상열(1941~1998)은 1966년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 가교를 시작으로 현대극장에서 연출활동을 벌이고, 1987년 극단 신시를 창단하여 작고 시까지 대표를 역임한 연극계의 큰 별이다. 문공부공모 희곡당선, 도의문화저작상,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연출상, 서울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등을 수상했다.

수사반장, 마당놀이, 어린이뮤지컬, 창작뮤지컬, 악극 등 다양한 장르의 개척과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사후 부인 한보경에 의해 김상열 연극상이 제정되었다.

송수영(1952~)은 극단 사하의 대표인 배우이자 상임연출이다. 쥐덫, 엄마의 방, 향숙이, 나의 고백, 신방자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그 외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출연한 대표작으로는 에케호모, 바람꽃,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우자알버트, 인생제2막, 오셀로, 피그말리온, 쥐덫 등이 있다.

송수영이 처음 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는 저녁이면 학교 운동장에 스크린을 설치해놓고 영화를 보여주곤 했었는데 스크린 안에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던 경험을 했다.

어린 생각이었지만 나도 저 배우들처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연극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테렌스 영 감독과 공동 연출한 한재수 선생이 원장이던 한일배우전문학원에서 연기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공부하게 됐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게 되었다.

이후 한재수 선생의 권유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으로는 시집가는 날(1977,김응천감독), 벽 속의 두 사람(1977,이성구감독), 도솔산 최후의 날(1977,설태호감독), 개선문(1978,김응천감독), 무상(1978,이성구감독),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이장호감독), 일송정 푸른 솔은(1983,이장호감독) 외 20여 편에 출연하고, 은어 (박갑종, 2010), 와이키키 브라더스 (임순례, 2001), 그렇게 김순임은 강두식을 만났다 (김한민, 1999), 일송정 푸른 솔은 (이장호, 1983), 0점하의 자식들 (김양득, 1982)에 출연해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2014년에는 한국연극배우협회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대는 배경에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이 자리를 잡고, 건물의 뚫린 구멍 같은 조형물과 사각의 틀로 된 뒤주 조형물, 색색의 광목으로 파도의 형상을 연출해 내고, 병풍형태의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하수 쪽에 타 악 연주석이 있고, 음악과 음향효과는 녹음으로 처리되고, 의상과 분장은 고풍을 답습했다.

연극 <선달 배비장>에서는 방자가 연극을 이끌어 간다. 물론 여성 고수가 등장해 극의 도입에 관객과의 소통을 펴고, 배비장과 애랑의 호연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사또 또한 근엄하고 품격 있는 연기로 극의 주춧돌 역할을 하지만, 배비장 전이라기보다는 신방자전의 등장이다.

방자가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폭소창출자 역할을 한다. 거기에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의 얼굴가면마술, 스트립쇼를 하듯 춤추는 미녀무용가, 올림픽 선수 같은 여성체조선수가 등장해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며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낸다.

대단원에서 벌거벗은 자세로 수영하듯 허우적대는 배비장의 모습은 관객들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일순간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해진 극장의 분위기에, 저마다 주위를 돌아보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배비장으로 이정성과 김종대, 애랑으로 김태라, 방자 김 영, 사또 홍일도, 해설자 윤미향, 초랑 장혜선 이현정 허정애, 포졸 김정옥, 얼굴마술 김동영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총괄기획 이영오 그리고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사하의 김상열 작, 송수영 연출의 <선달 배비장>을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연말을 장식하는 걸작 폭소희극으로 창출시켰다.

 

▶공연메모
극단 사하의 김상열 작 송수영 연출의 선달 배비장
- 공연명 선달 배비장
- 공연단체 극단 사하
- 작가 김상열
- 연출 송수영
- 공연기간 2017년 12월 13일~14일
- 공연장소 가든씨어터
- 관람일시 12월 13일 오후 8시

 

[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