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어터의 유인촌 예술감독 박일훈 음악감독 이혜정 김세한 구성 및 드라마트루기 리다혜 조연출의 낭독 1945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낭독, 1945>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항일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1, 2부로 나누어 극적구성을 해, 국악 관현악단의 연주와 함께 짝수 날짜에는 안중근 의사 의거를, 홀수 날짜에는 윤봉길 의사 의거를 유시어터 무대에서 입체낭독형식으로 공연한다.

첫 번째 낭독공연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야기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자원했다. 10월 21일에 대동공보사 기자 이강(李剛)의 지원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안중근은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哈尔滨, 哈爾濱(하얼빈), Harbin)에 도착했다. 당초 계획은 동청철도(東淸鐵道)의 출발지인 장춘의 남장춘(南長春), 관성자(寬城子)역과 도착지인 하얼빈, 채가구(蔡家溝)역의 4개 지점에서 암살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여 도착지인 하얼빈과 채가구(蔡家溝)에서 저격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우덕순과 조도선은 채가구(蔡家溝)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공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채가구(蔡家溝)역에서의 계획은 이를 수상하게 여긴 러시아 경비병에 의해 실패했다.

10월 26일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하얼빈(哈爾濱)에 도착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열차 안에서 회담을 가진 후 9시 30분경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하였다. 안중근은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브라우닝 제 반자동권총 M1900으로 저격하였다. 이외에도, 일곱 발의 저격 총알 중, 나머지 네 발 중 세 발은 각각 옆에 있던 수행비서관, 하얼빈 주재 일본 제국 총영사, 만주 철도의 이사를 맞추었다.

저격 후, 안중근은 러시아어로 "코레야 우라! (Корея! Ура!)"라고 크게 외쳤다. 이 외침은 "한국 만세"라는 뜻이다. 저격 30분만인 오전 10시경, 이토 히로부미는 피격당한 직후 열차로 옮겨졌다. 죽기 직전에 브랜디(옛날에는 각성제로 종종 사용) 한 모금 마시고 "범인은 조선인인가?"하고 물었으며, 주변에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바보 같은..."이라고 뇌까리며 죽었다. 이는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의한 것이지만 조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총을 세 발이나 맞고 그런 말을 남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동행한 의사의 증언으로는 분명히 열차 내로 옮길 때까지 살아있었다고 한다. 다만, 다른 책에서는 죽을 당시에 "난 틀렸다... 다른 부상자는?"이란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감이 있다.

안중근은 곧바로 러시아 제국 공안들에게 체포되었고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장소를 하얼빈으로 정해, 일본이 아닌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조치하고, 변호사인 미하일로프 주필을 안중근의 변호인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일본 제국 정부에 넘겨져 뤼순 감옥에 갇혀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처형되었으며, 유해는 오늘날 현재까지도 찾지 못했다. 같이 거사한 우덕순은 징역 3년, 조도선과 유동하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편 법관양성소 출신 변호사 안병찬(安秉瓚)이 안중근을 위해 무료 변론을 했다. 안중근은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 재판과정에서 재판소내의 어떤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당당히 밝혔다.

   
 

두 번째 낭독공연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야기다. 1931년 겨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인 김구(金九)를 찾아, 독립운동에 몸 바칠 각오임을 호소해 그가 주도하는 한인 애국단에 가입했다. 김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일왕의 생일연(천장절(天長節))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행사를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며, 협의 끝에 윤봉길이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하였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공원에 입장한 후 11시가 되자 중국주둔 일본군(천진군)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이 등장했고 상하이에 있는 외교관과 내빈이 자리를 잡았다. 군악이 울려 퍼지고 열병식이 이어졌다.

11시 50분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윤봉길은 물통 폭탄을 단상으로 힘차게 던졌다. 경축 대 위에 폭탄이 명중한 것을 확인한 윤봉길이 자결하기 위해 도시락 폭탄을 떨어뜨렸으나 불발하였다. 도시락 폭탄이 불발하자 일본 헌병들이 윤봉길을 덮쳐 구타하였다. 윤봉길은 구타를 당하면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 외쳤다.

홍커우 공원에서의 폭탄 투척을 실행한 윤봉길은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쓰구 등을 죽이고, 총영사 무라이는 중상,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 중장은 실명되었고,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중장은 다리 절단 중상을 당했으며, 주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당시 중화민국의 장제스(蔣介石)는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이 폭탄 투척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의 100만이 넘는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인 청년이 해내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며 감탄하였고, 이는 그 동안 장제스가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은 폭탄 투척 직후 체포, 곧바로 헌병으로 넘겨지면서 보다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1932년 5월 28일 상해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1932년 11월 18일 일제 대양환으로 일본 오사카로 후송되어 20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2년 12월 18일 가나자와 육군구금소로 이감되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는가?"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므로 하등 말할 바 없다"

1932년 12월 19일 새벽 7시 27분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 미쓰코지야마 서북골짜기에서 형틀에 묶인 사형수 윤봉길은 미간에 총알을 맞고 13분 뒤에 숨졌다.

유시어터의 극장 2층 발코니로 오르는 계단 오른쪽에 국악 관현악단이 자리를 잡고, 극의 흐름에 맞는 연주로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관현악단은 극의 진행에 따라 엷은 망사막으로 가려지고, 망사막에 자막을 투하해 역사적인 사실을 자막으로 투사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망사막 앞에 여러 개의 의자를 가로 나란히 놓고, 무대 하수 쪽 객석 가까운 곳에 북과 고수석이 마련되어 있다. 무대 전면 정 중앙에 향로와 그 양쪽으로 촛불이 켜져 있고, 향 곽이 놓여있다.

낭독공연은 도입에 암전상태에서 관현악단의 연주와 함께 객석 출입구에서 등장한 출연자 일행이 무대로 오르면 맨 마지막에 고수가 올라가 중앙 향로 앞으로 와 촛불에 향을 붙여 향로에 꽂은 후 한지에 쓴 애국지사의 업적을 낭독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고수가 북이 놓인 곳으로 가 착석을 하고 북을 두드리면 낭독공연이 시작된다. 시대와 사건,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출연자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를 오가며 실제로 공연하듯 낭독을 한다. 음악은 물론 총성 등의 효과음이 고수의 장단과 어울려 극적효과를 발휘하고, 출연자들의 열정과 기량이 작중인물의 성격에 맞춰 제대로 된 감정이입을 통해 무대 위에 불꽃이 튀는 형상으로 구현된다. 의사들의 의거와 일대기가 마무리가 되면 고수는 중앙 향로 앞으로 와 한지에 적힌 의사들의 일대기를 지방을 태우듯 촛불에 붙여 태우고, 그 불꽃이 하늘 높이 날아가면 낭독공연은 마무리가 된다.

   
 

유인촌이 고수, 정주영, 손승범, 김기분, 이석현, 김진아, 이주연, 김성진 등 출연자가 안중근, 윤봉길, 그 외의 등장인물을 1인 다 역으로 연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제대로 된 성격창출로 마치 실제 공연 같은 입체낭독으로 갈채를 받는다.

피리 김정집, 해금 강은일, 거문고 허윤정, 가야금 박혜윤,아쟁 정성수 등 연주자들의 열정과 기량이 극적 효과 상승에 주효한 연주로 역시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유인촌, 음악감독 박일훈, 구성·드라마트루기 이혜정·김세한, 안무 김영미, 노래지도 조선아, 무대감독 함영규, 조명디자인 김은주, 의상 김진아, 영상 김장연, 조연출 리다혜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유시어터의 광복 70주년 기념<낭독, 1945>를 관객의 애국심 고취는 물론, 실제 공연에 비견되는 걸작 입체낭독공연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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