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드를 향한 사랑 고백
컬트영화 감독 ‘데이비드 린치’ 깜짝 출연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영화’는 좀처럼 글로 포획되지 않습니다. 그 미지의 세계에 기꺼이 발을 들여 탐험한 기록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문화뉴스 장성은 기자] “내 시작은 존 포드(John Ford)였다.” 일흔 넘은 감독 스필버그가 영화 ‘파벨만스’로 관객에게 보낸 사랑 고백이다. 이 영화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다. 

‘파벨만스’는 스필버그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A.I.’(2001) 이후 12년 만에 스필버그가 직접 각본에 참여한 작품이며, 어린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의 성장담과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새미는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접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이후 그는 아빠의 8㎜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스필버그 역시 12살 때부터 영화를 만든 ‘천재’라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어린 새미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세실 B.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1955)이고, 관람 이후 아빠의 카메라로 유사한 영상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영화’ 자체의 시각효과와 사운드에 매료된 경험이었다. 새미가 성장하면서 친구들과 극장에 몰려다니며 선택한 영화는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1962)다.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그뿐인가, 새미는 존 포드의 영향을 받아 친구들과 서부극을 찍었다. 여느 때처럼 서부극에 탐닉하던 새미는 전우들이 모두 전사한 현장을 홀로 걷는 병사 역할을 맡은 친구에게 자책하며 눈물을 흘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다가 그만 넋을 잃고 만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어머니에게서 느낀 정서가 새미의 영화에 스며들면서 존 포드의 영화를 상기한 것이다. 존 포드의 서부극에는 집을 등진 쓸쓸한 남자의 뒷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가 존 포드를 향한 사사로운 감정을 영화에 담았다는 말은 이야기 구성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야기꾼은 놀랍게도 자전적 이야기에서조차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파벨만스’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룰 때 나타날 수 있는 잉여의 장면이 없다. 오히려 짜임새 있는 장면 연결로 몰입감을 높인다.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영화는 아빠 ‘버트’(폴 다노)와 새미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연이어 두 번 보여준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구두 힐에 뚫린 피아노 악보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새미가 구멍 낸 필름으로 실감 난 총격 장면을 만들어내 아빠가 감탄하며 칭찬하는 장면이다. 곧바로 이어진 장면에서는 차 이동 방향이 반대로 바뀌면서 대화 내용도 상반된다. 버트는 새미에게 영화를 그만 찍고 착실하게 공부에 열중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두 시퀀스의 연결은 부차적인 장면을 과감히 생략하면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낸다. 

스필버그의 능숙함은 디졸브를 사용한 장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부모님이 이혼을 선언해 동생들이 충격받는 시퀀스에서, 새미가 동생을 바라보는 장면과 해변에서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는 새미의 모습이 겹친다. 여기서 쓰인 디졸브는 새미의 정신이 현실 상황에 기반하기보다 영화에 쏠려 있다는 인상을 느끼게 하며 관객을 새미에게 몰입하게 만든다. 스필버그는 자전적 이야기인 ‘파벨만스’가 관객이 빠져들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었다.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사진=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인물의 대화로 풀어내지 않고 이미지로 구성했다. 새미가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방식도,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하는 방식도 이미지였다. 새미는 가족들이 함께한 캠핑 영상을 편집하면서 어머니의 비밀을 알았고,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어머니에게 보여줬다. 스필버그는 관객에게 영화로 대화하는 방식을 전했고 ‘파벨만스’로 존 포드에게 사랑을 바친 것이다. 

존 포드를 향한 애정에 컬트영화 감독에서 주류 영화 감독이 된 ‘데이비드 린치’도 함께했다.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하는 존 포드 대역이 바로 ‘데이비드 린치’다. 영화판에 발을 들인 새미가 그토록 존경하던 ‘존 포드’(데이비드 린치)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영화는 천천히 그의 작품 포스터를 보여주면서 필모그래피를 훑는다. 주인공이 꿈꾸던 세계에 비로소 도착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존 포드는 새미에게 잊을 수 없는 조언을 남긴다. “지평선이 꼭대기에 있으면 흥미롭고, 바닥에 있으면 흥미롭다. 하지만 중간에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다.” 

영화는 이 짧은 대화를 나누고 건물 밖으로 나간 새미의 뒷모습을 보여주다가 재빨리 카메라를 흔들어 지평선을 다시 맞춘다. 이때 스필버그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아차차, 지평선!’ 일흔 넘은 감독의 이 농익은 유머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스필버그는 카메라를 놓기엔 아직도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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