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4.11
캐스팅: 김주택, 이지수, 고은성 외
장소: 유니버셜아트센터
좌석: 17열 중앙

빛나는 샹들리에와 붉은 레드카펫.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존재감을 뽐낼 법한 어느 화려한 극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공연장의 모습은 압도, 그 자체이다. 극장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모든 곳이 아름다웠다. 지금껏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신기한 디자인의 무대를 보고 설렘부터 앞섰다. 공연 시작도 전에 이 매혹적인 전경에 온통 마음을 뺏겨버릴 정도였다. 아마 이 엄청난 스케일의 극장을 마주한 관객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확신한다. 번쩍이는 광채로 공간을 수놓은 거대한 무대를 보고 나니 안 그래도 기대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 위로 위대한 대서사시의 막이 올랐다. 

격동의 19세기 모스크바,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는 전쟁터로 떠나보낸 약혼자 안드레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안드레이의 친우인 피에르는 무기력한 나날 속에 방 안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타샤는 우연히 간 파티에서 젊고 매력적인 군인이자 피에르의 친구인 아나톨을 만나고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며 가까워지는데...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모스크바에서의 삶을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탄로 나며 이들은 큰 위기를 맞는다. 피에르는 괴로워하는 나타샤의 모습을 보며 인생의 거대한 허무와 무게감을 느끼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작 소설의 내용이 워낙 방대한 데다 넓은 세계관, 수많은 등장인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내용 중 일부만을 다루며, 특히 나타샤와 아나톨, 피에르가 겪는 인생의 소용돌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이 세 명의 주요 인물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극 초반부터 등장하는 인물들의 소개가 끝도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워낙 다양한 인물이 나오기 때문인지 극의 포문을 여는 첫 곡, Prologue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다. 마치 '시장에 가면' 게임처럼 끝도 없이 누구도 있고, 누구는 어떻고, 하는 가사를 듣고 있자면 이 작품이 선사하는 치명적인 혼란에 빠져 헤매게 된다. 그러므로 원활한 이해를 위해서는 극장에 비치된 인물 관계도를 읽어보고 관람하는 것을 강력히 권한다. 아니면 '원작은 악명 높은 러시아 소설, 이름 외우다 집에 갈걸'이라는 Prologue 넘버의 가사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혜성처럼 빛나는 단 하나의 뮤지컬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혜성처럼 빛나는 단 하나의 뮤지컬

 

저마다의 개성으로 중무장한 인물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것은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이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주, 조연, 앙상블 배우 할 것 없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극장을 누비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합을 맞출 때는 하나 된 호흡으로 거대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한편, 홀로 돋보이는 장면에서는 무대를 완전히 휘어잡는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대단하다. 한 마디로 '성공한 조별 과제'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배우의 수많은 땀방울이 모여 비로소 이토록 눈부신 작품이 완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제작진 및 출연진들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낸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팝, 일렉트로닉, 클래식, 록, 힙합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음악들로 이루어진 송스루(sung-through) 뮤지컬로, 모든 장면이 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팝이면 팝, 클래식이면 클래식처럼 기본적으로 장르적 통일성을 가져가는 여타 뮤지컬과는 다르게 온갖 장르를 다 섞은 독특한 구성으로 새로움을 선사한다. 장르에 맞춰 등장하는 각기 다른 악기들의 모습도 매력적이다. 주축이 되는 피아노부터 북, 바이올린, 아코디언 등 여러 악기가 모인 풍부한 소리가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작품의 화려한 이미지에 걸맞게 웅장하게 울리는 노래는 관객의 심장박동 소리를 함께 울린다. 쿵, 쿵 뛰는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 만큼 '그레이트 코멧'의 음악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무대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무대를 기준으로 무대를 감싸듯 뒤쪽과 앞쪽에 객석이 존재하고, 배우들은 중앙 무대와 객석 앞, 뒤, 옆 복도를 모두 무대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 때문에 객석의 위치에 따라 특정 장면에서 배우의 연기를 가까이서 볼 수도 저 멀리서 볼 수도 있으며, 배우의 뒷모습만 보게 되는 부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느 좌석에 앉느냐에 따라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자리를 바꾸어 여러 번 관람한다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혜성처럼 빛나는 단 하나의 뮤지컬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혜성처럼 빛나는 단 하나의 뮤지컬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이머시브 공연'의 형태를 택한 '그레이트 코멧'은 관객 참여형 방식으로 진행된다. 배우들은 객석 사이를 오가며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악수를 건네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식의 간단한 액션을 유도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공연 속으로 끌어당긴다. ‘관객과 무대가 하나 되는 공연’을 문자 그대로 실현해 낸 것이다. 여태껏 저 멀리서 지켜만 보던 배우들을 가까이서 마주하고 눈을 맞추며 지척에서 울리는 발소리,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뮤지컬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토끼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굴러떨어진 앨리스가 된 것처럼 놀랍고, 설레고, 두근대는 마음이었다. 새로운 세계,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짜릿한 무언가. '그레이트 코멧'은 관객들이 열광하는 그 어떤 것 즉, 위대한 신세계를 갈망하는 욕구를 완벽히 채운다.

인생은 고통스럽다. 또한 아름답다. 이 돌고 도는 혼돈 속에서 우리는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 부유하는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자유와 사랑으로 가득 찬 우리의 작은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 우주의 혼돈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어두운 혼돈 속을 자유롭게 비행하며 빛을 내는 혜성이 될 수는 있으리라. 인생의 명과 암을 노래하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오는 6월 16일까지 유니버셜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공연과 하나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공연 자체를 200% 즐겨보고 싶다면 '그레이트 코멧'이 선사하는 신비한 선율 속으로 빠져보길 바란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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