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대출 한도 유연화 및 대환대출 예외 허용 등 서민 구제 방안 마련을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현 정부 들어 지난 6월 가계부채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6·27 대출 규제’와 9월 주택 공급 확대 및 대출수요 관리 방안을 담은 ‘9·7 공급대책’에 이어 이재명 정부가 출범 넉 달여 만에 세 번째로 유례없이 강력한 규제를 총동원해 야심 차고 당차게 내놓은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시행한 지 한 달 만에 약발을 다하고 힘이 빠지고 있다. 대책 발표 이후 3주 연속 둔화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 폭이 4주 만에 다시 확대하며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특히 강남 3구와 한강 벨트 일대 아파트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거래량이 급감한 상태에서 소수의 상승 거래가 통계에 영향을 준 측면이 커 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시장의 불안감이 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는 서울 25개 구 전 지역과 경기도 12개 시·구 등 총 37곳을 10월 16일부터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 등 ‘삼중 규제지역’으로 묶어 실거주 목적이 아니면 아파트를 못 사게 하는 이른바 ‘부동산 계엄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초강력 규제를 받았음에도 발표 4주 만에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이 확대하며 시장이 꿈틀대는 것은 정부의 주택 공급 의지에 대한 불신이 쌓여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두려움에 집을 사는 ‘패닉 바잉(Panic buying │ 공포 구매)’을 부추기는 규제 일변 정책과 실질적인 공급대책 부족이 결합한 패착(敗着)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앞서 ‘9·7 공급대책’을 통해 5년간 수도권에서 매년 27만 채를 착공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서울에서 언제 어떻게 공급할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예측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실이 나서 ‘필사적 주택 공급’을 지시하고, 지난 11월 20일 국토교통부가 연내 추가 공급대책 발표를 예고했지만,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규제지역 내 갭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전세 물량이 메마르고 종국엔 전셋값이 급등하는 부작용마저 두드러지고 있다. 더구나 이에 따른 연쇄작용으로 월세 보증금이 치솟고 끝내 전세를 추월하는 기현상까지 목격될 정도다. 매매가격 안정화를 떠나 임차인 주거 부담마저 키우는 상황이 아닌지 우려된다. 흠투성이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보완책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 11월 23일 부동산 중개·분석 업체 ‘집토스’가 국토교통부 자료를 토대로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시행 전후 아파트 전셋값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에 ‘삼중 규제(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를 적용받게 된 서울 21개 구와 경기도 12개 시·구의 평균 가격이 대책 시행 전에 비해 각각 2.8%, 2%씩이나 올랐다. 같은 기간 아파트값 변동률(1.2%)과 비교하면 2배가량이나 비싼 가격이다. 결국 집값보다 전셋값을 더 올린 셈이다.

한편 KB부동산이 집계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도 전월보다 503만 원이나 올랐다고 한다. 1년 전보다 무려 5%나 높은 수준인데, 이는 2022년 11월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하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실거래가 지수 월간 상승률 역대 최고치가 2015년 9월 2.4%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인 급등세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1월 18일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공동주택 매매 실거래가 지수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2.75% 상승해 2021년 1월(3.15%)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실거래가 지수는 동일 단지·동일 주택형의 실제 거래가격 변동을 비교한 수치로, 시장 참가자들의 체감 가격 흐름을 반영한다. 서울에서 인기 지역 아파트값은 꾸준히 오르고, 전셋값과 월세 부담은 커지면서 부동산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투기를 잡기 위해서 각종 대출 창구를 좁혀놨는데, 이 또한 서민 주거 안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규제 칼날은 다주택자가 아닌 세입자들을 겨누는 형국이 된다. 당국은 무주택자들에 대한 대출 통로를 현실화하고, 입주 물량이 얼어붙은 지역에선 공급이 원활해지도록 적극 유도하는 등 임대 시장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서둘러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의 메시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인다. 전세를 끼고 사든 말든 서민들의 ‘내 집’ 장만을 위한 노력을 투기로만 치부해 정부가 통제 일변도의 대응으로 일관하면 시장 안정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이는 서민의 주거 사다리인 전세시장에 더 큰 타격을 준다는 게 문제다. ‘갭(Gap │ 전세를 낀 주택 구입)투자’ 원천 차단 등 각종 규제책은 전세 매물의 급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연초보다 20%가량 줄었다. 집토스 발표에 따르면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시행 전후 한 달을 기준으로 서울의 평균 전셋값은 시행 전보다 2.8%나 뛰어올라 아파트값 상승률 1.2%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결국은 지속적인 공급 메시지를 통해 수요자의 구매 심리를 다독여야 하지만 정부는 이에 소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요자들은 관심 있는 인기 지역에 양질의 민간 주택을 기대했는데 구체적인 공급 지역도 빠진 채 빚투성이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공공 공급에 방점을 찍었다. 번듯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그널(Signal)만 준 셈이다.

정부의 공급대책이 실효성도 없는 숫자 발표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과거의 부실한 공급대책부터 철저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도출해 실효성 있는 공급대책을 강구해 국민에게 보여줘야만 한다. 2020년 국토교통부는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서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경기 과천시 정부 청사 일대 등 20여 개 국·공유지에 2028년까지 주택 3만 3,000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착공은 1,000여 채 남짓에 그쳤다. 특히 1만 채 공급을 예고했던 태릉지구는 주민 반발과 국방부 반대, 문화유산 보존 이슈 등이 얽혀 아예 무산됐다. 공급 의지를 보여준다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발표부터 해버린 게 문제다. 주민 민원, 공공기관 이전 등 예상되는 문제점을 먼저 검토한 후에 대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특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부 부처 내에서조차 사전 조율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傍證)이다. 앞으론 의당 달라져야만 한다. ‘9·7 공급대책’에서 밝힌 노후 공공청사 복합 개발이 속도를 내려면 부처 간 사전 협조부터 확실하게 조율해야만 할 것이다. 주택 규모를 놓고 정부와 서울시 입장이 맞서는 용산 정비창 개발도 협의가 필요하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 11월 19일 “용산국제업무지구 내 주택 공급은 국토교통부, 서울시와 협의해 도출된 확대 방안을 개발계획에 추가로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주택 공급을 위한 협의 채널을 가동하기로 한 건 다행이다. 서울의 주택 공급 문제를 다룰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실장급 실무협의 채널이 본격 가동됐다.

서울시는 지난 11월 21일 국토교통부와 ‘부동산 대책 제1차 실무협의회’를 열어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를 요청하고, 민간 주택 공급 활성화와 실수요자 주거 안정을 위한 제도개선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지난 11월 13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의 회동 후 일주일 만에 이뤄진 첫 실무회의다. 최진석 서울시 주택실장과 김규철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 등이 참석했다. 시장 신뢰의 출발점으로 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유동성 급증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도 병행해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공 공급’은 ‘친서민 정책’이고 ‘민간 공급’은 ‘불로소득 확대’라는 등식의 이념적 사고에서 과감히 벗어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 시장친화적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만 한다. 당연히 공공 공급 외에 민간 재건축·재개발의 속도를 높일 대책도 서둘러 내놔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공급대책이 집값 불안을 잠재우려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통해 ‘이번엔 확실히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기존에 약속했다가 공수표가 되었던 공급 계획부터 재점검해 다시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집값 안정을 위한 어느 정도의 규제는 불가피하겠지만, 실수요자의 과도한 불이익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출 한도를 유연화하고 대환대출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등 서민 구제 방안도 동시에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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