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돼버린 당신이 돌아가고 싶은 시간 '청춘'

   
 

[문화뉴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김필 '청춘'

지금 대한민국은 청춘앓이 중이다. 어디서부터 청춘 신호탄이 터졌는지 생각하면 쉽게는 지난달 대한민국을 울고 웃게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찾을 수 있지만, 생각해보니 어느 시대든 청춘앓이는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청춘이 지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어른의 무게에 짓눌린 어른이 된 사람들이 새로운 시청자가 된 게 아닐까.

텔레비전의 주된 시청자는 중·장년층이라서, 많은 드라마와 방송들이 이들을 타겟팅한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된 텔레비전 시청자층이기 때문에, 스크린에서는 소외당하는 세대였다. 영화는 주로 젊은 층을 타겟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들이 깨지고 있다. 2015년 흥행을 거둔 '국제시장'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중·장년층 영화관객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속도는 비록 20·30세대에 비해 느리지만, 천천히 오랫동안 이들의 열기는 지속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영화관을 찾거나, 나이가 드신 부모님을 대동하는 등 한 명이 다수를 끌어들이는 새로운 유형의 관객으로 떠올랐다.

또한, 그동안 20·30세대를 타겟팅한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빠른 리듬의 액션이나 자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들은 20·30세대들에게도 생각보다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새로운 우리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젊은 층과 중·장년층을 이을 수 있는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바로 '청춘물'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본인들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청춘이 지나, 세월의 흐름 속에 어른이 돼버린 중·장년층들에게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에 관한 이야기라서 청춘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수능, 세월호, N포 세대, 문송합니다, 취업난, 열정페이 등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힘들다. 정년퇴직, 명예퇴직, 비정규직, 가장, 갱년기, 주름살 등 오늘날을 살아가는 또 다른 어른들도 힘들다. 어딘가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사실 가장 간단하다. '응답하라 1988'에서 볼 수 있듯, 가족 간의 사랑, 순수한 친구들 간 우정, 첫사랑과 같은 순수한 사랑, 쌍문동과 같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아닐까.

이 드라마는 힘든 현실을 배경으로 우리가 모두 돌아가고 싶은 공간, 순간들을 다뤘다. 쌍문동이라는 판타지 마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현실에서 결핍된 중요한 가치들이 충족된 공간이었다. 청춘물은 신파적인 요소가 작용해 비판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시간이 그리워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리고, 뽕 맞은 듯한 행복감을 느낀다.

올해 초 우리의 청춘감성을 자극할 두 작품을 소개한다. 이은희 연출의 '순정',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재개봉이다.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영화를 분석하러 온 평론가도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고 기사를 쓰려고 온 기자들도 모두 자신들의 청춘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져 숙연히 극장을 나갔다는 후문이 있다.

   
 
1. '순정'
가장 아팠던 때, 그런데도 가장 빛나던 그래서 미치도록 그리운 그 날 우리에게 오늘은 항상 그런 날이 아닐까요? 내일보다 더 예쁘고, 내일보다 더 어리고 그래서 내일보다 더 용감할 수 있는 오늘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면 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저도 용기를 내서 전하려고요. 그 고마움을, 그 그리움을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보고 싶은 너에게. 23년 전 첫사랑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이 작품은 '홍합'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한창훈 작가가 자신의 단편 '저 먼 과거 속의 소녀'를 모티브로 완성한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실제 여수 출신 작가가 직접 겪은 실화이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에 작가의 진심과 감동이 묻어있다. 영화를 본 후 관객들은 누구나 마음 한편 간직하고 있을 첫사랑의 추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첫사랑을. 순수했던 자신을.

   
 
영화는 EXO의 도경수, 배우 김소현이라는 캐스팅으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캐스팅에 가려진 면들을 언급하려 한다. 두 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연준석, 이다윗, 주다영, 박정민이라는 청춘스타를 충무로가 재미있게 살려냈다. 캐릭터가 매력 있는 영화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옆에 있었던 친구처럼 스크린에서 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러한 캐릭터의 개성은 연출 이은희의 귓속말 연출법 덕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 이은희 감독은 컷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배우들에게 달려가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귓속말로 연기 디렉션을 했고,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살렸다고 한다.

작품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전남 고흥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두원면 대전해수욕장의 해송 숲에서 촬영한 다섯 친구의 갈등장면과 금산면에 있는 섬 계도 역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모두 고향이 있다. 현재 고향에 사는 사람이라도, 예전 쌍문동이 지금 쌍문동이 아닌 것처럼 돌아가고 싶은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커다란 느낌을 준다.

   
 
복고열풍의 힘은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과 패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순정'은 라디오를 통해 옛 기억을 만난다. 라디오만으로도 많은 향수 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로 마음을 전하고, 기다림을 간직했던 세대가 지나 이제는 스마트폰, 카카오톡, 팟캐스트, 텔레비전, 영화 등 세상은 빨라지고 디지털화됐다. 라디오 사연이라는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는 당대 유행했던 대중가요들을 들을 수 있다. 무한궤도의 '여름이야기',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캔자스의 'Dust in the wind', 아하의 'Take on me',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 등의 오래된 음악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진한 여운의 파장을 남긴다.

오는 24일 개봉할 '순정'과 함께 다시 시간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청춘 속 자신과 친구들과 사랑을 다시 만날 기회가 된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2. '영웅본색'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동룡이가 4,720번 봤다는 그 영화이자 드라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영화 '영웅본색'이 18일 응팔 열풍에 응답할 예정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제는 전설이 된 이름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언젠가 같은 삶을 살았던 경험을 가진 형이 마음을 다해서 동생의 어깨를 감싸 안는 위로와도 같은 영화",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이 영화는 386세대 남성들의 '내 인생의 영화'이며 그 주제가는 '내 마음의 BGM'이다. 그리고 그 신화는 지금도 지속한다"고 어른이 된 동룡이들이 이 영화를 동경하며 보던 자신의 청춘을 떠올리며 뜨거운 평을 남겼다.

한때 암흑가를 주름잡는 보스였으나 손 씻고 새 삶을 시작한 자호(적룡), 경찰의 길을 걷는 자호의 동생 아걸(장국영), 자호와 함께 암흑가의 화려한 나날을 보냈으나 몰락한 채, 때를 기다리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소마(주윤발). 세 남자의 뜨거운 이야기가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찾아온다.

   
 
국내에서 1987년 6월 처음 상영된 '영웅본색'은 화양극장, 대지극장, 명보극장에서 상영되었으나, 개봉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재개봉관과 동시 상영관을 돌며 뒤늦게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주윤발과 장국영은 80년대 이후 90년대 초까지 한국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장국영이 착용한 '알랭 들롱'의 선글라스는 홍콩 전역에서 매진사태를 기록했으며, 바바리코트를 입은 채 성냥개비를 물고 쌍권총을 발사하는 주윤발은 과거 수많은 청년이 거울 앞에서 성냥개비를 물어보게 했다. 전국은 바바리코트를 입은 선글라스맨으로 들끓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입었던 철없었지만 순수한 자신과 친구들 간 우정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젊은층에 이 영화는 부모님과 소통할 수 있는 어떤 노력이 될지 모르겠다. 주름살이 끼고,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부모님에게도 20대가 있었다. 오늘날 젊은 친구들이 부모님 세대가 되면 빅뱅, 엑소, 여자친구, 소녀시대를 추억할 것처럼 그리고 순수했던 자신과 사람들을 추억할 것처럼 부모님 역시 자신의 청춘을 기억할 문화가 있다. '영웅본색'이라는 영화 이름은 익히 들어봤어도 집에서 보려고 시도하거나, 정작 영화관에서 볼 기회는 없었다. 이번 기회에 그 시절을 한번 느끼는 타임머신을 타보는 것은 어떨까.

지나면 야속하게 빠른 게 시간이고 세월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계속 힘들다. 그렇기에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하고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주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청춘, 순정, 순수,사랑,우정을 오늘날 다시 가져보는 건 어떠한지.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한없이 소중했던 자신과 오늘도 소중한 당신도 잊지 말고 기억해줬으면 한다.

 

문화뉴스 김진영 기자 cind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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