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강동원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다는 군도를 보러 야심 차게 야심한 시각에 영화관에 갔으나… 강동원의 아름다움을 원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는가 싶게 군도는 이미 매진이었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자니 아쉬운 시간, 생각보다 호평인 신의 한 수를 택했다. 그런데 그 선택이 나에게 진심 신의 한 수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이 대부분 그렇듯이 신의 한 수는 타짜를 생각나게 한다. 화투에서 바둑으로 소재가 바뀌었다는 생각. 화투와 바둑으로 내기를 하고, 또 이기기 위해 첨단기기를 동원하는 것은 공통점이나 화투는 이기기 위해 기술을 쓰고, 바둑은 이기기 위해 머리를 쓴다. 바둑을 잘 알았다면 더 흥미진진했을 영상이었을 것이다. 바둑을 알았다면 그들의 한 수 한 수에 얼마나 짜릿짜릿했을까?

타짜가 고니의 본전 찾기로 시작하여 화투 기술, 돈, 최고에 대한 갖가지 욕망으로 일관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면, 신의 한 수: 사활 편은 초지일관 복수라는 주제하에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타짜와 비슷하면서도 화투에서 사용하는 기술보다는 순수하게 상황판단력과 집중력이 사용되는 바둑이라는 소재가 매력적이었고, 웹툰과 같은 구성과 영화의 구성마다 바둑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내세우며 이야기를 명확하게 해 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만화책을 읽는 것도 같았고, 소설책을 읽는 것도 같았다. 이 모든 구성과 이야기가 순수하게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에 매우 놀랐으나, 사실 구성은 조금 엉성했다. 분명 매력적인 이야기이고, 매력적인 구성이었지만 챕터별로 이어지는 부분이 매끄럽지 못했고, 그 챕터들을 유연하게 연결해주는 전체적인 장치가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었다. 보는 내내 지루한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보고 난 후 몇몇 에피소드나 인물들에 대해서는 공감이나 여운이 없었다.

특히 살수(이범수) 같은 경우 엄청난 악당이라는 기억뿐 아주 매력적으로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감독의 의도는 살수를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편집의 과정에서 잘려나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다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한 것인지 살수는 그 캐릭터가 지닌 매력에 비해 다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컸다.

타짜의 아귀는 분명 잔인하고 냉정하지만 그는 악역이라는 느낌이 없다. 아귀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 행동에 대한 명분이 명확했기 때문에 그 악마성이 명확하게 나쁘다고 구분짓기가 어려웠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반면 살수는 누가 봐도 악역이다. 그러나 살수의 악마성을 움직이게 하는 명백한 삶의 논리가 있을 것이다. 신의 한 수는 살수가 행하는 악한 행동들은 명확하게 보여주었으나 살수 행동의 저변에 깔려있는 명백한 삶의 논리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귀 이상의 매력으로 우리에게 오래 남을 수 있는 살수가 묻혀버렸고,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흑돌 태석(정우성)과 배꼽(이시영)의 로맨스가 아쉬웠다. 더 전개되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둘의 로맨스는 사족의 느낌이다. 범죄, 액션물에서 로맨스가 빠지면 아쉽기도 하다. 그런데 태석과 배꼽의 로맨스는 아쉬워서 넣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그 로맨스가 아니었으면 마지막에 태석이 살수와 몸으로 결전을 벌일 수 없었겠지만 태석과 배꼽의 로맨스는 사실 영화의 끝 장면만 보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듯한 것이다.

물론 이번에 개봉한 신의 한 수가 마지막에 부산으로 가자. 라는 대사를 남기고 사활편이라는 크레딧이 뜨면서 이 후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혹여 사활 편 이 후 속편이 나오면 이 아쉬웠던 구성이 맞아떨어지면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의 한 수는 복수라는 명확한 주제하에서 이야기가 일관되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끌어갔다는 측면에서 매우 즐거운 영화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우성이 주님(안성기)의 칼을 사용하면서 형에 대한 복수는 물론 주님에 대한 복수도 함께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면서 신의 한 수가 명백한 복수극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또한, 바둑판 위의 바둑돌처럼 의도적으로 정우성에게는 흰색 옷을 그리고 살수 편들에게는 검은색 옷을 입힘으로써 선과 악의 대결을 명확하게 색깔로 보여준 마지막 격투 신도 매우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범죄극이라고 하면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이 늘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나리오도, 또 전체적인 구성도 매우 재미있었고 마지막 장면까지도 꽤 통쾌했었다. 그래서인지 신의 한 수의 결말은 나에게 크게 통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 정도의 결말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결말에서 태석이 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주님의 죽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활 편 이후의 속편을 준비해야 해서 일까 태석은 살아났고, 신의 한 수의 결말은 꽤나 평범했다. 철저하게 복수극이었던 신의 한 수: 사활 편이 혹시 부산으로 장소를 옮겨 속편을 찍게 된다면, 이제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게 될까? 복수가 아닌 이상 내기 바둑을 소재로 했다면 이 후 속편은 진정으로 타짜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특히 올해 타짜2가 개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범구 감독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지 궁금하다. 속편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신의 한 수는 소재의 측면에서나 구성의 측면에서나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매우 재미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주님은 묻는다.
'망가진 삶을 역전 시킬 수 있는… 우리 인생에도 신의 한 수가 있을까?'

사실 영화에서는 결정적인 신의 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태석에게도 태석의 형에게도 살수에게도 배꼽에게도.. 그 누구에도 인생을 뒤집을만한 신의 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인생을 뒤집는다는 측면에서 태석에게는 형의 죽음이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의 한 수가 주님이 말한 것처럼 망가진 삶을 역전 시키는 것이라면 영화 내에는 신의 한 수가 전혀 없다. 다만 모든 캐릭터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감독은 어떤 지점에서 어떤 의미의 신의 한 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신의 한 수는 그 치열함일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삶을 역전 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치열함이 아닐까 싶다. 즉, 그 치열함 그 자체가 신의 한 수 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나에게 신의 한 수였던 것처럼, 오늘의 신의 한 수, 그리고 내 인생의 신의 한 수는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

 

[글] 아띠에떠 해랑 artietor@mhns.co.kr

팝 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언제 또 다른 종목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는지.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한 인간.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여자'.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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