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우리나라의 음악애호가들에게는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보이는 선입견이 있다. 그것은 몇몇 대가들을 제외한 대다수 우리나라의 연주자들의 공연은 실망을 준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 그 실망감을 오랫동안 느껴온 터라 국내 연주자들의 공연은 기대하지 않고 인사 치례나 호기심으로 참석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그러한 선입견을 바꾸는 좋은 공연이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열리고 있다. 출강과 입시생 지도보다 연주활동에 더욱 집중하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음악가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지난 8월 19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다니엘 전 바이올린 독주회는 국내 연주자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좋은 연주였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전은 '향수(Nostalgia/鄕愁)'로 제목을 달고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타향생활을 했던 작곡가들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드보르작, 그리그, 프로코피에프, 비에냐프스키를 연주하였는데, 드보르작 B flat 장조, 그리그 C 단조, 프로코피에프 D 장조, 비에냐프스키 E 단조로 이어지는 B(시)-C(도)-D(레)-E(미)의 프로그램 구성은 연주내내 흥미롭게 펼쳐질 조성을 예고하고 있어 공연에 대한 색다른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첫 곡으로 연주한 드보르작의 네 개의 낭만적 소품(Four Romantic Pieces for Violin and Piano Op.75)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마치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찬 곡이다. 조금 수줍게 연주를 시작한 다니엘 전은 모든 악장마다 서로 다른 감정의 세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희로애락(喜怒哀楽)으로 한 악장씩 나누어 표현하였다고 한다면 희(喜)-노(怒)-락(楽)-애(哀)의 순서로 수줍게 설레이는 기쁨으로부터, 2악장의 격정적이고 노여운 듯한 코드, 3악장의 참지 못하고 뛰는 듯한 기쁨,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 슬픔(哀)에 잠긴 사랑(愛)을 이야기 하는 음유시인이 된 듯 했다.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작곡가로서 몇몇 음악학자들은 그가 교향곡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그의 작곡 기법의 미숙함이나 유럽 변방의 작곡가로서 그가 느꼈을 열등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페르귄트 모음곡을 사랑하는 음악애호가들이라면 백야나 오로라와 같은 아마도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노르웨이의 자연과 색깔이 교향곡이라는 그릇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리그의 음악은 변화무쌍한 오로라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멜로디와 불협 직전의 화음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곡에서는 피아니스트 황소원을 함께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그는 이 곡에서 각 주제의 동기뿐만 아니라 발전부의 전개를 위해서도 멜로디와 멜로디의 단편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멜로디의 요소들은 끊임없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오가며 곡을 전개시키는데 다니엘 전과 황소원은 섬세한 바이올린의 선율과 굵고 우아한 피아노의 대화로 마치 두 악기로 이루어진 연극을 보는 듯한 깊이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황소원의 감정 분출과 절제의 드라마틱한 조합이 그리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들리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베토벤의 음악에서 당시의 경험론과 합리론의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러시아혁명을 겪으며 작곡을 했던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에서 변증법적 사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에 도전하는 연주자들에게는 각 주제뿐만 아니라 논리와 감정의 변증법적 정반합을 이루어내는 것이 큰 어려움으로 존재한다. 프로코피에프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현란한 스케일을 통해 조성으로부터 무조를 이끌어 내며 이 둘의 논리적 통일성뿐만 아니라 멜로디의 깊은 감정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많은 숙제를 담아 놓았다. 이 때문에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스케일에서 방향성을 잃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미로의 음악이 되기 쉬운 작품이다.
 
다니엘 전은 이 미로 속에서 항상 청중들을 제자리로 다시 돌려 놓았는데, 그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까닭은 수 많은 까다로운 스케일을 정확하고 빈틈없이 그러나 롤러코스터처럼 안정된 궤도 안에서 정반합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안정된 테크닉을 마음껏 발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격렬한 스케일 사이사이의 멜로디들이 더욱 풍부한 감정을 품고 청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연주였다. 피아니스트 황소원이 다니엘 전과 이루어낸 완벽한 밸런스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비에냐프스키가 더욱 편안하게 들렸던 것은 이렇게 프로코피에프에 대한 청중으로서의 부담감을 말끔히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 전은 독특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독일, 영국,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귀국하기 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수 많은 리사이틀,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 실내악, 출강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거치며 오랜 시간 숙성된 음악가라는 것이다. 큰 기대 없이 참석했던 음악회였지만 앞으로 수 년 내에 한국에서 크게 주목 받으며 활동을 이어갈 좋은 바이올린 연주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으며, 앞으로 음악애호가들의 한국 연주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이렇게 바꾸어주는 좋은 연주자들이 계속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글] 음악칼럼니스트 정담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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