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괴벨스극장' 리뷰

   
 

[문화뉴스] 히틀러는 과연 억압과 독재의 상징이기만 했을까? 그의 엄청난 권력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히틀러는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 그리고 사회주의 확산에 대해 공포로 떨고 있던 20세기 독일의 시공성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한 강력한 지도자였다. 제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상실된 독일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혹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조국을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기타 등등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다수의 독일인들은 나치즘에 열광했다.

혹자는 말했다. 파시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세계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한 시공간으로 기록할 수 있게 만들었던 파시즘 이데올로기는 독일의 나치즘 뿐 아니라 비슷한 형상으로 다른 나라에 등장했다.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맹신하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를 침략하던 무솔리니의 파시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 등이 바로 그것이다.

 

   
 

괴벨스는 나치 독일에서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의 자리에 앉아 나치의 선전과 미화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독일의 보도와 예술을 지배해 나치즘을 효과적으로 선전하곤 했는데, 아직도 그의 선전 방식은 많은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뛰어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그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며, 따라서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던 괴벨스. 그는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굽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는 차별의 당사자로 자랐고, 결국에는 차별을 주도하는 주체가 됐다. 어째서일까?

 

   
 

그는 한 명의 절대자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만들어 내고, 그 기준에 의해 다수의 민중을 지배할 수 있는 파시즘적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부모가, 병원이, 사회가 만들어낸 자신의 장애가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절대적이고 폭력적인 개념으로 치환돼, 자신은 온갖 박해와 모욕을 당해도 되는 죄인이 될 수 있음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말이다. 연극에 의하면 '다름'으로 차별받던 괴벨스는, 히틀러와 함께 또 '다름'의 기준을 만들어 새로운 차별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로 분한 배우 박완규는 광기 어린 눈빛과 무구한 목소리를 결합해 아이러니한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그는 나치즘에 심취한 광적인 괴벨스, 그리고 경험하며 배운 원리를 그대로 실천할 뿐이었던 괴벨스의 모습 두 가지를 동시에 드러냈다. 괴벨스가 살았던 시공간에서 괴벨스가 발견한 원리는 절대적이며,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그저 비슷한 결의 패러다임에 새로운 주체와 대상물들을 대입시켰을 뿐인 것이다.

 

   
 

한편, 연극 '괴벨스극장'은 '권리장전 2016 - 검열각하'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극단 파수꾼의 앵콜 연극이다. 이 프로젝트는 연극계에 일고 있는 검열 사태에 맞서는 젊은 연극인들의 솔직하면서도 과감한 발언 창구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작년 한국 예술계에 들이닥친 '검열' 이슈에 연극인들이 직접 나서서 연극인들의 릴레이 발언대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단 파수꾼은 왜 지금 '괴벨스'의 극장을 '검열'이라는 이슈와 연관시키고 있을까? 괴벨스는 검열의 주체였다. 언론을 장악하고 예술을 탄압했던 선전의 귀재 괴벨스. 그는 대중들에게 더욱 분노하라고 말한다. 분노로 마비된 이성, 선전으로 다져진 폭력성은 괴벨스와 히틀러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극 말미에 괴벨스는 외친다. "너희들이 계속 방관자로 남는다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작년 한 해 연극계를 뒤집어놓은 '검열'이라는 이슈. 결국 제 2의 히틀러와 괴벨스는 언제고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짓누르는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개인이 개별적 존재일 수 있으며, 개인의 사유가 선전에 휘둘리지 않는 온전한 것일 수 있다면 괴벨스와 히틀러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연극계에 닥친 '검열'이라는 단어가 결코 연극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사회 전반을 삼키려는 거대한 권력의 실마리일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극단 파수꾼은 '괴벨스'의 극장을 다시 한 번 조명하기 원했던 것은 아닐까?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극단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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