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미국의 어느 소도시에서 시장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극 중 소문난 바람둥이를 연기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플레이보이 기질을 꺼낸 배우 김태훈을 이 연극의 막이 올라가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올 하반기에만 무려 세 작품의 연극 무대에 오르는 김태훈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무대의 관객과 강의실의 제자를 향해 무한한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김태훈이 이번에 출연하는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1972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며 뉴욕드라마비평가상, 토니상 베스트상, 퓰리처상을 받은 역작이다. 

(작품소개) ▶승리를 갈구하는 남자들의 거친 세계…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작품설명) ▶ 타락한 '성공 윤리'에 대한 연극의 일침…'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인터뷰 후 김태훈의 '명품연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낮은 목소리와 신사적인 모습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때와는 180도 다른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종일관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상대 배역을 향해 친근감 있게 욕을 쏟아내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방금 인터뷰하고 온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의 뛰어난 연기는 7일부터 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곤의 선물' 연극을 마친 후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새로운 작품에 나섰다. 새 작품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 같다.
ㄴ 한 작품을 농익게 하려면 두 달 이상 연습해야 하는데, '고곤의 선물' 공연이 올라가면서 동시에 연습을 시작했다. (편집자 주 : '고곤의 선물'은 9월 18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렸다.) 지난여름에 이 작품을 만나서 배우들과 같이 리딩을 하고 각자의 작품들을 했고, 두 달 정도 연습을 했다. 늘 그랬듯이 최선을 다했다.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에 나온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ㄴ 개인적으로 연출하신 채승훈 선생님을 어렸을 때 만났었다. 연극계에서 유명한 분이자 선배이시다. 어렸을 때 그분이 한창 젊음으로 혈기왕성하셨을 때 선생님 작품의 조명 오퍼레이터 등의 일을 한 바 있었다. 그래서 한 번쯤 작품을 같이하고 싶었었다. 올 상반기에 선생님께서 "가을에 뭐 해"라고 말씀하셔서 이 작품을 하게 됐다. 또 '국립극단'이 우리나라 연극 쪽에서는 국가대표라고 생각한다. 과거 강사로 '국립극단'에 온 적도 있었고, 연출부 같은 다른 일도 했지만, 배우로 참여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꼭 한번 하고 싶었다. 게다가 작품과 맡은 역할이 상당히 재밌다.

그 재밌다는 배역인 '필 로마노'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온 이탈리아 출신의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해서 굉장히 부자인 재벌의 2세다. 그러다 보니 사업과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수완이 대단하지만, 그의 삶은 무료하다. 그래서 그것이 음주 가무로 이어지고, 차도 다섯 대 정도 있고, 여자도 늘 네다섯 명을 만날 정도로 플레이보이 기질도 있으면서, 야비하지만, 가슴 저편에는 순수함이 있는 남자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들이 '고곤의 선물', '에쿠우스' 같은 작품들처럼 조금 진지한 배역이었다. 이번 역할이 굉장히 나의 다른 면을 좀 꺼내볼 수 있는 역할이어서 꼭 참여하고 싶었다.

작품과 대본을 접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것 같다.
ㄴ 작품을 접하면서 남자 다섯 명이 나오는 이야기이고, 여자 한 명 안 나오니 "관객들이 이게 재밌을까?"라고 배우들끼리도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왜냐면 "남자들끼리는 술을 먹어도 건조하니까" 이게 재밌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남자들의 거침, 계략과 자신의 이기주의, 정치적 대립, 적대적 관계 설정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찐한 감동의 이야기까지 대본을 읽으면서 느껴졌다. 사실 이 연극이 소극장 컨셉의 대본이었는데, 연출가 선생님이 상당히 대극장 식으로 상당히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어져서 재밌게 준비한 것 같다.
 

   
▲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고등학교 시절 우승의 영광을 함께 누렸던 중년의 농구부원들과 코치의 이야기다. 왼쪽부터 박완규, 김태훈, 박용수, 김동완, 이종무 ⓒ 국립극단

이 작품의 관람 연령이 '놀랍게도' 성인 대상이다.
ㄴ 많은 사람이 "남자만 다섯 명이 나오는데 왜 '19금'이냐. 여자가 나와서 노출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남자들이 노출하는 것도 아닌데" 등의 이야기를 건네왔다. 사실 그런 노출 장면은 이 작품에 없다. 배우이기도 하고 교수이기도 하지만, 일반 사람으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술 한 잔 마시면 상당히 말이 걸걸해질 때가 많다. 이 작품에선 고등학교 때 같이 농구를 했던 친구들이라 시간이 흘러서 만나는 시점이라 욕도 많고, 여자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수위가 높고, 불륜 관계 이야기도 나온다. 어찌 보면 TV나 영화에 비하면 이 정도 이야기를 가지고 '19금'을 할 필요는 없는데, 연극은 아무래도 관객에게 바로 라이브로 전달하는 것이므로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들이 상대적으로 셀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 같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다른 작품의 배역을 참고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ㄴ 역할 창조를 할 때, 주변을 관찰을 보통 하는 편이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같은 막연한 허망함, 영화 '자이언트'의 제임스 딘이 보여주는 인생의 무상함, 그러나 겉으로는 화려함을 조금씩은 참조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배역에서 모든 것을 가져오진 않았다. 옛 노래 중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구절이 있듯이(편집자 주 :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가사),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기 내면의 선함, 악함, 비겁, 질투 등 모든 면이 있다. 단지, 어떤 면이 더욱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이 되는 것 같다. 또한,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비율이 조율되는 것 같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작품을 준비할 때 내 안에 있는 그런 면들을 꺼내보려고 했다. 내 안에 있는 플레이보이 기질, 날라리 기질, 비겁한 기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배신을 할 수 있는 모습이 내 안에 있을 거로 생각했다. 평소에는 교수와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혹 나와도 자제하고, 절제하고, 인격적인 소양체로 활동하려 했다면 이번 작품엔 그것들을 꺼내봤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연기까지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ㄴ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많이 받는 질문이다. 특히 올해는 하반기에만 세 작품을 한다. '고곤의 선물',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그리고 12월에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를 한다.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소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물론 완급 조절을 하지만, 아무튼 늘 그런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강의실은 현장처럼, 현장은 강의실처럼".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우리나라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이쪽 연극, 영화, 방송은 정말 학생들이 학교에서 옛것을 배우면 현장에서는 적응할 수 없다. 근본 원리는 변하지 않지만 표현하는 방법은 매체가 바뀌거나 무대의 컨셉이 바뀌면서 변해간다.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고 낡은 것만 가르치면 학생들이 나와서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현장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매너리즘을 느낄 때도 있다. "오늘 대충 공연하지. 몸도 피곤한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럴 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연극을 처음 했을 때의 설렘을 느껴보자"를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늘 생각한다. 우리 팀에도 보면 강의를 하는 배우들이 많다. 다들 연습을 할 때 되면 강의를 하느라 녹초가 되어서 오는 경우를 본다. 그때 "심장을 하나 떼어 주고 와라. 그러지 않으면 제자들에게 사기 쳐 온 거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웃음)

끝으로 제자와 문화뉴스 독자를 비롯한 관객에게 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것을 느꼈으면 하는지. 
ㄴ 먼저 이번 작품의 번역자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인 김윤철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이 예술감독이 되셔서 가장 아끼는 작품을 직접 번역해서 내놓은 것이니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먼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봤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의 타이틀이 '자기응시'다. (편집자 주 : '국립극단'의 가을마당을 아우르는 주제로 한국 근대희곡, 세계 명작, 해외 고전 등에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직시하고자 했다) 관객들이 자기 자신, 우리의 삶, 우리의 사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이 작품을 통해서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성공이라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남자들의 거칠고, 걸쭉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딱딱할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히 재밌다. 농담도 많아서 재밌는 장면에선 맘껏 웃으면서 즐겼으면 좋겠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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