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변화한 게 없는 이 시점에 본지에선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라는 섹션을 연재한다. 매일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듣는 자유 발언대를 마련했다. 그 자유발언의 분량과 형태는 자유롭게 이어질 예정이다.


스물네 번째 순서는 백승기 영화감독이다.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등을 연출한 그는 독립영화계에서 독특한 패러디 영화를 만들어 화제가 됐다. 백승기 감독은 최근 예술가 검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일련의 사건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맞서기 위해 7,449명의 문화예술인과 289개 문화예술단체가 참여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다'에 서명했다.
 
이번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에 서명한 계기를 들려 달라.
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화제로 떠오르며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시절이 좋아지고 있다는 긍정의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리스트의 존재 자체야 대부분 예측했던 거고, 이렇게 밝혀지고 가시화되는 거 자체가 크게 보면 진일보의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괜찮다. 어차피 나도 내 나름의 '정치계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아마 다들 가지고 있지 않은가? 서로 사는 '계(界)'도 다른데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닌 것 같다.
 
요즘 주변의 예술인 친구들 반응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가 있다. 명단에 이름이 있는 친구들은 어깨가 승천하고, 없는 친구들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 '내가 뭘 잘 못 해서 이름이 없냐?'는 식의 반응이다. 리스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없는 게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사실 나도 좀 서운했던 게 언론에서 발표한 맨 첫 번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없었다. 대학 합격자 명단을 살펴볼 때처럼 숨죽이고 마음 졸이며 찾아봤는데 없었다. 여기저기 서명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없었다. '내가 이러려고 없는 살림에 열심히 영화 만들었나?'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사실 별로 신경 안 써도 되는 명단인데 막상 없으니 좀 많이 서운했다.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내가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정치계 블랙리스트'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적 이해나 소양이 나와 아주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들과 정치적 이해나 입장이 많이 달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더 열심히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더 열심히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최근에 본 시국선언들은 보이는 족족 다 서명하고 있다. 더 열심히 '노오력'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계에서까지 인정받는 저명한 아티스트로 거듭날 수 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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