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최근 연극계에 가장 열정적인 배우를 뽑자면, 단연 김태훈을 선택할 수 있다.

올해 하반기에만 '고곤의 선물'에서 '에드워즈'에 이어,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에선 플레이보이 기질을 지닌 '필 로마노' 역할을 성공적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지난 2일 창조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연기 세계를 구축한 배우에게 주는 상인 '제15회 김동훈 연극상' 수상자로 당당히 선정됐다. 그가 지난 5일부터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로 다시 무대에 섰다. 이 작품은 지난해 토니상 최고 작품상, 뉴욕 연극비평가협회 최고 작품상 등 8개의 시상식에서 총 9개의 상을 거머쥐고 브로드웨이를 휩쓴 연극이다.

이번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 국내 초연에서 김태훈은 세계적인 섹시 스타이자 동생인 '마샤'의 집에 살며, 삶의 의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하고 냉소적인 중년 '바냐' 역할을 맡았다. 그를 첫 공연인 프레스콜을 앞둔 5일 정오 무렵에 만나 '제15회 김동훈 연극상' 수상 소감과 이번 작품에 출연한 계기를 들어봤다.

   
 

최근 여러 곳에서 축하를 받았을 것 같다. '제15회 김동훈 연극상' 수상 소감을 부탁한다.
ㄴ 과분하게 상을 받아 여러 곳에서 축하를 받았다. 이 상은 영화, 방송 등을 하시기도 했지만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연극계에서 김동훈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특히 그 해 한 명만 받는 상인데, 한 해는 남자, 한 해는 여자가 번갈아 받기 때문에, 더욱 수상하기가 힘들다. 근래 3~4년 좋은 작품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받지 않았나 싶고, 그 작품을 하게 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올해가 마흔아홉인데, 40대 초반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었다. 굉장히 시리고, 아프고, 괴롭고, 그리운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런 점을 이겨내려고 작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을 받은 것 같다. 내년에 50대가 되면서 이제는 아내를 가슴 속에서 편하게 놔줄 수 있을 것 같다. 22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연극인의 밤' 행사 중에 시상식을 하는데 수상 소감을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연극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는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달라.
ㄴ 작년 미국에서 토니상을 받은 작품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가 안톤 체홉의 작품 캐릭터와 작품의 대사들을 현대적으로 쓴 것을 올리는 것 같다. 체홉 작품의 특징은 한강 위의 흘러가는 유람선 같다. 잔잔하지만 그 밑에는 엄청나게 큰 물살이 용솟음치면서 흘러가듯이, 현대의 삶이 다변화되고, 말도 안 되는 사고들이 극단적으로 일어나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평화로운 척 해야 하는 삶을 반영하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은 크리스토퍼 듀랑이 체홉의 작품에 나오는 '바냐', '소냐', '마샤', '니나'라는 캐릭터를 조합해서 현대적으로 쓴 작품이다. 체홉의 작품처럼 엄청난 삶의 깊이를 꿰뚫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적 해석으로 체홉의 '오소독스(Orthodox, 정통의)'한 유머, 코미디적 상황을 잘 그려냈다. 그것을 통해서 인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세대 간의 갈등을 잘 담아냈다. 예를 들면, '스파이크'라는 인물이 공연 중에 문자를 하고, 카톡을 하고, 페이스북을 하는 장면을 보고 '바냐'가 "옛날 것이 그립다. 옛날에는 전화를 동그란 구멍에 검지를 넣어 돌려서 걸었다. 우표를 혀로 침을 묻혀서 봉투에 붙인 후에 우체통에 넣어서 편지를 보냈다. 지금은 다 이메일이나 SNS를 하지만 그런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것인가. 지금은 다 같이 공유할 추억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런 장면이 현재 우리나라에 참 시의적절한 것 같다. 연말에 가족들과 다 같이 보면서 웃고,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되새겨보면 좋을 것 같다. 부모와 자식 간에 존재하는 세대차이를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연극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에 출연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ㄴ 작품이 워낙 좋기도 하거니와, 게이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이 상업극으로 엄청나게 관객들을 많이 이끌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은 오랫동안 레퍼토리로 남았으면 싶다. 연극열전에서 이 작품을 준비하는데, 연극계에서 연극열전이라는 회사가 "너무 상업극을 하는 게 아닌가"라고 얘기도 하고 있지만, 내부에 와서 보니까 제작 여건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었고, 이런 작품을 선택해서 한국 초연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 참 대단했다. 혹여나 이번에 관객 흥행이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레퍼토리는 계속 한국에서 명품 연극처럼 계속되었으면 한다. 저도 감사하게 이번 작품 캐스팅 제의가 와서 참가하게 됐다. 그래서 이 작품을 가져온 연극열전의 허지혜 대표, 그리고 이 작품을 연출한 오경택 연출과 스태프 팀이 같이 만나 함께 이런 작품에 초연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큰 의미가 있다. 여기에 서이숙 배우, 황정민 배우 등 좋은 분들과 같이 초연할 수 있어서 기뻤다.

하반기에 쉴 새 없이 연극 무대에 섰다. 동시에 여러 작품을 계속 하다 보면 작품 주인공 몰입이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런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으면 알려달라.
ㄴ 스타니슬랍스키라는 세계적인 연기 예술의 아버지가 연기 학문 쪽으로 기술한 부분을 보면, '배우의 성소', '배우의 화장실'이라는 것이 있다. 배우는 계속해서 다른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전 작품에 있는 정체성이나 움직임, 몸짓, 화술 등 여러 모습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배우 김태훈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역할에서 수행성에 대한 것은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고곤의 선물'을 지난 10월에 끝내고, 바로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에서 이탈리아계 날라리로 바로 출연을 했었다. 이번에 맡은 '바냐'는 50대 후반의 무기력하고, 지식인이고, 게이 역할이다. 전에 연기한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의 '필 로마노' 역은 굉장히 활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다면, 이번엔 허무하고 움직임도 적은 인물이다.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가 욕이 많았다면, 이번 캐릭터는 고급스러운 어휘를 많이 사용해 지적인 향유를 하려고 하는 인물이다. 새롭게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는데, 이것이 잘 되었는지 객석에서 판단해 주실 거라 믿는다. 공연을 계속하다 보니 이젠 제 작품을 지켜봐 주시는 고정 팬분들이 계신다. 어떤 부분은 질타해 주시고, 또 어떤 부분은 칭찬해 주시는데 그런 분들에게 새로운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다사다난한 2014년을 뒤로하고, 다가오는 2015년의 목표가 있을 것 같다.
ㄴ 몇몇 연극 작품에 대한 생각도 있고, 영화, 드라마에 대한 생각도 있는데, 아직은 무대에 애착이 많아서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어떤 인터뷰를 하면서 "희망이 뭐냐?"라고 물어본 분이 있었다. 가만히 보니 "내가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이야기할 때는 멋있는 희망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정말 진실한 나의 마음속 희망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래서 정말 절실한 희망을 생각해봤다. 지금 아이가 셋이고 큰 아이는 군대에 간 상황인데, 이 아이들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줬음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인 희망이라면 이제는 인생의 큰 우여곡절을 안 겪고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굉장히 특별하고, 특이하고, 뭔가 다른 삶을 살길 바랐던 것 같다. 이제 50을 시작하게 되는 상황의 희망이라면, 평범하고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 없는 것 같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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