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포토타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나는 3.11 동일본 대지진만을 모토로 하여 관련된 직접적인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여러 가지 형태의 재난과 이별, 아픔을 보편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지난달 개봉해 국내에서 300만 관객을 동원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성공한 이유는 팬들의 지지도 있었지만, 일본의 동일본 대지진과 한국의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공통으로 발생한 정서가 연결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여기 새로운 일본 영화가 한국 관객을 찾는다. 갑작스럽게 사고로 아내 '나츠코'(후카츠 에리)를 잃은 남자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가 상실과 사랑 그리고 성장을 하는 내용을 다룬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아주 긴 변명'이다. '사치오'는 '나츠코'와 함께 여행을 간 친구의 남편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를 만난다. '요이치'는 두 아이 '신페이'(후지타 켄신), '아카리'(시라토리 타마키)를 혼자 키우는데, '사치오'는 마음에 끌려 두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이야기한다.
 
16일 개봉을 앞두고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내한 기자간담회가 1일 오후 서울시 중구 퇴계로에 있는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렸다. 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이 가진 의미와 설정, 그리고 촬영 에피소드 등을 살펴본다.
 
* 이 기사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에 온 소감을 전해 달라.
ㄴ 영화 '아주 긴 변명'은 데뷔 이후 장편으로는 5번째 작품이며, 한국에서는 '우리 의사 선생님' 이후로 2번째로 개봉하게 된 영화다. 일본영화가 한국에 개봉되는 건 어려운 일인데 영화 '아주 긴 변명'이 개봉하게 되어 기쁘다.

'아주 긴 변명'은 2015년 출간된 감독 본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설을 썼을 때와 영화를 연출했을 때 느꼈던 달랐던 점이 있다면?
ㄴ 일단 영화와 달리 소설의 최대 장점은 사람과 돈이 들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영화에서 작업을 처음 시작했는데, 영화를 찍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 몇백만 원이 든다. 이를 효율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시간, 제작비와의 싸움을 해왔다.
 
반면 소설은 영화와 달리 러닝타임에 관한 시간제한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아주 긴 변명' 이전의 4개의 장편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을 먼저 했으며 이야기를 연결할 때 '2시간 내외'라는 시간제한을 두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썼다.
 
이번 영화에서 그리지 못했지만, 등장인물의 내면, 흘러넘치는 각 인물의 배경, 감정 등을 소설 속에서 먼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설정이나 감정을 더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인물과 이야기의 전개가 자유롭다. 특히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데 소설 속에선 자유롭게 움직여주는 것이 좋았다. (웃음)
 
   
 
영화 내에서 '사치오'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티끌만큼도'라는 아내의 메시지를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는가?
ㄴ 다른 곳에서도 "그게 정말 부인의 진심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게 꼭 '나츠코'의 진심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사람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가진다. '나츠코'도 어쩌면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나서 욱하는 감정에 문자를 썼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츠코'도 '그건 내 진심이 아니었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츠코'는 죽음으로 인해 만날 수 없기에 변명할 기회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을 때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제대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영화 속 주인공 '사치오'는 가장 안 좋은 관계와 최악의 타이밍 속에서 부인을 잃고,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관계인 아이들을 만나며 잃었던 인간성을 찾아간다. 나는 이런 '사치오'를 통해 '자신 스스로가 인간성을 회복했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벽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이에 절망하면서도 그 벽을 넘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과정'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은 그렇게 간단히 쉽게 변하거나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에서 지진에 집이 흔들려 '사치오'가 아이들을 보호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많이 연출됐다. 이 작품에서 동일본 대지진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ㄴ 일단 이 작품을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2011년도 연말쯤이었고, 그해 3월에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이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영화인으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고, 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 현장에 가서 카메라에 현장을 담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 시기쯤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고 있었다. 이를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했을 때 마지막 기억이 나쁘거나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 아픈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11 재난만을 모토로 하여 관련된 직접적인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여러 가지 형태의 재난과 이별, 아픔을 보편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사치오'가 머리를 깎는 장면이 등장한다. 머리를 깎는 장면의 의미는?
ㄴ 재난이 일어나고 난 뒤의 삶, 상실 이후의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테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긴 인생을 표현할 때 어떤 설정이 좋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등장인물이 열심히 일하는 미용사 아내를 둔 주목받는 소설가였다. 이 소설가는 아내한테만 머리를 자르게 한다.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인생이 길게 이어진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으며, 이 부분은 모토키 마사히로 배우와 이야기하며 잡은 설정이었다. 극 중 아내에게만 머리를 맡기던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맡기는 것을 통해 주인공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의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한다. 배우들의 연기 지도를 할 때 염두 했던 것이 있다면?
ㄴ 한국에서 '굿바이'라는 작품으로 얼굴을 알린 '사치오' 역의 모토키 마사히로 배우가 한 번도 연기해본 적 없는 상황이나 역할을 연기하게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조화로운 삶에서 자신을 깨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어 그런 부분에 대한 연기 연출을 했다.
 
모토키 배우는 완벽해 보여도 자신감도 없고 변명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이치' 역의 타케하라 피스톨 배우나 아이들처럼 꾸밈없이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당황해했다. 오히려 모토키는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나, 타케하라 배우보다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인물이었다. (웃음)
 
모토키는 완벽해 보이지만 엉뚱하고 흘리는 것도 많고, 자신 내면의 약점을 주변에 내비치는 '사치오' 역을 맡았고, 이를 위해 온몸을 던져 연기했다. 나는 처음에 모토키 배우에게 원작을 신경 쓰지 말고 모토키 배우만의 '사치오'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불안감 때문인지 모토키 배우는 원작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서, 시나리오에서 정말 중요한 대사와 원작의 대사를 혼동하여 대사를 못 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 부분들이 일상에서의 싸움이었다. (웃음)
 
   
 
 
아이들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카리' 역의 시라토리 타마키는 이 영화가 첫 작품이다. 아이들이 연기에 경험이 별로 없던데, 아역 배우들과의 작업이 어땠는가?
ㄴ 나도 아이들 연기지도가 처음이라 아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잘 훈련된 아역보다는 아이다움의 생생함을 표현하고 싶어 이 아이들을 캐스팅했는데 그것이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정말 어렵다. (웃음)
 
아침에는 기분 좋아서 방방 뛰어다니던 아이가 카메라를 준비하고 촬영을 들어가려 하면 오빠와 싸워서 기분이 안 좋아 촬영을 못 하겠다고 하는 등의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다. 내 스승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은 아이들 연기 지도에 훌륭하신데 그래서 감독님께 아이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방법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고레에다 감독님이 "사전에 대본을 주지 않고, 현장 당일 촬영장에서 대본과 지시를 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나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걸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고레에다 감독님의 방법을 써봤다. 
 
그렇다고 남이 하는 거 따라간다고 해서 잘되진 않더라. 촬영 당일에 현장에서 대사를 알려준다 해도 아이들이 잘 외우지 못하더라(웃음). 아역, 어른 배우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기에 어떤 방법의 연출이 있다기보다 배우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 아역배우 나름대로 영화현장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감정을 폭발하는 힘든 씬이 있었는데 그럴 때는 아버지 역의 배우를 불러 몇 번의 리허설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이다.
 
아이들과 같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동안의 하지 못했던 공부가 많이 되었다. 연기를 잘했던 배우와 작업했다면 얻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봄, 여름에 걸쳐 촬영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가 키가 자라있었고, 그런 성장을 보며 스태프들과 함께 기뻐했다. 아이가 어떤 일에 화가 나면 누군가가 아이들을 달래주기도 했다.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촬영을 마쳤다.
 
   
▲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극 중에 '사치오' 스스로는 자존감이 바닥이라고 말했고, '사치오'의 애인인 '치히로'는 '사치오'에게 자의식 과잉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사치오'는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ㄴ '사치오'는 낮은 자존심과 자의식 과잉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인물이다. 소설가인 '사치오'는 만들어내고 쓰는 사람으로, 나의 개인성향도 많이 포함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작품을 만들고 독자나 카메라 앞에서 주목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스스로한테 자신감이 없는 부분도 있다. 남들 앞에서 멋진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있다.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굉장히 유치한 모습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치오는 유치함, 자존심, 자의식 등이 균형 나쁘게 섞여 있는 캐릭터이다.

'나츠코'가 '사치오'의 아이를 원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 어떤 가정을 하고 영화를 찍었는지 궁금하다.
ㄴ '나츠코'와 '사치오'는 20년 동안을 함께한 부부였고, '나츠코'는 20년 동안 몸도 마음도 계속해서 변해갔을 것이다. '나츠코'는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며, '사치오'를 만나 아이를 낳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츠코'는 아이에 관련된 이야기할 기회조차 잃었다. 살아있을 때 둘 사이의 그런 대화를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말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ㄴ 이 영화를 본 관객에게 "위기에 처했던 부부가 조금 관계가 좋아졌다"라는 감상을 들었다. 모토키 배우도 "영화를 촬영하면서 실제 부인에게 인사를 크게 한다든가, 말을 좀 더 부드럽게 하는 등 아내와의 관계가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영화 '아주 긴 변명'을 많은 관객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4년을 들여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화가 국경을 넘어 문화를 넘어 한국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영화를 보일 때면 내용을 파고드는 질문이 많아 긴장되었고 이번 시사회에서도 역시나 그런 질문이 많았다.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글·사진]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정리] 문화뉴스 권내영 인턴기자 leon@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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