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몸의 확장을 넘어 인간 신경 체계의 연속체

춤, 마티스

[문화뉴스 MHN 윤자현 기자] 몸 없이는 인간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의 체험으로서 몸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몸과 다르다. 예술의 체험으로 주어진 몸은 체현(embodiment)이라고 한다. 체현은 구체적인 장소, 시간에 얽혀 있으며 생리와 문화와 함께 작용한다. 체현과 몸은 ‘몸 되기’와 ‘몸 갖기’로 나뉜다. 몸 되기는 몸을 살아가는 일인칭의 과정이며 역동적 체현과 일치한다. 몸 갖기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삼인칭 시점이며 정적인 생물학적 몸과 일치한다. 

중세의 공연들은 대상에 대한 매체가 아닌 대상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중세의 이러한 공연들은 관객들에게 육체적인 방식인 ‘현존’으로 영향을 끼쳤다. 중세의 공연들은 대상이 가진 메시지보다 대상 자체가 몸에 바로 영향을 끼치는 존재였고 몸은 대상과 상호작용하여 대상이 현존 되는 매체였다.

출처: 하버스 바자, 한혜진

근대에 들어서 몸은 사람의 개별 자산이 되었다. 브라이언 터너는 이것을 ‘신체적 사회’라고 말한다. 근대에서 몸은 통제하는 대상이다. 20세기에는 정신 분석학과 현상학, 인지과학의 발전으로 몸을 정신 외부에 두었던 관점이 변화하였다.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의 영역이 몸에 재현되는 현상에 집중하며 몸이 사람의 욕망을 위한 매체로 탈바꿈했다. 프로이트는 내면이 존재하고, 정신이 몸의 욕구를 표현하는 주체일 뿐 아니라, 몸 또한 정신을 체현된 형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몸과 정신의 삶에 수직적 연결고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현상학자들에게 몸과 세계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독일 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은 ‘생각한다’보다 ‘할 수 있다’가 더욱더 본질적이라고 주장하며,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로서 몸을 이야기한다. 몸은 능력을 갖춘 주체인가, 정신을 투영하는 객체인가, 두 입장 사이에서 프랑스 현상학자이자 실존주의자 메를로 퐁티는 ‘살’을 세계와 연관시켰다. 자신의 손을 만지는 손에 대한 연구는 만진다는 것과 만져지는 것 사이의 상호성을 증명하고, 이로부터 얻어진 감각의 이중성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게 된다.

출처: 백남준 아트센터, 자석 TV, 백남준

 

현대는 미디어를 신체적 체험을 위한 본질이라고 여긴다. 현대 미디어 이론의 아버지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고 하였고 미디어를 인간 신경 체계의 연속체로 이해했다. 몸은 이미 매개되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정신에 몸을 매체로 활용할 권한을 주었다는 것이다. 

몸은 단순히 사람의 의식을 수용하고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다.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으려고 할 때, 사람은 몸의 통증이나 증상의 표출에 집중하는 대신 몸이 질병에 직접 대항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예를 들어, 의학에서 뉴로피드백은 환자가 자신의 의식적인 개입을 통하여 질병과 만성적 통증을 다룰 수 있도록 돕는다. 구체적으로는 만성적인 통증에 대하여 지속해서 진통제를 투여하고 환자가 느끼기에 더욱 강한 통증이 올 때 추가로 진통제를 주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뫼비우스의 띠 그림, 윤자현

문화 이론가는 몸과 주체성을 개념화하기 위하여 뫼비우스의 띠를 사용한다. 뫼비우스의 띠는 외부에서 내부로 어떤 또렷한 중단 없이 흘러간다. 피부는 몸과 미디어가 조우하고 개방되는 공간으로 수용적이고 유동적인 물질로 남게 된다.

몸은 항상 매체이고, 다시 말해 몸을 제외한 모든 매체가 통과해야 하는 필수 매체이다.

 

-----

몸과 주체성, 시작과 끝을 알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미디어, 몸의 확장을 넘어 인간 신경 체계의 연속체

-----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