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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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이수현 기자]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사망한다. 경찰의 물고문 중 사망한 것이었지만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고문치사가 아닌 쇼크사로 발표, 고문 사실을 은폐한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은 결국 세상에 드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꿔놓는다.

박종철 열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시작된 6월 항쟁. 그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이 출연,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섰던 1987년의 발자취를 재조명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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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한 남영동 대공분실. 88 서울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설계한 한국의 대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곳으로 조사받는 사람들의 심리를 압박하기 위한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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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이광용 아나운서가 이곳을 방문, 고문 수사의 상징 공간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소개한다. 특히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한 5층 9호 조사실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고 전두환 정권의 잔인한 고문 수사 실태를 고발한다. 

강경 공안정국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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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피해자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84학번 박종철은 당시 각종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며 징역과 구류를 살았던 운동권 학생이었다.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21세 청년, 박종철에 대해 알아본다. 

 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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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던 그가 무리한 고문으로 사망한 배경에는 1986년 10월을 기점으로 전두환 정권이 밀어붙였던 강경 공안 정국이 있다. 그렇다면 1986년 10월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용기의 바통

 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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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자칫 의문사로 묻힐 수도 있었던 그의 죽음이 정권에 의한 고문치사로 밝혀지는 과정에는 용기 있는 기자들과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의사들 그리고 공익을 위해 제보한 교도관들이 있었다. 또 진실 규명에 앞장선 가톨릭 신부들까지... 영화보다 더 극적인 고문치사 진실 규명 과정을 알아본다. 

 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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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_ 노래 ‘그날이 오면’ 중에서

21세 대학생의 죽음이 바꿔놓은 대한민국의 역사. 민주주의를 위해 뜨겁게 싸웠던 1987년의 그날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편, '역사저널 그날 – 1987 박종철'은 23일 밤 10시 KBS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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