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매혹적인 로맨스 누아르 뮤지컬
2022년 5월 8일(일)까지 샤롯데씨어터서 공연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어린 시절, 능인 출판사에서 출간한 만화로 보는 세계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읽었다.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한 번 보고 또 보게 되는 중독성 있는 줄거리였다. 괜히 이런 내용의 만화책을 읽는다고 혼이 날까 숨겨가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촉망받는 한 박사가 자신의 아버지의 조현병을 치료하기 위해 선과 악을 이분하면 분명 개선할 수 있으리라 호언장담했다. 사람들은 신에게 대적하는 행위라며 그의 실험을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을 실험체로 삼아 악이 응집된 자아를 끌어내는 약을 주입한다.

‘나의 선과 나의 악의 대립’은 독보적인 주제와 이야깃거리가 된다. 영웅과 악당의 대립이 한 사람에게 휘몰아치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인데, 웅장하고 거대한 뮤지컬에 담기니 아무리 오랫동안 공연되어와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찾는다. 

역시는 역시, ‘현장성이란 이런 것이다’ 알려준 무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넘버 ‘지금, 이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워낙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불린 노래기에 특별한 전율 같은 것이 온몸에 흐를까 싶었다. 예상을 뒤엎고 ‘지금, 이 순간’ 넘버가 시작되고서 소름에 소름이 돋았다. 누가 부르던, 샤롯데씨어터 그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성량에는 정의 내리기 힘든 외로움과 씁쓸함도 함께 묻어 있었다. 한 인간의 고뇌가 실현되는 순간, 교차한 여러 감정을 뒤로하고 외치는 지킬을 응원하게 된다.

‘지킬 앤 하이드’의 무대는 강한 조명으로 그림자를 자주 생기게 하여 빛과 어두움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빛이 있어야 어두웠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체가 있어야 그림자가 생긴다. 하이드가 등장하기 전 넘버들에서 여러 번 만들었던 지킬의 그림자는 그의 악한 내면, 앞으로 등장할 하이드를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뮤지컬의 앙상블의 역할 중 하나는 극의 흐름을 설명하고 상황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극의 대중으로서 말을 옮기는 앙상블들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노래 가사가 선명하게 들려 전달이 잘 되었고 몰입하는 데에 깨는 것 없어 좋았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립, 조명으로 압도시킨 무대

지킬 박사에게서 하이드가 발현될 때, 로우키 조명처럼 빛을 쏴 (빛을 받는 부위와 그림자의 차이가 강하도록 쏘는 조명) 배우의 얼굴에서 명암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누아르 영화에서 쓰이는 이 기법이 무대예술에서는 현장에서 실제로 목격한다는 점에서 지킬과 하이드의 간격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지킬 앤 하이드’가 1997년 4월 미국 브로드웨이 플리머스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한국에서는 2004년 논 레플리카로 일부 수정을 주어 초연했다. 현재 질적인 성장을 이루기까지 창작진들의 수많은 고민이 묻어 있음이 느껴졌다. 캐릭터 간의 관계를 설득하기 위해 감정을 입체화 시키고 서사를 더욱 부여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지킬이 실험에 몰두해 점점 하이드에게 지배당할 때 약혼한 엠마의 감정도 더욱 격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엠마가 지킬의 실험실을 몰래 들어갔을 때 언젠가라도 기다리겠다는 엠마의 순애보를 지금까지 지켜봐 왔으니 이제는 조금 더 분을 내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대화 장면이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배우 중 엠마의 아버지 댄버스 경 역의 김봉환 배우가 인상 깊었다.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고 묵묵하게 딸을 위하는 아버지로 캐릭터를 해석하고 소화해 계속 무언가가 터지는 극의 사건들 사이사이에서 중화제 역할을 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내년 5월 8일까지 대장정의 시즌을 지낸다. 현재 1차 배역들이 마친 후 2차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있어 예비 관객들의 높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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