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 홍일(음악칼럼니스트)  

서울시향은 클래식 고어들 사이에서 누가 뭐라 해도 자타공인 국내를 대표하는 직업교향악단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연주회마다 지휘자의 퀄리티나 연주자의 기량 관리에 국내 여느 교향악단 못지않게 많은 신경을 쓸 것으로 짐작된다.

어느 교향악단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전임을 맡은 음악감독과 수석 객원지휘자, 부지휘자에게 무대 지휘의 기회가 당연히 많이 맡겨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 서울시향의 지휘 무대에서 국내 지휘자의 지휘 모습은 많이 볼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2월 3일 저녁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지휘자 지중배의 서울시향 데뷔무대는 내게는 서울시향도 국내 능력 있는 지휘자들에게 더 많은 무대 지휘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될 수도 있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서울시향으로선 오랜만에 국내 지휘자와의 무대라 일반 관객의 기대도 상당수 컸는데 지중배의 지휘는 한마디로 음량을 잘 조절하는 지휘자구나 하는 느낌을 연주 내내 가졌다.

 

지중배의 지휘는 한마디로 음량을 잘 조절하는 지휘자였다. (사진 서울시향)
지중배의 지휘는 한마디로 음량을 잘 조절하는 지휘자였다. (사진 서울시향)

 

무리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처지지도 않는 진중한 지휘를 지중배는 이끌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지휘자 지중배는 서울시향의 공연 기획 자문 볼프강 핑크가 지중배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섭외했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시향은 정명훈 시절부터 한국인이 떠올리는 유일한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했다고 술회한 지중배는 코로나 때문에 적당한 때, 서울시향과의 자신의 지휘 기회가 운이 좋은 때에 데뷔하게 됐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지중배의 지휘는 한마디로 음량을 잘 조절하는 지휘자

사실 한 연주회의 성공은 지휘자의 리드에 많이 좌우된다. 이런 지휘자의 리드에 연주회의 성공이 크게 좌우되는 케이스를 나는 지난 11월 5일 인천시향 상임지휘자로 있는 이병욱이 이끄는 부천 필의 정기연주회 “모스크바를 등지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인천시향의 상임지휘자로 있는 지휘 이병욱의 배짱과 배포는 연주 내내 내게 인상적이었는데 지난 봄철의 예술의 전당 교향악축제에서도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op.44나 윤홍천과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협연, 그리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의 인천시향을 이끌던 지휘 이병욱의 역동적 지휘는 국내 유수 교향악단의 연주들 가운데서도 내게는 가장 인상적 연주의 하나로 남아있다. 

지휘 이병욱의 배짱과 배포는 11월 5일의 부천필 연주회가 순조로이 흘러가리라는 느낌을 내게 갖게 했는데 이런 느낌은 곡의 축제적 성격과 어울려 첫 곡 연주부터 부천 필의 연주는 상당히 축제의 기운으로 충만하였다.

이렇듯 한 연주회의 성공을 좌우하는 지휘자의 리드에 부천 필의 예를 드는 까닭은 지난번 서울시향 바통의 기회를 잡은 지중배도 그런 기회를 백분 살려 서울 시향 연말 연주회 성공의 일등 공신이 되면서 지중배라는 지휘자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지중배는 국내 출신의 지휘자이긴 하지만 거의 유럽에서 활동하는 지휘자에 가깝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음대와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 지휘과에서 강의했고 현재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열리는 박영희 국제작곡상의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박영희의 오페라 <길 위의 천국>과 더불어 2022년 독일 에센에서 개최되는 ‘나우페스티벌(NOW! Festival)' 개막공연을 보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독일에서의 지중배의 이력은 만만찮아 2015/16 시즌부터 2017/18 시즌까지 독일 울름 시립극장 및 울름 시립교향악단에서, 지난 2012/13 시즌부터 2014/15 시즌까지는 독일 트리어 시립극장 및 시립교향악단에서 수석지휘자 및 부음악총감독으로 활동했다.

독일음악협회 “미래의 거장” 10인에 선정되어 독일음악협회의 지휘자 포럼회원으로서 활동하며 유카 페카 사라스테, 마르크 알브레히트, 윤 메르켈에게 지휘를 배웠다고 한다. 2009년 브장송 지휘 콩쿠르 결선 진출, 2012년 독일음악협회와 라이프찌히 오페라극장에서 공동 주최한 독일 오페레타 지휘자 상을 동양인으론 최초로 수상했다.

현대음악 분야에서 앙상블 모데른을 지휘했으며 TIMF 앙상블의 유럽 순회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지휘자 지중배는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 MDR 심포니 오케스트라, 슈트트가르트 필하모닉등 유럽의 여러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고 있으며 오페라 라이프치히, 하겐 시립극장, 포어포메른 주립극장 등에서 지휘했다. 

많이 연주되지는 않지만, 음악적 상상력 불러일으키는 이색적 무대 선사

이날 서울시향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다섯 개 곡들 가운데서도 자주 연주되지 않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보리스 길트버그와 협연했고 이어 차이콥스키 교향곡들이 보통 4,5,6번이 인기를 끌면서 자주 연주됨에 비춰 잘 연주되지 않아 관객이 많이 접하지 않은 차이콥스키 1번 교향곡으로 많이 연주되지는 않지만, 음악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색적 무대를 선사했다.

 

길트버그는 서울시향과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2번 연주에선 독주자적 기량으로 이끒어간 느낌을 받았다. (사진 서울시향)
길트버그는 서울시향과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2번 연주에선 독주자적 기량으로 이끒어간 느낌을 받았다. (사진 서울시향)

 

동화 오페라인 <헨젤과 그레텔> 서곡도 지휘자 지중배가 언급한 대로 음악에서 그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기보단 음악을 듣고 그것을 나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서곡이었다. 

원래 첫 곡은 바그너의 ‘로엔그린’ 서곡으로 잡혀있었는데 티켓 오픈후에 편성상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 서곡으로 바뀐 것으로 전해지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2번 ‘겨울날의 몽상’은 요즘 시즌에 참 잘 어울렸다.

지휘자 지중배의 술회에 따르면 베를린 유학 중 2007년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오자와 세이지/베를린필이 선보인 3회의 공연을 모두 듣고 홀딱 반했던 곡이라고 한다.

러시아 출신의 이스라엘 국적의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버그는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낙소스 앨범에서 녹음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 2번 음반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 길트버그는 이 음반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 1번이 더 확장적이고 오케스트레이션이 풍부한 것임에 반해 서울시향과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연주에선 독주자적 기량으로 이끌어간 느낌을 받았다.

서울시향도 2021년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12월 16~17일 있을 오스모 벤스케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교향곡’ 공연을 마지막으로 공식적 연주회 일정을 마칠 일정으로 잡혀있다.

2020년 지난해 2월 14일과 15일 펼쳐진 오스모 벤스케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의 연주를 시작으로 팬데믹 시대 2년 동안 서울시향은 상당수의 온라인 무관중 콘서트들도 병행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국내 오케스트라들 가운데서 부동의 정상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직업교향악단의 위상을 지켜왔다고 본다.

이런 와중에서 앞서 언급했지만, 해외 지휘자들의 장점도 많이 수용하면서 2022년 신년에는 이번 지휘봉을 잡은 국내 출신의 지중배 지휘자 같은 역량 있는 국내 출신 지휘자들에게도 서울시향의 무대 지휘 기회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2022년 서울시향 무대가 되면 어떨까 하고 기대해본다.

이런 개인적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향 무대에 2월에 2015년 말코 지휘 콩쿠르 우승자인 대만 지휘자 텅취 창이 오고 스웨덴 트럼페터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3월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선보인다는 소식을 접하면 국내 출신 지휘자들이 서울시향의 지휘 포디움을 밟는 것은 2022년 상반기에도 어려워 보인다.

내년 2022년 7월에 가서야 김은선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고 하니 서울시향 무대의 지휘봉을 잡기 위한 국내 지휘자들의 분발 질책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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