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K클래식이나 K팝 얘기는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K오페라 얘기는 용어도 생소하고 아직은 이것에 관한 논의를 논할 만큼 성숙한 단계와 여건은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지난 3월11-12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공연을 가진 국립오페라단 ‘왕자, 호동’은 과감한 재해석과 현대적 미장센이 빚어낸 무대였다는 평가로 K오페라 논의의 발진(發進)을 얘기해볼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국산 토종 창작오페라의 세계 진출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립오페라단 왕자, 호동 공연은 관객들이 역사적인 실제를 재현하는 무대보다 진실된 무대로 2천년전 그날을 올곧게 다녀오기를 희망하는 무대였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왕자, 호동 공연은 관객들이 역사적인 실제를 재현하는 무대보다 진실된 무대로 2천년전 그날을 올곧게 다녀오기를 희망하는 무대였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관객들이 역사적인 실제를 재현하는 무대보다 진실 된 무대로 2천년전 그날을 올곧게 다녀오기를 희망

오페라 ‘왕자, 호동’은 가곡 ‘비목’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일남 작곡의 작품으로 1962년 국립오페라단 창단 기념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국내 창작오페라의 효시다.

때문에 올해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왕자, 호동’은 국립오페라단 60돌 창단 기념작품의 귀환이자 과감한 재해석과 현대적 미장센이 빚어낸 무대로 오페라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왕자, 호동’은 초연 당시 탄탄한 극의 짜임새와 친숙한 선율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오페라에 내 개인적으로 K오페라 발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까닭은 국립오페라단의 지난해 ‘서부의 아가씨’, ‘라 트라비아타’등에 이어 올해 2022년에도 베르디의 ‘아틸라’와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와 푸치니의 ‘라 보엠’등 서구 오페라들의 강세로 서구물들이 무대에 대부분 오르는 현실 속에서도 국내 창작오페라 효시격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왕자, 호동’이 고구려의 왕자 호동과 그를 사랑하게 된 적국 공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낙랑의 땅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왕자 호동과 그를 위해 조국을 저버리고 자명고를 찢는 선택을 하게 되는 낙랑공주의 비극적 최후가 한국적 정서가 가득 담긴 음악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 점.

3막 직전에 고수와 함께 남녀 소리꾼이 등장해 판소리 가창으로 극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장면을 펼쳐보였다는 평을 받은 것도 서구 오페라들과 대비될 K오페라적 요소의 부각으로 꼽을 만 하다. 

이를 통해 60년 만에 ‘왕자, 호동’ 오페라를 재공연함으로써 국립오페라단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 창작오페라의 산실임을 재확인하는 자리를 가진 셈이다.

‘왕자, 호동’의 오페라 측면의 완성도에서 일각에선 미흡함 지적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이 오페라를 감상한 평단의 감상자들은 ‘왕자, 호동’의 오페라 측면의 완성도에서 미흡함을 지적하며 개선점이 있음을 적시하기도 했다.

현대적 연출을 통해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진화했지만 당시 주변 정세를 감안한 실리적 외교나 국가 간 힘의 구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60년 전 대본의 시대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 있었고 ‘기념’의 의미밖에 찾을 것이 없어 대본과 음악의 공감을 얻기에는 미흡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이 오페라 작품의 synopsis에 비춰보면 ‘왕자 호동’은 서구 오페라들의 줄거리 등에 견줘봐도 충분히 K오페라의 세계화에 가장 앞장설 수 있는 줄거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오페라 ‘왕자, 호동’은 국립오페라단 60돌 창단 기념작품의 귀환이자 과감한 재해석과 현대적 미장센이 빛어낸 무대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은 리허설 장면)
오페라 ‘왕자, 호동’은 국립오페라단 60돌 창단 기념작품의 귀환이자 과감한 재해석과 현대적 미장센이 빛어낸 무대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은 리허설 장면)

 

“고구려의 왕자 호동은 한나라가 침략하여 세운 낙랑을 되찾기 위해 쳐들어가지만 적의 침입을 미리 알려주는 신물(神物) 자명고가 있어 번번이 실패한다. 적국의 왕자 호동을 사랑하는 낙랑공주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명고를 찢는다.

결국 호동왕자는 군사를 이끌어 낙랑을 정복하고 자명고가 울리지 않아 적의 침입을 방비하지 못한 낙랑왕은 자명고를 찢은 사랑하는 딸을 죽이고 만다. 호동왕자는 차가운 공주의 주검을 부둥켜안고 비통해한다.”

연출가는 오페라 ‘왕자, 호동’의 연출에 대해 출연진들을 배역으로만 존재하는 가둬두는 닫힌 무대가 아닌, 그 시대의 인물로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고 노래할 수 있는 상상과 감각이 표출된 무대를 구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관객들이 역사적인 실제를 재현하는 무대보다 진실 된 무대로 2천년전 그날을 올곧게 다녀오기를 희망하는 무대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국오페라의 K오페라를 이끄는데 마중물이 되었으면...”

낙랑공주의 비극적 대서사시라는 관점에서 비극은 무자비하고 비극적인 운명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가장 고귀하고 가장 용감한 인간을 표현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을 떠올릴 필요가 있겠다.

연출가 한승원은 지금 이 시대, 지금 이곳에서 왜 오페라 ‘왕자 호동’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낙랑공주의 비극적 대서사시에 주목했다. 황금의 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은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으며 자신의 힘으로 언제든 약자를 짓밟고 목숨까지도 가져온다.

하지만 단 한사람 ‘낙랑공주’는 괴물이 되기를 포기하고 ‘호동왕자’의 사랑과 낙랑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은 운명에 의해 파멸될 것을 알았지만 그 길을 선택하며 ‘낙랑공주’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으나 우리에게 영원히 남는 고결한 존재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번 ‘왕자 호동“은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60주년을 맞이하면서 창단 첫해에 무대에 오른 이 창작오페라를 재공연하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6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 ‘왕자, 호동’은 단순히 재공연의 의미를 넘어서 앞으로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60주년 공연이 오페라 ‘왕자, 호동’에 다시 한 번 생명을 불어넣어 앞으로의 6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동안 공연되는 한국오페라의 K오페라를 이끄는데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 


※ 외부 기고 및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