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의 섬광 같은 기지와 지휘의 신선함 돋보인 무대

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기지(機智)와 신선함이 돋보이는 연주회를 보고 왔다고 해야 할까.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벤저민 슈미트가 협연하고 KBS교향악단이 핀란드 작곡가의 아이덴티티가 물씬한 이미지의 상임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 지휘를 통해 말러 교향곡 제7번 연주로 오랜만에 많은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교향악단 연주회의 전통적인 틀은 서곡 연주에 이어 협주곡 협연과 후반부에 교향곡 연주로 짜여있는 것이 통상적 진행 형태다.

서곡 연주는 예열을 끌어올리며 연주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애피타이저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지난 3월 24일 KBS교향악단이 후반부에 연주한 말러 교향곡 7번의 연주 시간이 80분에 달하는 만큼 시간 배분을 생각해서라도 이날 연주회는 서곡 연주가 생략된 느낌이다.

 

사진=KBS교향악단 제공
사진=KBS교향악단 제공

 

3월 하순을 여는 지난주만 해도 서곡이 생략되며 교향악단의 연주력으로 승부를 보고자 한 연주회는 경기필의 지난 3월 19~20일의 슈만교향곡 3번&4번 연주회, KBS교향악단의 3월 24일의 말러 교향곡 제7번의 밤의 노래, 3월 25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스크리아빈의 교향곡 제1번이 연주된 모차르트와 스크리아빈 연주회가 그러했다.

슈미트, 고난도의 기교 펼쳐가며 번득이는 섬광 돋보여

이렇듯 서곡 연주 없이 곧바로 벤저민 슈미트가 KBS교향악단과 협연한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코른골트 특유의 재치와 위트, 우아하면서도 유머러스함이 깃든 전개로 쾌활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 슈미트의 바이올린 연주로 객석에 바로 전해지던 무대였다.

 

피에타리 잉키넨 지휘자(중앙)과 벤자민 슈미트 바이올리니스트(우측)이 인터미션 시간에 자리를 함께 했다,. (사진 KBS교향악단)
피에타리 잉키넨 지휘자(중앙)과 벤자민 슈미트 바이올리니스트(우측)이 인터미션 시간에 자리를 함께 했다,. (사진 KBS교향악단)

 

이번 KBS교향악단과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벤저민 슈미트와 같은 동향의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코른골트는 음악 신동으로 십대에 칸타타 ‘황금’을 작곡 연주해서 당시 빈 궁정음악 감독이었던 말러를 놀라게 했다고 하며, 발레 ‘눈사람’을 황제 앞에서 초연해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코른골트는 미국에 체류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할리우드 작곡가가 되어야 했고 로빈후드의 모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작곡하여 아카데미 음악상도 두 차례나 수상한 경력이 있는데 코른골트는 다시 순수음악 작곡에 몰두하다가 1945년에 자신의 영화음악 중에서 최상의 소재들을 발췌하여 재구성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에서 바이올린은 영화 음악적인 오케스트라의 장쾌한 판타지를 배경으로 풍부한 음색으로 사랑스럽고도 세련된 우아함을 보여주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난도의 기교를 펼쳐가면서도 번득이는 섬광을 돋보이게 한 슈미트의 바이올린 연주력이었다.

서정적이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1악장과 장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2악장, 도발적이면서 활기에 넘치는 마지막 악장의 벤저민 슈미트 바이올린 연주가 작곡가의 음악적 갈망을 엿보게 하는 아름다운 곡임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하는 연주였다고 본다. 

지난 1월 말의 취임 연주회에서 자국 작곡가인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 모음곡 지휘로 섬세한 연주의 연속을 선보인 KBS교향악단 신임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은 2월 말 KBS교향악단과의 연주회에서도 축제라는 명칭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의식과 관련 있는 장중한 종교적 찬가 시벨리우스의 축제풍 안단테를 서곡 레퍼토리로 삼아 피에타리 잉키넨이 KBS교향악단과 계속 시벨리우스 연주곡을 레퍼토리로 삼아야 함을 설득력 있게 얘기해주는 듯싶었었다.

말러교향곡 제7번 연주, 지휘자나 KBS교향악단으로서도 새 이미지의 변신

그런 맥락에서 피에타리 잉키넨이 그 난이도로 인해 말러교향곡중 가장 드물게 연주되며 가장 난해하고 어수선하다는 평을 받는 말러교향곡 제7번 연주를 무대에 올린 것은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의 향후 국내에서의 지휘 행보나 KBS교향악단으로서도 새로운 이미지의 변신으로 내게 다가온다.

 

시벨리우스등 핀란드 동향의 작곡가 이미지가 물씬한 잉키넨이 말러교향곡 제7번의 연주는 새 이미지의 변신으로 비쳐진다. (사진은 리허설 장면)
시벨리우스등 핀란드 동향의 작곡가 이미지가 물씬한 잉키넨이 말러교향곡 제7번의 연주는 새 이미지의 변신으로 비쳐진다. (사진은 리허설 장면)

 

말러교향곡의 제5번부터 제7번까지를 하나의 그룹으로 보면 이 그룹에 정점에 있는 것이 말러교향곡 제7번으로 알려져 있음에 비춰 내가 KBS교향악단의 오랜만의 말러교향곡 제7번 연주에서 주목했던 것은 난해하면서 동시에 가장 창의적이고 놀라운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 작품을 어렵지 않게 해석해내는 지휘 피에타리 잉키넨의 지휘술에 주목하면서 들었다. 

2016년 무렵인가 연초에 서울시향이 당시 부지휘자로 있던 최수열 지휘로 말러교향곡 제6번과 엘리아후 인발 지휘로 말러교향곡 제7번의 연주 등에서 당시 서울시향의 연주력 편차 극복이 새 과제로 떠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KBS교향악단의 말러 연주력을 전체적 그림 속에서 평가하기에는 최근 가까운 근자에 KBS교향악단의 말러교향곡 사이클 연주가 없었던 듯해 속단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부드러운 밤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른하고도 아련한 밤의 노래는 놀라운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흥미진진한 소리로 가득한 음악적 만화경 같은 그 다채로운 음향 세계’, 같다는 평의 말러교향곡 제7번의 새 해석을 피에타리 잉키넨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돌려준 연주회를 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싶다.

하여 말러교향곡 제7번의 연주가 끝나자 근래 드물게 많은 관객이 객석에서 기립박수를 KBS교향악단에 보냈는데 피에타리 잉키넨의 신선미가 지휘 내내 돋보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무대로 꼽을 만하다. 

참고로 KBS교향악단의 2022년 올해 마스터스 시리즈는 5월 4일 막심 벤게로프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과 닐센의 바이올린 협주곡, 6월 9일 첼리스트 우에노 미치아키의 협연으로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제1번과 루토스와브스키의 첼로협주곡외, 7월 9일 안드레아스 오텐자머와의 협연으로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제1번,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9월 8일 바딤 글루즈만 협연으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77외를 협연케 되는데 KBS교향악단이 계속 클래식 고어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을 만한 무대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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