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 총과 무기 대신해 연대(連帶) 함께 할 수 있다”

 

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교향악단이 연주로 할 수 있는 사회적 대의(大義)와 연주력 관객만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서울시향이 잡았다. 지난달 3월3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2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수수께끼 변주곡 연주회는 연주에 앞서 동유럽 우크라이나 국가가 연주됐다.

연주회를 시작하기 전, 예외적으로 마이크를 먼저 잡은 서울시향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는 “친애하는 음악애호가 여러분! 지금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엄청난 재앙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우리는 슬픈 뉴스, 나쁜 뉴스,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를 피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피난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얘기이기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우크라이나 국가를 먼저 연주하겠습니다.”라는 코멘트로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가연주가 서울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는 전례 없는 공연풍경이 펼쳐졌다.

 

하델리히의 과르네리는 더 어둡고-열정적인 음색을 보여줬다. (사진 서울시향)
하델리히의 과르네리는 더 어둡고-열정적인 음색을 보여줬다. (사진 서울시향)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가 서울의 한 연주장에서 펼쳐지는 연주행위에 그치지 않고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전 세계 시민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희망하는 사회적 대의를 실천한 것이다. 

3월25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은 심포니송 마스터즈 시리즈 모차르트의 구도자의 엄숙한 기도, K.339와 스크리아빈 탄생 150주년을 기념키 위해 열린 스크리아빈 교향곡 제1번 연주회에서도 함신익은 공연을 마치고 드미트로 포노마렌코(Dmytro PONOMARENKO)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앙코르 연주로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 국내 연주단체가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는 액션을 취해 잔잔한 감동을 던져줬다.

이는 연주로서 전쟁의 참상을 멈춰달라는 사회적 대의에 서울시향과 심포니송이 자신들의 결연한 연대의식을 보여준 것 같아 연주가 총과 무기를 대신해 연대(連帶)할 수 있다는 좋은 예시(例示)로 느껴진다.

서울시향의 연주력, 안정 속에 상승기류 타는 것 같은 느낌

국내 교향악단 가운데서 서울시향이 독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해외 아티스트의 ‘올해의 음악가(Artist-in-Focus)’ 제도나 3년차 임기를 맞는 오스모 벤스케의 연착륙을 통해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안정 속에 상승기류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다. 

2022년 올해의 음악가 연주는 당초 저명한 스웨덴 출신의 트럼펫 연주가 호칸 하르덴베이에르가 트럼펫 연주를 하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올가 노이비르트(Olga Neuwirth) 작곡 트럼펫 협주곡 ‘미라몬도 물티플로’등을 연주하는 2월25일의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 호칸 하르덴베리에르의 ‘격리 면제’ 불가로 그의 내한 연주는 불발되었고 이어지는 2월 27일의 실내악 시리즈 및 3월 4일 예정돼있던 호칸 하르덴베이에르의 오네게르 교향곡 2번의 연쇄 취소라는 악재를 맞았었다.

그런 맥락에서 또 다른 한명의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의 지난 3월31일 연주는 트럼펫 연주가 호칸 하르덴베이베르의 내한불발의 아쉬움을 상쇄시키는 빈틈없는 바이올린 연주로 토머스 아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동심원의 길’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의 연주로 관객들에게서 “연주가 되게 좋네요”라는 관객의 감탄사를 낳았다.

관객은 하델리히의 전반부 아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동심원의 길‘과 후반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의 역시 흔치않은 한 연주회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두곡을 감상하는 풍성함을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2019년 하델리히는 9년 동안 사용해온 엑스-키제베터라는 이름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과 결별하고 ’레두크 엑스-셰링‘이라는 새 과르네리 바이올린 악기를 후원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객들이 하델리히의 연주에서 명확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술회한 것처럼 이 바이올린에 그 어떤 악기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풍성함과 복잡함이 내재되어 스트라디바리가 정제되고 보다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려줌에 반해 하델리히의 과르네리가 더 어둡고-열정적인 음색을 보여줬다는 점일 것이다.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상임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의 연착륙으로 안정속에 상승기류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상임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의 연착륙으로 안정속에 상승기류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풍부한 악상과 견실한 짜임새, 멋진 관현악법 잘 드러나는 연주

이날 오스모 벤스케가 회심의 지휘봉을 잡은 에드워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제9변주 ‘님로드(Nimrod)’가 국내 공연장에서 개별적으로 많이 연주돼와 국내교향악단의 연주레퍼토리로 관객들이 접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었을 법 싶은데,

최근 3년차 임기를 맞는 상임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의 연착륙과 맞물려 탄탄한 음향의 교향악을 구현해가는 이미지를 주는 서울시향의 연주력을 통해 이 작품의 풍부한 악상과 견실한 짜임새, 멋진 관현악법이 잘 드러나는 연주였다고 본다.

이 작품은 주제와 그에 따른 14개 변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객에게는 역시 전곡 가운데 마지막 변주와 더불어 가장 길고 가장 유명한 악장인 9변주 아다지오 ‘님로드’의 연주가 전곡 가운데 클라이맥스였다. 

각 변주는 주제의 선율적ㆍ화성적ㆍ리듬적 요소에서 파생되어 나오며, 마지막 변주가 오스모 벤스케의 풍성한 사운드를 이끌어내는 그 자체로 거대한 피날레를 형성하는 것 역시 압권이었다.

전곡 가운데서도 내용 면에서 가장 풍부한 마지막 14 변주는 처음에는 나직하게 시작했다가 화려하고 요란하게 부풀어 오르며, 이어 원래 주제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전개되는 신비로운 중간부를 거쳐 화려하고 찬란하게 끝맺는 것이 이날 연주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꼽을 만 했다.  

참고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연주한 여러 교향악단의 연주에 대한 감상소감을 덧붙이자면 존 바비롤리경이 필하모니와 연주 1962년에 녹음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영국적 전통에 기반을 두어 고풍스러운 연주가 돋보인다.

쇼팽콩쿠르 지휘자로도 국내 팬들에게 낯익은 폴란드 지휘자 Jacek Kaspszyk이 지휘한 바르샤바필과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엘가 연주곡의 느낌을 주기에는 좀 동떨어진 다는 느낌을 주고 유리 테미카르노프가 St. Peterburg 교향악단과 연주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연주는 러시아 연주자들다운 거친 면이 많아 영국 작곡가의 곡은 영국 지휘자가 가장 잘한다는 명제를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올해 2022 교향악축제의 개막공연을 맡은 부천필도 프랑크의 교향시 ‘저주받은 사냥꾼’ FWV.44,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본 윌리암스의 토마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그리고 스크리아빈의 교향곡 제4번 ‘법열의 시’로 연주 최후의 순간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황홀경을 체험케 한 연주로 올해 4월2일 토요일 오후 시작된 올해 교향악축제의 스타트를 인상적으로 끊었다.

지난 1월29-30일의 오스모 벤스케의 모차르트 레퀴엠이 펜데믹 환경 속에서 한해 또 한 번 버틸 위로와 희망을 묵직하게 관객들에게 받게 하는 연주였다면,

이번 3월31일과 4월1일의 오스모 벤스케의 수수께끼 변주곡 연주는 상임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의 비중을 새삼 다시 주목케하며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안정 속에 상승곡선을 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달 말 4월21일과 22일 있게 될 토마스 다우스고르의 브루쿠너 교향곡 2번 연주나,

다음달 5월13일 있게 될 오스모 벤스케 지휘 말러교향곡 제10번의 연주 등은 대곡 연주력에 대해 관객이 서울시향의 연주력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평가를 내릴 중요한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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