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드보르작 카니발 서곡 연주부터 섬세한 디테일을 잡아내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독일 출신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지휘는 80대의 나이를 무색케 했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국내 서울시향 무대 및 예전 파리오케스트라와의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연주등 대표적 친한(親韓) 지휘자의 한명.

 

에센바흐는 카니발 서곡 연주부터 섬세한 디테일을 잡아내 80대 거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사진 KBS교향악단)
에센바흐는 카니발 서곡 연주부터 섬세한 디테일을 잡아내 80대 거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사진 KBS교향악단)

에센바흐가 좀 더 젊은 나이의 객원 지휘자였더라면 KBS교향악단의 더 찬란한 연주와 무대를 이끌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적잖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브람스의 밤(Brahms Abend)을 이끈 지난 4월 26일 저녁의 KBS교향악단 지휘를 이끈 에센바흐는 이제는 많이 볼 수 없는 80대 거장 지휘자의 모습을 국내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이날의 메인 연주곡이었던 브람스 교향곡 제4번의 3악장, 빠르고 즐겁게(Allegro giocoso)나 4악장 빠르고 힘차게 그리고 열정적으로(Allegro energico e passionato)의 연주가 끝나자 많은 관객들이 80대 노장의 지휘 열연에 많은 박수로 화답하는 것이 에센바흐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내게 갖게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노련함과 신진 첼리스트 김범준의 풋풋함 어우러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후배 양성에도 열정적이며 후배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제공하는 것으로 회자돼왔다. 지금까지 에센바흐가 발굴한 클래식계의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들만 해도 피아니스트 랑랑,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첼리스트 레오나드 엘센브로이흐와 다니엘 뮐러-쇼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음악 명문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의 예술고문이자 교수로서 에센바흐가 촉망받는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세계적인 수준의 솔리스트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는 점에 후배 아티스트들의 존경과 헌사가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노련함과 신진 첼리스트 김범준의 풋풋함이 어우러진 KBS교향악단의 제777회 정기연주회.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노련함과 신진 첼리스트 김범준의 풋풋함이 어우러진 KBS교향악단의 제777회 정기연주회.

 

2019년 9월부터 에센바흐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음악감독을 역임하며 유럽 음악계로부터 여전히 끊임없이 새 지평을 열어가는 지휘자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날 브람스 이중협주곡을 협연한 바이올린 김수연도 2018년부터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악장으로 활동 중이면서 같은 한솥밥을 먹으며 에센바흐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객석에서 느껴졌다.

클래식 라이징 스타 첼리스트 김범준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협연한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J. Brahms| Double Concerto for Violin & Cello in a minor, Op. 102)은 베토벤 삼중협주곡(Triple Concerto for Violin, Cello & Piano in C Major, Op.56)과 비교했을 때 내 개인적으로 이렇게 흥미로운 곡이었던가 하는 느낌으로 감상했다.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은 바이올린과 첼로 두 악기 모두에게 어려운 극한의 기교를 요구하며 변화가 가장 풍부한 두 현악기로 연주하기 때문에 두 독주자의 연주력과 표현의 풍부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문이다.

“이 곡은 잊힐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수한 연주자를 만나게 되면 그 효과는 마치 스위스 베른의 창가에서 위풍당당한 알프스의 전경과 아름답게 펼쳐지는 빙하의 풍광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평론가 뉴만이 자신의 저서인 브람스 평전에서 적은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협연의 시간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노련함과 신진 첼리스트 김범준의 풋풋함이 어우러진 브람스의 밤 연주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무대 왼편에서 넉넉한 스승의 심성으로 지켜본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첼리스트 김범준과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라인홀트 글리에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8개의 소품 작품번호 39중 ’자장가‘는 두 연주자간의 아름다운 포옹으로 마무리, 관객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서울시향의 섬세함이냐, KBS교향악단의 투박함이냐 선호(選好)의 문제 관객 각자의 몫

이날도 KBS교향악단은 첫 서곡으로 연주한 드보르작의 카니발 서곡에서부터 투박한 연주의 이미지로 내게 비쳐졌는데 대항마인 서울시향의 섬세함이냐, KBS교향악단의 투박함이냐 선호(選好)의 문제는 관객 각자의 몫이라고 본다.

 

KBS교향악단 마스터즈 시리즈에 출연한 막심 벤게로프(중앙). (사진 KBS교향악단)
KBS교향악단 마스터즈 시리즈에 출연한 막심 벤게로프(중앙). (사진 KBS교향악단)

지난 4월의 교향악축제에서도 KBS교향악단은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제4번의 연주로 현악기의 떨림 속에서 호른으로 고요하게 시작하는 1악장, 사냥을 알리는 호른의 뿔피리로 힘차게 시작하는 3악장 등이 교향곡에 그려진 ‘낭만적’ 배경을 잘 그려냈다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KBS교향악단은 Masters Series로 5월 4일 막심 벤게로프가 출연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A장조, K.219 “터키”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 64 연주 무대를 시작으로

6월 9일에는 우에노 미치아키가 하이든과 루토스와브스키를 묵직하고도 현란한 현의 미학으로 잇는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제1번 C장조, 7월9일에는 안드레아스 오텐자머가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제1번 f단조 작품 120을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으로 선보이고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를 지휘하는 일정.

9월 8일에는 바딤 글루즈만이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G장조, K.216 및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77을 선보이는 등의 해외 저명 아티스트들로 서울 클래식 무대를 다시 달굴 예정으로 있어 KBS교향악단의 연주력에 대한 클래식 고어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다시 점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KBS교향악단측은 기교에 ‘정점’을 찍은 마스터, 음악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관점’,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들이 협연자를 매개삼아 만나는 새로운 ‘접점’이 담긴 마스터즈 시리즈를 통해 색다른 공연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이런 야심찬 기회를 잘 살려 KBS교향악단은 차별화된 연주와 창의적인 기획을 통해 국가대표 클래식 문화브랜드로 클래식 고어들에게 그 이미지를 심는 작업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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