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비슷한 시기의 시점에 이틀에 걸쳐 연달아 서울에서 열린 두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에서 조지아 출신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35)가 관객 흡인 면에서 2019년 차이콥스키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5)를 눌렀다.

두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은 4월19일 하루 먼저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피아노 리사이틀이 한차례의 통상적 인터미션을 가진 것을 제외하면 쉬는 시간 없이 피아노 리사이틀의 연주곡들이 죽 연주 이어지는 식으로 피아노 리사이틀 진행형태의 포맷이 같았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관객 흡인 면에서 서울의 청중을 보다 많이 끌어들인 요인으론 2016년 루체른심포니와 협연이후 2017년 롯데콘서트홀에서의 첫 독주회, 2018년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협연, 2019년 KBS교향악단과의 협연 등으로 거의 매년 서울 공연장 국내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명함효과가 캉토로프보다 보다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캉토로프 무대는 롯데콘서트홀의 중앙 메인 로열석과 정면 1층석, 좌우 사이드석을 겨우 채우는 기대에 못 미치는 다소 초라한 객석 점유율에 그쳤으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롯데콘서트홀의 중앙 메인 로열석들을 대부분 다수 채운 것을 비롯, 1, 2층 객석과 합창석, 좌우 사이드석을 고루 채우는 티켓 파워 면에서 두 피아니스트의 관객 조명 명암(明暗)이 엇갈렸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관객 흡인 면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눌러

두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을 이틀 연속 개인적으로도 현장 객석에서 감상하면서 둘 다 나무랄 데 없는 기량을 보였다는 데에는 관객 모두가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사티의 짐노페디 제1번 연주를 시작으로 쇼팽의 전주곡 제4번, 쇼팽의 스케르초 제3번,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슈베르트 즉흥곡 제3번, 소팽 마주르카 제4번, 리스트 ‘위로’ 제3번등 총12곡의 큰 흐름 속에서 미궁속 길을 찾는 시간이란 자신의 최근 발매음반 제목처럼 ‘Labyrinth(미궁)’의 키워드란 점의 컨셉면에서 독특한 것이 내게는 무척 이채로웠다.

특히 내게는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올해 첫 내한공연의 총 12곡의 연주곡들이 하나의 전체적 스토리를 갖고 있는 기승전결(起承轉結)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조용히 흐르는 선율선이 시종일관 변화가 없는 사색적 선율이 흐르는 사티의 짐노페디 제1번은 내게는 그 시발점이었다.

일곱 번째 순서로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연주한 쇼팽의 폴로네이즈 Op.53 ‘영웅’이 강렬한 연주 터치와 긴박한 표현력이 힘차고 웅장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어 이런 기승전결의 承의 느낌을 줄 만 했다.

 

분절된 듯 보이는 각각의 곡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조지아 출신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사진 인 아츠 프러덕션)
분절된 듯 보이는 각각의 곡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조지아 출신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사진 인 아츠 프러덕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이날 연주회에서 내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바흐/리스트 전주곡과 푸가 제1번은 이 작품에서 바흐와 리스트라는 서른 다른 자아가 화려한 연주와 비르투오시티의 표출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며 떠오르는데 무아지경의 곡 연주를 이끌어나가는 부니아티쉬빌리의 연주를 轉의 단계로 꼽고 싶다.

그리고 結의 연주곡들로는 부니아티쉬빌리가 마지막 두 번째 직전 곡들로 들려준 리스트의 ‘위로’ 제3번의 위로와 마지막 연주곡이 된 리스트/호로비츠의 헝가리 광시곡 제2번의 장대하고 화려한 연주가 각각 그런 기승전결 단계의 느낌을 줬다고 개인적으로 들고 싶다. 

“분절된 듯 보이는 각각의 곡들을 유기적으로 연결”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Labyrinth(미로)’ CD음반을 들으면서도 카티아가 펼쳐놓은 이 미로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만의 길을 드러내며 이 길을 내는 것은 다름 아닌 음반을 듣는 청자(廳者)라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분절된 듯 보이는 각각의 곡들을 유기적으로 연결 짓는 이 작업은 하나로 단정 짓기 어려운 존재, 곧 각각의 고유성을 지닌 자아에 달려있다는 것이 부니아티쉬빌리의 ‘미로’ 음반을 들으면서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는 “한곡 한곡 따로 따로 집중하기 보다는 프로그램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들어주시고 그에 따른 해석은 각자가 느낀 감정대로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공연기획사측에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미궁은 의외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누구보다 화려하게 무대에 오르는 사람의 자기고백이 놀라움을 뒤로 하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통과 의심을 지나고 분노와 안도가 섞이며 깨달음과 사랑까지 안겨주는 이 복잡한 세계에서 부니아티쉬빌리는 서로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화음과 시대를 애써 이어 붙이며 그것의 불균형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부질없는 시도를 이어나갔다.

부니아티쉬빌리의 앨범 <Labyrinth>은 음반 그 자체로 완결된 형태를 지향,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온전히 연결되어 있는 감정의 끈 같은 상태를 앨범 <Labyrinth>는 간절히 바랐는데 그런 콘셉트의 공연이 부니아티쉬빌리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통해 다시 전개된 것이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피아노 리사이틀의 또 하나의 특징으론 허공에 관객을 향한 손 환대의 화려한 제스처를 보이는 중국계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회자되는 랑랑의 예처럼 관객들에게 자신의 입으로부터 손으로 하트를 날리는 하트인사가 매 리사이틀에서 빠질 수 없는데,

이날 연주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날 부니아티쉬빌리의 연주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역대 어느 때보다도 그녀의 전매특허가 되다시피 한 많은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하트인사를 목격했을 것이다. 

캉토로프가 자신의 서울 리사이틀에서 전반부에서 프란츠 리스트/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피아노를 위한 울음, 탄식, 근심, 두려움 전주곡’(Franz Liszt/Johann Sebastian Bach ‘Weinen, Klagen, Sorgen, Zagen’ Prelude for Piano, S. 179) 연주곡의 시발로 해서 내게는 역시 가장 감동적이었던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7번.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의 환상곡(Franz Liszt <Annees de pelerinage> Deuxieme annee: Italie, S. 161)에 이르기까지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역시 새털같이 섬세한 피아니즘을 선보였음에도 자신의 명함을 서울무대에 처음 내민 캉토로프로선 국내 관객을 보다 자신의 리사이틀로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선 서울무대를 보다 많이 찾아야 하는 것이 선결조건이 될 듯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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