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 홍일(음악칼럼니스트) 

브루크너 교향곡 하면 일반 관객은 브루크너만의 숭고함과 장엄함이 표출되는 웅장한 초월적 음향에 압도되는 연상을 많이 한다.

올해 2022년 교향악축제에서 이런 초월적 음향을 들려줬던 대표적 체험 케이스의 연주로는 이병욱 지휘 인천시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제9번의 연주가 소리로 이루어진 그런 장엄한 건축물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했다.

인천시향의 교향악축제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연주에 대해 작곡가 김도윤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은 대칭, 반복, 균형의 미를 추구하며 마치 거대한 건축물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적었다.

서울시향, 국내 클래식계 무대에서 가장 정통 클래식적 분위기와 그것에 부합하는 연주를 가장 잘 들려주는 연주단체

그랬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은 그 거대한 벽과 같은 음향, 명료하고 엄격하게 절제된 화음 제어, 그리고 브루크너 고유의 상징적 제스처들 덕분에 구축적인 이미지를 단시간 안에 제공한다. 여기서 상징적인 제스처들이란 항간에 그의 음악을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브루크너 휴지, 브루크너 오프닝, 브루크너 시퀀스 같은 음악적 움직임을 말한다.

이들은 각각 갑작스러운 정적(브루크너 휴지), 시간이 멈춘 듯 현악기의 희미한 트레몰로를 이용한 도입(브루크너 오프닝), 도달점이 어디인지 예측할 수 없는 반복적인 계단식 움직임(브루크너 시퀀스)을 의미하고 이러한 움직임을 통하여 블록화 하는 그 찰나들은 각각이 마치 벽돌인양 브루크너의 구축적 음악에 일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시향이 지난 4월22일 금요일 저녁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제2번의 연주는 통상 관객이 느끼는 브루크너 교향곡들의 거대한 건축물을 감상하는 듯한 웅장함, 숭고함, 장엄함 대신 내게는 섬세한 이미지의 연주를 흡사 연상시켰다.

마치 섬세함의 절정을 보여준 지난 2월 중순의 서울시향 자크 메르시에의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의 연주를 듣듯이 말이다. 벤저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중 4개의 바다 간주곡부터 쇼스타코비치 첼로협주곡 제1번을 거쳐 이날의 메인 하이라이트였던 카미유 생상스 교향곡 제3번 ‘오르간’으로 이어지는 전 연주과정이 서울시향의 연주는 유기적으로 섬세함의 크레셴도를 관객에게 체험토록 하는 것 같았다.

서울시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2번 연주 얘기에 교향악축제 여타 교향악 단체의 연주나 이전 연주회들의 예를 든 까닭은 서울시향의 섬세함이 시향의 연주스타일로 이제는 자리매김한 것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올해 교향악축제 2022에서도 서울시향은 말러나 브루크너 선율의 웅장함과 장엄함 대신 이런 초대형 대편성 곡보다 관현악의 색채감을 부각시키는 선곡의 인상인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Op. 64중 발췌곡을 연주해 서울시향의 이런 연주스타일의 타당성을 뒷받침해줬다.

 

지휘 바실리 페트렌코는 큰 그림속에서 세부적 표현으로 악장간 악기간 균형잡힌 소리 들려주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사진 서울시향)
지휘 바실리 페트렌코는 큰 그림속에서 세부적 표현으로 악장간 악기간 균형잡힌 소리 들려주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사진 서울시향)

 

관현악의 색채감을 택하는 이런 연주곡의 선택은 3월3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2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수수께끼 변주곡에서의 풍부한 악상과 견실한 짜임새, 멋진 관현악법, 이어진 2022 서울시향 하델리히히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이틀간의 연주회에서도 3년차 상임 음악감독으로서 연착륙을 하고 있는 오스모 벤스케가 자국 작곡가인 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5번 연주를 통해 헌신(獻身)의 화신 같은 지휘로 구성과 편성 면에서 대단히 절제되고 집약적인 면모를 보이는 서울시향의 이미지 업에 기여하고 있다. 

서울시향의 교향악축제에서의 연주에서도 가볍고 산뜻한 IV. Suite No. 1-7. The Death of Tybalt, 그리고 국내 교향악단 연주단체들 가운데서도 정상의 연주 실력을 느끼게 한 VII. Suite No. 2-7. Romeo at Juliet's Grave를 들려준 것도 섬세함에 능한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으리라.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의 연주는 낭만적인 정서가 곡 전체를 끈적끈적하게 맴도는 우수에 찬 듯한 분위기의 브루흐 음악의 특성을 전개한 것으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이 1악장의 타이틀이 서주(Vorspiel)인 만큼 2악장 Adagio가 이 협주곡의 핵심이자 심장임을 보여준 열연으로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피력한 대로 때로는 기도처럼 숙연하고 간절하게 하늘을 날듯 자유롭게 솔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 부분의 클라이맥스를 향한 여정은 브루흐만이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함이 돋보이는 연주였다는 느낌이다. 

지휘 바실리 페트렌코, 큰 그림 속에서 세부적 표현으로 악장간 악기간 균형 잡힌 소리 들려줘

올해 2022 교향악축제에서 KBS교향악단이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제3번 ‘로맨틱’은 어떤 면에선 이런 섬세함과 브루크너 교향곡 특징의 하나인 장중함과 웅대함의 중간치 정도를 생각게 하는 연주곡이 내게는 됐다.

브루크너는 자신의 교향곡 4번에 붙인 부제 ‘로맨틱’과 각 악장에 대한 설명을 짧게 기록했는데 현악기의 떨림 속에서 호른으로 고요하게 시작하는 1악장은 ‘날이 밝아오는 새벽, 중세 도시의 탑에서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기사들은 기운차게 말을 타고 밖으로 향한다. 자연의 신비가 그들을 둘러싼다. 새들의 노래, 바람에 떨리는 나뭇잎소리, 그리고 시냇물의 소리, 그렇게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진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향의 연주회는 올해 교향악축제 총 20개의 연주 일정 가운데 12개의 지방 교향악단의 서울 나들이 연주를 객석에서 직접 본 내 개인적 관점에서도 국내 클래식계 무대에서 가장 정통 클래식적 분위기와 그것에 부합하는 연주를 가장 잘 들려주는 연주단체라는 생각이 든다.

당초 덴마크 지휘자 토마스 다우스고르가 지휘키로 예정돼있었던 지난 4월22일의 무대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과 대타로 출연한 동향 러시아 출신의 지휘 바실리 페트렌코가 이끈 리스트 피아노협주곡 제2번의 첫 전반부 연주무대도 군더더기 없는 서곡 연주를 생략하고 음악의 엑기스 진액을 선사하는 무대로 들렸다.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은 서두르지 않는 스타일로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의 스타트를 이끌면서 이날의 서울시향 연주회가 꽤 고급스럽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내게 주었다.

이날의 무대에서 또 하나의 인상적 인물이라면 에누리 없이 칼날 같은 지휘를 이끈 바실리 페트렌코를 꼽지 않을 수 없을 듯 한데 객원지휘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데 바실리 페트렌코가 만점 역할을 했다는데 많은 음악애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페트렌코는 명료, 깔끔, 날렵한 이미지의 지휘로 객석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분명하게 단원들에게 필요한 사항을 주문했고 전체의 큰 그림 속에서 세부적인 표현을 그려나가 해외 저명 교향악단 연주에 뒤지지 않는 좋은 사운드로 악장간,

그리고 악기간 균형 잡힌 소리 및 구조적으로도 복잡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브루크너 교향곡 2번의 이 교향곡을 명료하게 쉽게 들려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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