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적 이라기보다 다분히 감성적인 연주에 가깝게 호소”

공연일시: 218() 오후 5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연주 가운데서 에프게닌 키신의 연주가 카리스마적 이라면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는 다분히 감성적인 연주에 가깝게 호소하는 것 같다.

올해 연초 마스트미디어 주최로 The Great Pianist Series 일환으로 지난 218일 토요일 오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고 포털에 쏟아진 많은 기사들의 주류를 보면 확실히 이런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연주가 되게 산뜻하고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는 블로거들의 글을 읽으면서 다수의 콘서트 고어들이 이런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가 감성적인 것에 치중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다닐 트리포노프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연주곡에 따라 색깔을 변화시키며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storyteller였다고 쓴 블로거도 있었고 섬세한 표현과 소리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내면적인 소리의 표출을 위한 템포의 설정이 눈길을 끌었다는 글도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가 감성적인 것에 호소하는 연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는 카리스마적 이라기보다는 감성적 연주에 가깝게 호소하는 피아노 연주를 펼쳤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는 카리스마적 이라기보다는 감성적 연주에 가깝게 호소하는 피아노 연주를 펼쳤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곡보다는 작품성 높은 곡들이 선곡

내가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를 처음 본 것은 그가 만 22세였다고 볼 수 있을 20136월의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의 공연이었는데 랑랑 스타일의 화려한 쇼맨십 대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며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는 정통 피아노 연주가다운 Orthodox한 스타일을 보였던 기억을 안고 있다.

2023년 올해 만 32세가 될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 스타일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많이 바뀌어 입장때부터 사방을 둘러보며 연주에 들어가는 좀더 사려깊고 어른스러워진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10년전 다닐트로프의 연주 레퍼토리들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곡보다는 작품성 높은 곡들이 선곡돼 내용적으로는 유럽 낭만파 음악의 전통을 잇는 프로그램과 그보다는 조금 덜 알려진 레퍼터리들을 적절히 조합,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었다면 올해의 다닐트로프의 연주 선곡들도 그런 연장선상의 맥락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10년전인 2013612IBK홀에서의 공연에서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하기 위해 속사포처럼 성큼성큼 들어와 힘찬 타건으로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기 시작한 이후 트리포노프의 연주는 자신이 피력한 대로 2부 전체 연주가 끝날 때까지 마치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타고 서핑하는 것처럼 본능적이고 자유롭게 연주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매 곡마다 인상적인 조형감으로 마무리하며 관객과 이런 상태에서 연주를 공유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보였다. 20대의 열혈 기질은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의 1악장에서 두드리는 듯한 도발적인 베이스에서부터 느껴졌고 2악장은 탐식하는 듯한 연주로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활기를 이끌어갔다.

차이콥스키의 감상적 왈츠 작품번호 51역시 웅장하고 광대한 선율을 느끼게 하는 피아노 협주곡 대신 전체적으론 차분한 음색으로 꽤 조용히 엄숙한 분위기를 제시해 트리포노프의 사려깊은 곡 해석을 엿보게 했다. 18개의 피아노 소품들중 연주한 세개의 소품 역시 품격있게 트리포노프의 예술적 기교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는데 스트라빈스키/아고스티 발레모음곡 불새는 당초 인터미션 시간에서 변경돼 연주된 것으로 트리포노프의 전 연주곡들 가운데서 청중에게 가장 불협화음적 요소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에서 시작해 슈만의 판타지’, 인터미션 이후에는 모차르트의 환상곡 다단조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가 연주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은 스크라빈의 피아노 소나타 5으로 고전과 낭만, 20세기 초반에 쓰인 작품이 뒤섞인 프로그램에서 다닐 트리포노프는 음악의 그라데이션을 연주회장에서 연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슈만의 판타지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전후반 하이라이트 연주곡

기술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가장 투명한 상태를 지향하는 차이코프스키에서 음악의 살을 덧붙이는 슈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모차르트를 만나고 미세한 묘사의 극한을 탐구하는 라벨의 모음곡을 감상하고 이어 한치앞도 알 수 없이 시작해 극한으로 치닫는 스크라빈의 작품까지 연주하는 것을 보고서 조금씩 짙어지는 음악의 세계, 그런 연주회를 다닐 트리포노프는 그려내고 있었다.

이날 다닐 트리포노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전반부에 내게는 첫곡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 39'가 슈만 풍의 간소한 작품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24개의 소품이다보니 연주의 집중은 두 번째곡 슈만의 판타지에 쏠렸다. 슈만의 판타지, 환상곡 다장조 Op.17은 일반적으로 슈만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초기 낭만주의 시대의 중심 작품 중 하나이다. 랩소딕하고 열정적인 첫 번째 악장, 장엄한 행진을 기반으로 한 장엄한 론도의 중간 악장, 느리고 명상적인 피날레 악장의 연주가 매우 환상적이고 열정적으로 전달되는 다닐 트리포노프의 첫 악장부터의 연주로부터 그의 연주의 다이내믹한 새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후반부 연주 레퍼토리들에서 내게 특히 인상적인 연주였던 것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M. 55'였는데 라벨의 모든 피아노 곡들 중 연주하기도 가장 어렵고, 음악성도 가장 높은 곡이다보니 연주 난이도가 극히 높으면서도 예술적인 탁월함이 뛰어나고, 잘 연주했을 때에는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크게 얻을 수 있는 명곡인 점에 비춰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모습과 파도치는 잔잔한 물결이 피아노로 구현되는 첫 대목이 순결한 아름다움의 정수를 느끼게 한 것 같다.

밤의 가스파르 3악장 스카르보 역시 격렬한 액센트와 숨가쁘게 전환되는 장면들, 질주하는 음표와 옥타브의 향연으로 점철되어있는 만큼, 연주자로 하여금 고도의 테크닉과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요구한다. 스카르보는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보다 훨씬 어려운 곡을 쓰고 싶어했던 라벨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매우 어려운 곡으로 시에서 잘 드러나듯 스카르보는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요정 혹은 악마이며 이를 표현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고 한다. 건조한 페달과 깊은 페달의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 악보에 적혀있는 것 이상의 음향 조탁과 영상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다닐 트리포노프는 이런 관건에 부응하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를 들려주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